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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e Jan 13. 2020

[참고하세요] 시주도 모바일페이로

'모바일 페이 천국' 중국에서 현금이 필요한 이유

‘중국에서는 거지도 QR코드로 동냥한다.’는 얘기는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중국에서 모바일 페이가 얼마나 보편화되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나는 윈난에서 이에 맞먹는 상징적인 장면을 하나 포착했다.


보통 사찰에 가면 불상이나 대웅전 앞에 헌금을 넣는 공덕함이 놓여있다. 입장료를 따로 받지 않는 사찰의 경우에는 관광객도 성의 표시로 소액의 현금을 넣곤 한다. 단체관광객 열댓 명이 오면 그중에 꼭 한 두 명은 멋쩍은 웃음으로 주머니를 더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과거에는 그 중생이 정말 지갑을 깜빡해서 시주를 못한 것인지 아니면 돈이 아까워서 시주를 안 한 것인지 부처님만이 아실 일이었다. 하지만 ‘아이코, 지갑을 깜빡했네’ 제스처가 더 이상 안 통하는 사찰도 있다. 공덕함에 떡하니 QR코드가 붙어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모바일 페이는 이렇게 불심마저도 투명하게 드러내 주는 바로미터가 되었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모바일 결제 시장이다. 사용자 규모, 거래 규모, 보급률에서 선두다. 위폐가 많고 신용카드 보급률이 높지 않았던 중국은 QR코드 스캔만으로 손쉽게 결제할 수 있는 모바일 페이가 보급되면서 급속하게 ‘현금 없는 사회’가 되었다. 돈세탁과 세금탈루 같은 검은 돈을 차단한다는 장점도 있지만, 시민들은 개인의 소비와 위치까지 실시간으로 감시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타나내기도 한다.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세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보인다. 2019년 3분기 기준 연간 거래 규모는 200조 위안(한화 3경4천조)에 육박하고, 연간 거래 건수는 약 1조 2천2백억 건에 달한다. 내가 북경에 머물던 2011년에는 본 적이 없으니, 최근 5~6년 사이 일어난 상전벽해다.


중국의 모바일 페이 시장은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의 알리페이(支付宝)와 중국 최대 메신저 위쳇의 모바일 결제 시스템 위챗페이(微信支付), 양대 서비스가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2010년 중국 정부는 ‘비금융기관 지급서비스 관리방법‘을 제정해 은행이 아닌 기업도 지급 결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시장을 개방했는데, 이때 발 빠르게 뛰어든 양대 IT 기업이 시장의 맹주가 되었다.


중국의 모바일 페이 시장은 위챗페이와 알리페이가 90% 이상 점유하고 있습니다.


이제 중국에서는 노점 할머니도 모바일 페이로 돈을 받는다. 1위안짜리 간식을 사도 사장님은 무심한 표정으로 QR코드를 가리킨다. 이렇다 보니 100위안 같이 큰 현금을 내밀었다가는 눈총을 받기 일쑤다. 점심으로 15위안짜리 국수 한 그릇을 먹고 20위안을 낸 적이 있는데, 주인이 난감해했다. 잔돈이 없단다. 요즘 누가 현금을 쓰냐며 오히려 나를 타박했다. 외국인이라 모바일 페이가 없다고 했더니 ‘톡 쏘는’ 대안을 제시한다. 잔돈 대신에 사이다 한 캔을 가져가라고. 


그 정도는 양심적인 편이다. 한 번은 요금보다 더 많은 잔돈을 떼인 적도 있다. 짐도 무겁고 기차 시간도 촉박해 택시를 탔는데, 역에 도착하니 미터기 요금이 40위안 조금 넘게 나왔다. 100위안을 내밀었더니 기사는 현금이 없다고 했다. 주변 가게에서 잔돈을 바꿔 거스름돈을 줄만도 한데, 차 시간이 촉박한 걸 눈치 챈 기사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결국 나는 땡전 한 푼 못 받고 택시에서 내려야 했다. 중국은 모바일 페이가 없으면 이렇게 눈뜨고 코 베이는 나라다.


맥도널드나 KFC 같은 패스트푸드점 중에는 모바일 앱으로만 주문을 받는 매장도 많다. 카운터 자리에는 주문 방법 안내와 앱 다운로드용 QR코드를 크게 붙여놓고, 매장에서는 주문을 아예 받지 않는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직원 한 명을 붙들고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하소연을 해보았다.

“외국인인데요. 중국 전화가 아니라서 앱 다운로드가 안 되네요. 주문을 도와줄 수 있나요?”

