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ice Mar 05. 2020

섬나라 한국인은 국경이 궁금해서

중국과 베트남, 미얀마, 라오스 간 3개 국경도시 탐방

분단으로 사실상 섬나라인 한국에는 국경이 없다. 외국에 갈 때는 비행기나 배를 타야한다. 육로로 국경을 넘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이따금 남북출입사무소 출입경 모습이 뉴스에 나오지만, 이 역시 평범한 시민은 경험해보기 어려운 먼 나라 얘기 같다. 고립된 국토는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많은 것을 제한한다. 사람과 물류의 이동처럼 가시적인 것은 물론이고, 꿈과 상상력까지 가두기 마련이다. 우리나라가 대륙과 연결되어 있다면, 기차로 유럽을 가는 일 보다 더 많은 것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던 2018년, 그 해 겨울 청와대 사랑채에서 열린 ‘어서 와, 봄’ 전시에서 역사적인 남북 정상의 판문점 악수 장면을 그래피티로 선보인 심찬양씨가 들려주었던 얘기가 인상적이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그래피티 아티스트 사이에 남북 철도 연결 사업이 관심거리였다고 한다. 그래피티와 남북 철도, 전혀 연관성 없어 보이는 두 단어를 듣고 내가 생각해낸 것이라곤 고작해야 ‘열차에 그래피티를 하고 싶어서인가?’ 정도였다. 진짜 이유는 나의 빈곤한 상상력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래피티의 물감은 스프레이 페인트, 캔버스는 벽이다. 눈·비·바람을 맞는 야외에서 작업하고 전시되는 작품이니 스프레이 페인트 선택이 특히 중요하다. 색상도 다양해야 하고, 발색이나 내구성도 좋아야 한다. 국산은 가격이 저렴하지만, 출시되는 색상이 적어 표현에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단다. 그래서 많은 아티스트가 스페인 브랜드 제품을 쓴다고 했다. 


스프레이 캔은 폭발 우려 때문에 항공 운송이 쉽지 않고, 항만 운송에서도 무거운 짐에 눌리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렇다보니 한국에서는 현지 가격의 서너 배 이상을 줘야 구매할 수 있다. 수십 종의 색상을 구비해야 하는 작가 입장에서는 경제적 부담이 상당할테다. 그래서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은 국경이 뚫리고 철로가 연결되면 물류비용이 낮아져서 스프레이 페인트 가격도 저렴해지지 않을까 기대한다는 것이었다. 멀게만 느껴졌던 정책과 외교 문제가 사람의 얼굴을 한 현실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도보 월경, 육로 무역, 철도 물류, 추상적으로만 생각되는 국경의 풍경을 우선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윈난은 여기에 맞춤인 지역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가 중국이다. 북한, 러시아, 몽골,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네팔, 부탄,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까지 자그마치 14개국이다. 외국인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신장위구르와 티베트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나라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지방정부는 윈난성이다.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 등 동남아 3국과 연결되고, 접경은 아니지만 태국, 인도와도 가깝다.


과거 차마고도와 서남 실크로드의 요충지였던 윈난은 일대일로와 장강 경제벨트를 잇는 동남아시아 진출 거점지역으로 거듭나고 있다. 윈난 접경 동남아 3국을 거쳐 태국 방콕, 싱가포르까지 연결되는 범아시아 철도 공사도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청프전쟁 이후 조계지를 내어주고 서구열강이 첫 철로를 놓았던 굴욕의 땅. 그러나 윈난은 이제 중국의 철도 굴기를 증명하는 현장으로 변해있었다.


허커우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베트남 라오카이


중-베트남 국경 ‘허커우’ : 매일 베트남 보따리상의 묘기가 벌어지는 교역도시


중국과 베트남 사이 가장 대표적인 국경 지역은 허커우(河口)다. 청프전쟁 이후 멍즈 등과 함께 개방되어 120년 넘는 역사를 가진 국경 출입 노선이다. 중국 쪽 허커우에서 다리로 훙허(红河)를 건너면 베트남 라오카이(Lao Cai)에 도착한다. 베트남 육로 관광에 나서는 중국인, 국경무역으로 돈을 벌기위해 건너오는 베트남 보따리상이 뒤섞여 허커우 출입국사무소는 하루 종일 북적인다. 라오카이와 유명 관광지 사파(Sa Pa)로 당일치기 여행을 가는 중국인이 많이 오는데, 비자 없이 근처 여행사에서 신분증만 제시하면 통행증을 발급받아 다녀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허커우 출입국관리사무소(왼쪽)와 베트남 여행 상품 안내가 붙은 여행사 창문


