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물고기가 숲을 유영한다. 그 숲은 바다만큼이나 광활했고 크고 작은 나무들이 빼곡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물고기들은 항상 나무 사이로 헤엄쳐야 했다. 빠르게 헤엄치다 나무에 부딪히는 물고기들은 그 자리에서 쓰러지기도 했다. 하얀 물고기는 자신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얀 물고기는 다른 물고기들보다 걸음이 느렸기에, 갑자기 솟아나지 않는 이상 하얀 물고기는 결코 나무와 부딪힐 일이 없을 거라고 했다. 나는 이 새하얀 물고기를 백서(白徐)라고 부르기로 한다.
백서는 이상하리만치 걸음이 느렸다. 다른 물고기들은 일 초에 서너 개의 나무를 헤집고 다니는데, 백서는 일 초에 하나는커녕 삼 초가 걸려 나무 하나를 지나갈 정도였으니 말이다. 언젠가는 그 느슨함 때문에 자신의 속한 무리에서 낙오되기도 했다. 그런 일을 처음 겪어본 백서는 마음이 뒤숭숭한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행위를 반복하다가, 감정이 조금 사그라들어서야 다시 앞을 보고 나아갔다. 그렇게 백서는 함께인 날보다 혼자인 날들이 더 많아졌다.
새하얀 눈이 내려 숲이 온통 자신과 같아졌을 때였다. 백서의 옆으로 한 물고기가 다가왔다. 하얀색보다는 은색에 가까워 보이는 피부. 주변이 온통 새하얗다 보니 빛이 반사되어 눈부시게 빛났던 물고기였다. 오랜만에 다른 물고기와 함께 헤엄친다는 사실에 백서는 마음이 들떴지만 한 편으로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함께라는 건 좋지만 이 물고기도 곧 있으면 느린 자신을 넘어서, 꼬리를 흔들거리며 사라질 테니까. 그래서 선뜻 반가워하지 못한 채, 아무 말도 없이 계속 헤엄치기만 했다.
그 정적을 깬 것은 은색의 물고기였다.
"조금 힘든데 쉬었다 가는 건 어때?"
백서는 갑자기 들리는 말소리에 깜짝 놀랐지만, 그 물음에 답하듯 꼬리짓을 서서히 멈추었다. 한편으로는 아리송했다. 은색 물고기는 백서보다 덩치도 크고 그다지 나이 들어 보이지도 않았는데, 안 그래도 속도가 느린 자신과 함께 헤엄치는 데 힘이 들다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에 은색 물고기가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보았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왜. 너보다 덩치도 크고 힘도 세보이는데 힘들어하니까 이상해?"
"넌 거짓말은 못하겠다. 얼굴에서 확 티가 나잖아."
백서는 자신의 마음을 들켰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괜히 성을 내며 은색 물고기에게 대답했다.
"당연하지. 그 큰 몸으로 나를 따라다니기도 벅찰 정도면 어지간히 게을렀나 보네!"
그러자 은색 물고기는 열심히 꼬리를 흔들며 백서의 맞은편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쩐지 그 모습이 다소 서툴렀다. 다시 한번 의아함을 품었던 백서는 곧 자신의 앞에 선 은색 물고기를 마주치자 입을 굳게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은색 물고기는 한쪽 눈이 없었다.
"당황할 필요 없어. 어쩌다 보니 이런 꼴이 되어서 방향을 잡기가 힘들어졌지 뭐야. 덕분에 내 가족들도 나를 두고 떠나버렸어. 가족을 원망하지는 않아. 나 하나 때문에 이런 곳에 얽혀 있다가는 다 같이 죽자는 꼴 밖에 안 되니까."
은색 물고기의 말을 들은 백서는 더더욱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다른 녀석들이라도 따라가려 했는데, 너도 알다시피 다들 너무 빨리 가버리더라고. 그렇게 제자리만 빙빙 돌다가 네가 지나가는 걸 봤어. 조금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따라가려니 따라가지더라고. 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으니까 미안해할 필요 없어."
은색 물고기는 다시 이상한 모습으로 헤엄치며 백서의 옆으로 다가왔다. 계속 백서의 옆에서 헤엄쳤던 이유도 남아있는 한쪽 눈으로 백서를 쫓아가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백서는 은색 물고기가 외눈이라는 사실을 모를 수밖에 없었다.
"뭐야, 계속 그렇게 입 다물고 있을 거야? 오늘은 여기에서 쉬었다가 내일 다시 움직이자. 괜찮지?"
백서는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하자고 말했다. 오랜만에 다른 물고기와 헤엄치느라 시간의 흐름을 신경쓰지 못했던 백서는 몸통을 돌려 하늘을 바라봤다. 새까만 밤하늘에 방긋 웃고 있는 초승달이 백서를 반겼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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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Racool_studio
출처 Freepi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