다행히 친절한 직원을 만났다. 대신 주문을 넣어주겠단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햄버거 값은 모바일 페이로 달라고 했다. 거스름돈을 줄 현금이 없다고. 나는 결국 그날도 쌀국수로 저녁을 때워야 했다.


아침 식사부터 버스 탑승, 관광지 해설까지 중국의 거의 모든 것은 QR코드를 통해야 합니다.


첫 여행에서 된통 당한 나는 두 번째 여행 때 반드시 모바일 페이를 개통하겠다고 다짐했다. 50일 넘는 장기 여행이다 보니 환전해온 돈이 적지 않았다. 두툼한 돈다발을 들고 배낭여행을 다닌다고 생각해보라. 불편하기도 하고 위험천만한 일이다.


모바일 페이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중국 현지 휴대전화 번호와 중국 내 은행에서 만든 카드가 필요하다. 두 번째 윈난 방문의 첫 일정은 현지 휴대전화 번호 개통으로 시작되었다. 일반 매장에서는 외국인 업무를 취급하지 않는다. 수소문 끝에 이동통신사 현지 지사 직영점을 찾아가 여권을 제시하고 유심칩을 개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은행카드는 결국 만들지 못했다. 자그마치 일곱 곳을 방문했지만 모두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6개월 이상 장기 상용·교육 비자가 아니면 개설이 안 됩니다. 지방 정부 방침이니 다른 은행에 가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마지막 창구 직원의 청천벽력 같은 말과 함께 반나절 동안의 은행 유랑은 끝이 났다. 


북경과 상해 등의 한국계 은행 지점에서는 한국인도 카드 발급이 가능하다고 한다. 중국을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로 생각하지만, 막상 겪어보면 지역마다 제도가 다른 경우가 많다. 국토나 기후, 민족과 언어, 경제 수준까지 천차만별인 거대한 국가이다 보니 각 지역 형편에 맞춰 다양한 정책을 구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플랜B, 결국 믿을만한 현지인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환전해간 현금을 지인 계좌에 입금 후 이체 받는 것이다. 여권으로 신분 인증만 해두면 알리페이 사용자 간 이체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연동된 은행카드가 없으니 현금 입출금은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알리페이 잔고를 확보하게 되었다. 앱에 찍힌 금액을 보니 어쩐지 부자가 된 것 같아 든든했다.


하지만 여행이 본격 시작된 후, 또다시 예상치 못한 난관을 만났다. 모바일 페이를 전혀 안 받는 곳, 위챗페이만 받는 곳, 그리고 전화가 안 터지는 곳을 발견한 것이다.


모바일 페이도 깡(?)이 되나요?


관광 인프라가 잘 정비되어 있는 리장에 주로 머물렀던 첫 여행과 달리, 두 번째 여행에서는 윈난 전역을 둘러보기 위해 현(县)급 이하 시골까지 가게 되었다. 작고 낙후된 지역일수록 모바일 페이 보급률이 현저히 낮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버스터미널에서조차 현금만 받는 곳이 적지 않았다. ‘2019 중국 모바일 결제 발전 보고서’에 따르면 모바일 결제 활성화 정도는 동부가 높고 서부가 낮은 동고서저(东高西低)의 특징을 보이며, 경제 발전 수준이 높은 도시일수록 모바일 결제 활성화 정도 또한 높다고 한다.


1970년대 말 등소평은 전면적 개혁·개방을 천명하면서, 능력 있는 자가 먼저 부자가 되고 그 효과를 확대해 모두 잘 사는 사회를 건설하자는 ‘선부론(先富论)’을 제시했다. 이러한 동부 연안 중심 불균형 발전 정책의 결과, 동서 간, 지역 간, 도농 간 빈부 격차가 심화되었다. 지역별 모바일 결제 활성화 지표 또한 이러한 격차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안면인식 결제를 도입하는 곳이 늘고 있다는데, 기술이 달려갈수록 격차는 커질 것이 분명하다.


식당이나 소형 상점만 해도 위챗페이와 알리페이를 모두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버스 기사나 플리마켓 판매자 같이 개인의 경우에는 위챗페이만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2019 3분기 제3자 모바일 결제 사용자 연구 보고’에 따르면, 전체 모바일 인구 대비 앱 사용자를 나타내는 침투율에서 위챗페이는 92.4%, 알리페이는 72.1%를 기록했다. 70.6%는 두 서비스를 모두 이용하고, 알리페이만 사용하는 경우는 1.4%에 불과하다고 한다. 1.4% 중 하나인 내가 위챗페이만 사용하는 21.7% 중 한 명을 만나면 어떤 일이 생길까? 다랑논으로 유명한 원양(元阳, 위엔양)에서 나는 모바일 페이 깡(?)을 경험하게 되었다.