일대는 남대문 시장을 방불케 했다. 생활용품, 전자제품, 식품 등을 공급하는 가게부터, 중국 내륙 각지에서 공수 받은 상품의 배송 대행지 역할을 하는 물류 대리점까지 밀집해있었다. 아침 일찍 다리를 넘어 온 베트남 사람들은 분주하게 상품을 수매해 본국으로 돌아간다.



출입국사무소와 붙어 있는 허커우 봉기 기념관 동북문 앞길에선 하루 종일 진풍경이 벌어진다. 자전거 한 대에 수십 개씩 짐을 싣고 국경을 넘어가려는 베트남 보따리상 행렬이 수백 미터나 이어진다. 갖가지 방법으로 박스를 올리고 붙이고 묶다보니 자전거가 보이지 않을 정도다. 한 대에 서너 명이 붙어 짐을 떠받치며 겨우 겨우 자전거를 밀고 간다. 이렇게 높이 제한선 밑을 림보 하듯 지나가는 모습은 묘기에 가깝다.


구입한 상품을 매고 들고 가는 베트남 여성(왼쪽)과 허커우 봉기 기념관(오른쪽)


나 같은 외국인뿐 아니라 중국인 관광객도 길가에 앉아 이 장면을 구경하는데, 그들에게 물어도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도 관광객인데, 신기해서 구경하고 있었어요.”

치안 유지를 위해 현장에 나온 경찰관을 가리키며 중국인들이 내 옆구리를 찔렀다.

“저기 공안한테 가서 한 번 물어봐요.”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서 공안은 우리 경찰보다 막강한 공권력을 행사한다. 그렇다 보니 평소 중국인은 딱히 잘 못 한 게 없어도 공안을 무서워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자신들 대신 멋모르는 외국인을 부추겨 궁금증을 해소해보겠다는 것인데, 알면서도 속아줘야지 어쩌겠나. 한국인이라고 하니 경찰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개인이 자전거에 실어가는 상품은 휴대품으로 인정해서 세금을 부과하지 않도록 법이 되어있어요. 그래서 자전거 한 대에 물건을 최대한 많이 실어 출경을 하는 겁니다. 실어간 짐은 베트남 국경에서 기다리는 트럭에 전달하고, 곧바로 빈 자전거를 끌고 다시 넘어와요.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많이 왕복하려고 저렇게 서두르는 거예요.”


그러고 보니 자전거는 대부분 개조한 것이었다. 짐을 싣기 좋도록 뒷바퀴 옆에 받침대를 추가한 정도는 양반이다. 몸체를 아예 콘크리트 철근으로 용접해 새로 만든 것도 있다. 안장은 당연히 없다. 이미 자전거라 부를 수 없는 운반용 수레에 가깝다. 이런 자전거 하나에 많게는 1톤 가까이 물건을 싣는다고 한다. 신박한 육로 보따리 무역의 세계를 접하고 감탄사를 내뱉는 순간, 눈앞을 지나던 자전거 한 대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뒤집어지고 말았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과적이 부른 참사의 현장까지 목격하게 되었다.


과적이 부른 참사


땡땡땡땡! 자전거 행렬에 정신이 팔려있던 내 귓가에 때마침 철로 경고음이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교차로에 차단기가 내려가고, 철도원이 깃발을 들고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곳이 바로 역사적인 뎬웨철로의 중국 내 마지막 교차로다. 오른편 다리를 건너면 화물열차는 베트남으로 진입하게 된다. 

다리를 건너 베트남으로 가는 뎬웨철로 화물열차

교차로에서 200미터 가량 북쪽으로 올라가면 뎬웨철로 승객을 태우던 옛 허커우 역이 있다. 2003년 6월부터 여객 노선이 폐지되어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곳이다. 여객 운송은 2014년 개통된 표준궤도 쿤위허 철로(昆玉河铁路: 쿤밍-위시-허커우 철로)가 대신하고 있다. 2019년부터는 이 구간에 고속철도 운행이 시작되면서, 400킬로미터 거리를 3시간 40분 만에 주파할 수 있게 되었다.

