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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e Mar 12. 2020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중국 최초 민간 공유 천문대

“저런 하늘이 어디 있어. 싸구려 컴퓨터 그래픽을 하니까 가짜 같은 화면이 나오지!”


드라마에 밤하늘이 나올 때면 욕을 한 바가지 퍼붓곤 했다. 남녀 주인공 뒤로 은하수가 펼쳐지는 장면은 뭔가 지나치다. 낭만적 분위기를 연출하려는 의도는 알겠는데, 현실성이 떨어져서 몰입을 방해한다고 할까? 드라마틱하게 ‘별이 빛나는 밤’은 고흐의 그림에나 있는 줄 알았다. 호도협 트래킹에서 진짜 별밤을 만나기 전까지는.


리장의 밤하늘은 별도, 달도, 산마저도 비현실적이다. 별이 어찌나 많고 선명한지, 크고 작은 꼬마전구를 잔뜩 달아놓은 암실에 누워있는 기분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보았던 드론 쇼 같기도 하다. 보름달도 아닌 초승달이 눈부실 만큼 밝다. 만년설에 달빛이 반사된 설산 봉우리는 밤에도 새하얀 자태를 뽐낸다. 밤바람이 부니 별들도 흔들리는 것 같다. 추위마저 잊게 하는 찬란한 밤하늘이다. 그날 밤 깨닫게 되었다. ‘별보기 운동’을 하는 직장인에겐 별 볼 여유가 없고, 스모그 돔 아래 빛공해 속에서 살아가는 도시인에겐 별 볼 방법이 없었던 것이구나. 


도시로 가져갈 수 없는 풍경이 아까웠다. 눈에 오래 담으면 기억에도 오래 남을까 싶어 차마객잔 옥상에 누워 한참을 바라보았다. 이따금씩 별똥별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시간이 멈춘 것 같았을 것이다. 별을 보니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함께 왔다면 좋았을 텐데.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다면 참 좋았을 텐데. 할 수만 있다면 내 눈에 담아 가서 꺼내 보여주고 싶다.’ 그제야 나는 왜 지미가 별 사진을 찍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방송국 PD에서 천문대 주인이 된 빠링허우


본명 장멍(姜萌), 리장 위룽쉐산 중턱 작은 천문대의 주인. 지미는 국영방송국인 중국 중앙 텔레비전(CCTV) PD를 그만두고 윈난에 와 스페이스 트래블러 천문대(星迹旅课天文台)를 만든 빠링허우(80년대생)다. 일조금산을 보기 위해 묵었던 숙소에서 우연히 그를 알게 되었다. 호텔 내 체험 프로그램 시간표에서 ‘별이 빛나는 밤 테마 활동’이라는 제목을 보고 호기심에 참여를 했다. 별과 우주에 대한 교양 강좌를 진행한 이후 밤하늘을 배경으로 기념사진까지 찍어주는 이 프로그램의 강사가 바로 지미였다. 그는 본관 1층에 있는 과학관과 경내에 있는 천문대도 운영하고 있었다. 호텔 안에 과학관과 천문대라니! 듣도 보도 못한 조합의 탄생 배경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날이 흐려 별이 희미하다.

‘주니어에서 시니어가 되어도 똑같이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을 텐데, 평생 이렇게 살 수는 없어!’

방송국 PD로 10년을 보낸 지미는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앞으로의 삶이 영원히 지금까지와 다를 바 없을 것 같다는 위기감, 그것이 그를 세상 밖으로 떠밀었다. 지미는 삶을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대책 없이 사직서를 냈다. 그 다음부터는 우연의 연속이었다. 창업하는 친구를 돕기 위해 리장에 왔다. 하지만 동업이 쉽지 않아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무엇을 해 먹고살까 생각하다 오랜 취미인 ‘별 보는 일’을 떠올리게 되었단다. 공기오염과 빛공해가 적은 리장은 별을 관측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그 무렵 지미는 위룽쉐산 중턱에 있는 호텔 관계자를 알게 되었다. ‘호텔 투숙객은 각지에서 오는 사람들이니까, 이곳에서 천문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전국으로 전파하는 것과 다름없지.’ 호텔이 괜찮은 플랫폼이란 생각이 들었다. 고객 유치 방안을 고민 중이던 호텔 입장에서도 이색 콘텐츠를 가진 지미와의 합작은 윈윈이었다. 이렇게 해서 해발 3,100미터 호텔 안에 과학관과 천문 관측소가 들어서게 된 것이다.