대리(大理, 따리) 고성의 플리마켓에서도 그림 사이에 한 자리 차지한 위쳇패이 QR코드가 보이네요.


외진 곳에서 차를 잡아야 했던 나는 한 시간여 만에 겨우 삼륜차 한 대를 만나게 되었다. 수업을 마친 초등학생 아들을 태우고 집으로 향하던 길에 예상 밖의 부수입거리를 발견한 아저씨는 터무니없는 비용을 불렀다. 언제 다시 차를 잡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 바가지인줄 알면서도 눈물을 머금고 차를 탔다. 우선 알리페이로 지불을 하겠다고 알렸다. 아저씨는 위챗페이 밖에 없었고 했다. 그렇다고 다 잡은 물고기를 놓칠 수는 없으니 대리결제를 해줄 가게를 찾아 동분서주하기 시작했다. 


우선 주유소에 문의했지만, 매출 기록이 잡혀서 안 된다는 대답을 들었다. 맞은편 공업사도 알리페이가 없단다. 아저씨는 일단 나를 태우고 목적지와 반대방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5분쯤 달렸을까, 제법 큰 슈퍼마켓 하나가 보였다. 아저씨는 가게 벽에 붙은 알리페이 QR코드를 가리키며 내게 결제를 하라더니, 슈퍼마켓 사장에게 그 금액을 현금으로 돌려받았다. 카드깡도 들어만 보았는데, 모바일 페이 깡을 직접 보다니! 알고 보니, 알리페이와 위챗페이 모두 일정 금액까지는 이체 수수료가 면제되기 때문에 소액의 경우 이렇게 부담 없이 지인의 편의를 봐주기도 한단다.


가장 답답한 것은 전화 불통으로 결제 앱을 쓸 수 없을 때였다. 첩첩산골에서도 LTE가 빵빵 터지고 KTX에서도 무료 와이파이가 제공되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윈난은 민가가 없는 산악지역이 많다. 그렇다 보니 무선통신망도 촘촘하지 않은 모양이다. 국도나 지방도를 달릴 때는 물론이고, 고속도로를 달릴 때도 전화 신호가 안 잡히는 경우가 많았다. 기차에서도 휴대전화가 잘 안 된다.


쿤밍에서 베트남 접경지역 허커우로 가는 도시 간 급행열차에서는 모바일로 식사나 간식을 주문할 수 있다. 별도 앱을 다운로드 받을 필요 없이, 좌석 앞에 붙어있는 QR코드를 스캔하면 주문 화면으로 연결된다. 메뉴와 열차 번호, 좌석번호를 입력하고 모바일 결제까지 마치면, 잠시 후 승무원이 주문한 식사를 자리로 가져다준다. 한국에서는 못 보던 서비스라 체험삼아 시도를 해보았다.


곤명철도국의 서비스 앱 ‘쿤티에 플러스(昆铁+)’를 이용하면 앉은 자리에서 모바일로 식사 주문을 할 수 있습니다.


탑승하자마자 주문 화면을 켜고 메뉴를 살피는 사이 열차가 천천히 승강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고산지대를 가로지르는 노선은 한 시간 중 40분 이상이 터널 구간이다. 아무래도 창밖 풍경 구경은 틀린 듯하다. 다시 메뉴 선택에 집중했다. 고심 끝에 라즈지 도시락 세트를 카트에 담았다. 그런데 버튼을 눌러도 반응이 없다. 기차가 달리는 동안에는 전화 신호가 잡히지 않아 주문을 진행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다. 정차할 때라야 신청을 할 수 있단 얘긴데, 아쉽지만 다음 정거장이 내가 내릴 종점이다.


2019년 말 알리페이와 위챗페이가 외국인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이제는 단기 여행 시에도 한국 카드를 등록해 손쉽게 중국 모바일 페이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환전 없이 중국 여행하는 시대’가 온 것은 아니다. 중소도시나 윈난처럼 시골과 오지가 많은 지역에 갈 때는 혹시 모를 순간을 위해 반드시 ‘현찰 비상금’을 챙겨가야 한다. 여행자에게는 아무래도 두둑한 노잣돈이 제일 든든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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