옛 허커우역(위)과 새 허커우 북역(아래 오른쪽)

다리를 건너 베트남으로 향하는 열차의 뒤꽁무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 철로를 따라 하노이까지 생각이 이어졌다. 제2차 북미정상회담으로 세계의 이목이 베트남에 집중된 2019년 3월 나는 하노이에 있었다. 국제프레스센터 한편에 자리 잡은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시시각각 들어오는 소식을 확인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기차를 타고 중국 대륙을 가로질러 베트남으로 오고 있었다. 당초 많은 언론이 설마 3일 이상 소요되는 열차로 이동을 할까 생각했지만, 결국 그는 기차로 오고 있다. 항공편은 급유나 안전 문제가 있다니, 북의 선택이 합리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이동하는 내내 직접 얼굴을 내밀지 않으면서도 전 세계에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오히려 내가 더 의아했던 것은 중국이었다. 아무리 전통적 우방국이라지만 실제 운항 중인 여러 철도 노선이 맞물려 있는 철로를 흔쾌히 내어준다는 건 쉽지 않은 일 아닌가. 당시에는 충격적인 회담 결과 때문에 더 생각해볼 틈이 없었는데, 윈난에 와서 보니 그 이유를 조금을 알 것 같다. 북미정상회담 취재를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전 세계 언론의 눈앞에 동북아에서부터 동남아까지 이어지는 중국의 철로를 보여준 것, 그것만으로도 중국에겐 큰 수확이 아니었을까?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거대한 경제벨트로 연결한다는 중국의 야심찬 계획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의 기본은 인프라 투자다. 그 중심에는 철로가 있다. 중국의 고속철도 망은 세계에서 가장 길다. 전국 각지에서 고속철 건설이 한창이라 그 길이도 매년 갱신되고 있다. 중국 국유기업 중국철로공정총공사와 자회사 중국중철 등 중국 철도망 근대화를 주도해온 업체들은 지금 세계 인프라 건설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 업체의 독주에 맞서겠다며 프랑스 알스톰과 독일 지멘스가 철도사업 합병을 추진했다가 반독점법 때문에 EU 승인을 받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이를 계기로 정부의 막강한 지원을 등에 업고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중국 기업에 대응할 수 있도록 경쟁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EU 4개국에서 터져 나오기도 했다. 중국의 철도굴기에 세계가 주목하며 긴장하고 있다.


중-미얀마 국경 ‘루이리 ’ : 전쟁 물자 나르던 길에 고속철도 건설 트럭이 달린다


중일전쟁 기간 중 민초의 피땀으로 건설된 최후의 생명선 버마로드. 이제 그 노선에는 중국의 동남아 영향력을 강화하게 될 첨단 인프라가 새롭게 깔리고 있다. 중국-미얀마 육로 국경 가운데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은 루이리(瑞丽, 서려)다. 아침 일찍 텅충을 출발해 루이리가 있는 서남쪽 더훙 다이족징포족 자치주(德宏傣族景颇族自治州)로 향했다. 바오산-텅충 고속도로를 타고 가는 길에 룽장대교(龙江大桥, 용강대교)에도 들렀다. 룽장이 지나는 협곡 위에 놓인 거대한 현수교 밑으로 운문가 뒤덮여, 마치 천국의 다리를 건너는 기분이다. 이 길은 항저우-루이리 고속도로로 이어진다. 동부 연안 항저우에서 서남부 끝자락 루이리까지 장장 3,404킬로미터의 길이라니! 경부고속도로의 8배나 되는 대륙 스케일에 또 한 번 혀를 내두르게 된다.


룽장대교
완딩 출입국관리사무소. 다리를 넘어가면 미얀마

차는 고속도로 대신 룽장 줄기를 따라 이어지는 320번 국도로 들어섰다. 버마로드의 윈난 구간을 정비한 길이다. 항전 당시 물자 수송을 위해 건설된 도로에는 이제 고속철도 건설 자재를 실은 트럭이 달리고 있었다. 모래나 목재를 실은 트럭, 콘크리트 펌프트럭이다. 루이리로 가는 차량에는 짐이 가득하고, 돌아오는 것은 대부분 빈차였다. 국도변에는 심심찮게 철골, 골재상도 눈에 띄었다. 완딩(畹町)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도착하니 미얀마로 넘어가는 트럭이 줄지어 있었다.