장멍


대중과 호흡하는 과학 지식·문화 확산 기지


이전까지 중국 내 천문대는 모두 정부 소유였다. 천체 관측과 연구를 위한 전문 시설인 만큼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웠다. 지미의 천문대는 중국 최초의 민간 천문대다. 돔 지붕이 열리는 멋들어진 건축물은 없지만, 보유 장비와 운영 방식만큼은 아주 특별하다. 이곳에는 지미와 중국 천문 애호가들 소유의 고급 천문망원경 24대가 설치되어 있다. 어디에서든 인터넷으로 원격 조정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췄다. 소유자뿐 아니라 타지에 사는 일반인도 저렴하게 설비를 빌려 천체를 관측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유 천문대’다.


‘공유 천문대’로 사용되는 스페이스 트래블러 천문대 리장 관측소. 뒤편으로 위룽쉐산이 보인다.


유성우가 쏟아지는 시기엔 우주쇼를 직접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도 있다. 특별한 날에는 투숙객뿐 아니라 일반인을 대상으로 무료 강좌나 체험 행사를 연다. 협약을 통해 미 항공우주국(NASA)의 전자교육 프로그램도 도입했다. 행성 탐사, 로켓 발사, 천체 소개, 우주정거장 활동 등 각종 우주 탐험 활동을 온라인 학습하고 나사의 과학자에게 질문도 할 수 있다. 과학관과 천문대에서는 리장 어린이를 위한 수업도 진행된다. 대도시에 비해 교육 자원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시골에서 귀중한 과학교육 인프라가 되고 있다. 과학 교사로 체험 수업을 지도하는 지미는 적지 않은 어린이 팬을 가진 선생님이다.



스페이스 트래블러 천문대는 국가급 전문 기관만큼 큰 연구 성과를 낼 수도 없고, 우주기업 스페이스X처럼 거창한 우주여행을 추진할 수도 없다. 단지 좀 더 많은 사람이 천문을 접할 수 있도록 과학 대중화 활동을 한다. 지미는 이곳에서 촬영한 천체 사진을 공개하고 우주 이야기를 소셜미디어에 연재한다. 사소해 보이지만 중요한 작업이다. “일단 눈으로 보고 호감을 느껴야 더 알고 싶은 마음이 드는 법이잖아요. 많은 사람이 사진을 접한 후 고개를 들어 한번쯤 별을 바라보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과지요.”


중국은 건국 100주년인 2049년까지 과학기술 선도국이 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국민의 과학 소양을 높이는 ‘2049 실행계획(2049计划)’에 따라 다양한 방식의 과학 대중화(科普: 과학보급) 활동도 펼치고 있다. 각종 박물관, 식물원, 도서관, 자연보호구역 등을 과학 대중화 교육 기지로 지정해 체험 관광을 활성화하고, 지역 정부와 민간에도 유관 사업을 장려한다. 이곳 과학관도 지역 정부와 협력해 과학 대중화 교육 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2019년 5월 처음 만났을 때, 그가 운영하는 천문대는 위룽쉐산 한 곳이었다. 1년도 안 돼 쿤밍, 루구후, 샹그릴라에도 천문대가 건설되고 직원도 생겼다. 소규모 천문대는 자금력만 허락된다면 누구나 쉽게 진입할 수 있는 분야라서, 지미는 규모화와 함께 표준화된 시스템과 천문대 관리 모델을 만드는 데 정성을 쏟고 있었다.

“더 이상 퇴로가 없다고 생각해야만, 그 조건 속에서 방법을 찾아내고 더 나은 것을 창조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 회사의 경영방식은 일단 있는 돈을 모두 (투자해) 써버리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돈을 벌지 다시 생각하게 되겠죠. 하하.” 빠링허우다운 경영철학이다. 


지미는 리장에서의 생활을 한 단어로 ‘피곤’이라고 말했다. 벌써 지쳤다는 얘기일까?

“방송국 시절엔 9시에 출근해 5시에 퇴근하는 편한 삶이었어요. 조직 시스템이 뒷받침되고, 일이 많아지면 외주를 줄 수도 있었죠. 그런데 요즘은 '닭보다 일찍 일어나고 개보다 늦게 자'요. 신경 써야 하는 일이 더 많아졌거든요.”

그래도 후회는 없다. 그는 사자성어로 자신의 심경을 대신했다.

“락차불피(樂此不疲), 좋아서 하는 일은 힘든 줄도 모른다잖아요.”

스페이스 트래블러 천문대에서 촬영한 성운 (출처: 천문대 SNS)

오늘도 그의 SNS에는 일찌감치 별 사진이 올라왔다. 지난밤 잠을 설치며 우주에서 길어 올린 보석이다. 서울의 여명 속에서 호도협의 밤하늘이 그리워졌다. “언제 리장에 별 보러 가지 않을래?” 누군가에게 고백하고 싶어지는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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