완딩을 지나니 거대한 산이 깎여나가고 있는 채석장이 나타났다. 고속철도가 놓일 교각도 눈에 들어왔다. 기사는 가오리공산(高黎贡山) 터널이 뚫리지 않아서 완공이 늦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곳은 중국 윈난성 쿤밍과 미얀마 수도 양곤을 잇는 범아시아 고속철도 서선 구간이다. 쿤밍-다리 구간은 2010년 이미 복선 철로가 깔렸다. 다리(大理)에서 시작해 양비(漾濞), 용핑(永平), 바오산(保山), 스디엔(施甸), 룽링(龙陵), 망스(芒市)를 거쳐 루이리로 이어지는 다루이(大瑞) 철로는 2008년 공사가 시작돼 2022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고속철이 개통되면 다리에서 미얀마 국경까지 6~7시간 걸리는 길을 3시간 만에 갈 수 있게 된다. 쿤밍에서 미얀마 접경까지도 하루 생활권이 된다.


기사가 말한 가오리공산(高黎贡山) 터널은 다루이 철로의 가장 중요한 공정이었다. 총길이 34.5킬로미터로, 중국에서 가장 길고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긴 철도 터널이면서 아시아 최장 산악 철로 터널이다. 인도양판과 유라시아 판의 충돌 압력을 받는 위치인 데다 히말라야 지진대에 자리한 이곳은 터널 건설의 악조건을 모아놓은 지질 박물관이라 불릴 정도로 복잡한 공정이라 한다. 중국 인프라 건설 기술력의 가늠자가 될 만한 곳인 만큼, 2017년 공사가 시작된 이래 가오리공산 터널 공정은 늘 세간의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인프라 건설이 한창인 루이리는 도시 전체가 흙먼지를 머금고 있었다. 텅충에서 200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곳이지만, 해발 고도가 낮아 25도의 초여름 날씨다. 11월인데 사람들이 반팔을 입고 다녔다. 건축물과 가로수 등 거리 풍경도 전형적인 동남아다.

루이리 출입국관리사무소


루이리는 중국-미얀마 접경 가운데 인원, 차량, 화물 유동량 측면에서 가장 큰 출입국 노선이다. 아세안뿐 아니라 인도, 중동 국가의 상품도 이곳을 통해 중국으로 들어온다. 주변은 거대한 무역지구다. 고급스런 면세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얀마인이 담배, 술, 각종 일용품을 파는 노점도 많다. 접경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무허가 초미니 면세점인 셈이다. 이곳에서는 철재 난간 하나를 사이에 두고, 미얀마 땅에서 물건을 팔고 중국 땅에서 물건을 사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루이리 시내에서 10킬로미터 서남쪽으로 가면 국경 표시 71호 경계비가 있다. 이곳엔 두 나라에 걸쳐진 다이족 마을이 있는데, 한 마을에 두 개 국가가 있다고 해서 일채양국(一寨两国)이라 부른다. 일채양국 마을의 중국 영토에 서서 담 너머를 보니 미얀마 이웃집에서 앞마당 공사가 한창이었다. 나는 건설 인부가 과연 어느 나라 사람일까 궁금해졌다. 중국 땅에 사는 주민이 미얀마 땅인 옆집에 갈 때는 비자를 발급받아야 할까? 매번 출입국사무소를 거쳐야 하나? 이곳 사람들에게 국경이란 가상의 선 하나일 뿐이었다. 변민증(邊民證)을 가진 주민은 수시로 국경을 넘어 일을 보러 다녔다. 미얀마 사람이 넘어와 중국 우물에서 식수를 떠가기도 한다.

71호 경계비(왼쪽), 미얀마-중국을 나누는 노란 국경선(오른쪽) 
일채양국 우물(왼쪽)과 그네를 타고 잠시 공중으로나마 미얀마에 넘어가볼 수 있는 ‘일 그네 양국’(오른쪽)


중국-라오스 국경 ‘모한’ : 중국 일대일로 정책의 명과 암


중국과 라오스 간 대표 관문 모한(磨憨)은 시솽반나 중심지 징훙에서 버스를 타고 3시간여를 달려야 도착할 수 있다. 쿤밍과 징홍에서 출발해 라오스 루앙프라방, 비엔티안, 루앙남타, 보케오 등지로 가는 국제버스가 이곳을 지나간다. 모한터미널 매표소에는 라오스 주요 지역으로 가는 버스 운행 시간표가 붙어있다. 차고지 간판의 지명도 한자와 라오 문자가 병기되어 있다. 외관은 조그마한 시골 터미널이지만 국경 지역 국제 터미널임을 실감할 수 있는 모습이다.


모한에서 윈난의 성도 쿤밍까지는 버스로 자그마치 12시간이 소요된다. 긴 시간을 차에서 버텨야 하는 만큼 오가는 버스는 침대버스다. 층고가 높은 차 내부에는 이층으로 침대 수십 개가 들어차 있었다. 과거에는 이런 침대버스가 많았지만 지금은 점차 줄어드는 추세라고 했다. 차체가 높아 안전상 문제가 있고, 고속도로와 고속철도가 개통되는 곳이 늘면서 긴 시간 탑승해야 하는 버스 수요가 줄어든 탓이다.



모한은 범아시아 고속철도 중선이 중국을 빠져나가는 마지막 지점이다. 동, 중, 서 3개 노선 가운데 상대국에서도 연결 공사가 활발히 진행 중인 유일한 노선이다. 2021년 12월 예정대로 쿤밍-라오스 간 고속철도가 개통되면, 과거 12시간 걸리던 길을 3시간여 만에 갈 수 있게 된다. 다이족 전통가옥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촌락 뒤편으로는 고속철도 공사가 한창이었다. 고속철도 특수로 떠들썩한 도시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모한은 아주 작은 시골 읍내 분위기였다. 대도시에서 차를 타고 경유하는 지역이다 보니, 상권이 발달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버스 터미널에서 도보 6분 거리의 출입국관리소까지 가는 길은 인적 없이 조용했다. 찾는 이 없는 작은 상점엔 제품 광고 대신 환전 간판이 내걸렸다. 라오스, 태국, 미국 화폐를 바꿀 수 있는 사설 환전소다. 출입국관리소 문 앞에는 돈주머니를 허리에 차고 큰 창 모자를 쓴 아주머니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오랜만에 발견한 행인이라 그런지, 세 명이 한데 몰려와 환전 호객행위를 했다. 사람은 없지만 도로는 붐볐다. 국경을 드나드는 화물 트럭으로 흙먼지가 잦아들 틈이 없다. 라오스에서 넘어오는 차에는 바나나 상자와 곡식 자루가, 중국에서 나가는 트럭에는 강철빔 같은 건설자재와 분해된 타워크레인 기둥이 적재되어 있었다.


고속철도의 라오스 구간은 60억 달러가 소요되는 라오스 최대의 인프라 사업이다. 도시화가 이뤄지지 않아서 구간의 절반 이상이 터널이거나 다리로 건설된다. 건설비용은 중국이 70%를 부담하고, 나머지 30%도 차관 형태로 중국이 빌려주는 돈이다. 공사에는 중국 기업과 인력이 투입된다. 현장 주변은 식당부터 숙소, 상점까지 중국인이 점령했다는 볼 맨 소리가 나온다. 겉으로는 원조지만, 사실상 그 돈을 다시 중국이 가져가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다. 고속철도가 개통되면 중국인이 라오스에 쏟아져 들어오게 될 것이다. 관광객 특수를 기대하며 라오스 학교에서는 중국어 배우기 열풍도 일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철로가 개통될 인근 지역은 이미 중국 큰손이 다녀가서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다. 지역 경제가 중국에 예속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고 한다. 



일대일로를 추진 중인 중국의 공격적 행보에도 불구하고, 참여국과의 협력에 문제가 발생해 사업이 전면 재검토되거나 지지부진한 경우도 적지 않다. 중국에 정치 경제적으로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 지나치게 중국에 유리하게 설계된 사업, 패권 경쟁에서 중국의 세력 확대를 저지하려는 주요국의 견제 등 몇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중국-라오스 고속철도 사업이 보여주는 빛과 그림자는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을 위협으로 느끼고 있는 아세안 국가들에게 과연 어떤 메시지를 주게 될까?




이전 25화 전쟁 중에도 교육은 계속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