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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이 Jul 04. 2024

|아무렇게나 평범한 이야기

 아침이 밝았다. 세상은 눈을 뜨라고 소리치는데 그게 마음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맨손으로 세수하듯 얼굴을 비비며 겨우 뜬 눈으로 아침을 맞이한다. 밝다. 기분 나쁘게. 날씨를 핑계로 내 감정을 해석하는 일은, 이렇게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덕분에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사다리를 타는 기분으로 수평한 바닥을 배회하며 나는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고 마는 것이다.


"야옹"


 현관문을 열고 나오면 항상 나를 반겨주는 녀석. 원래는 녀석들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새하얀 아이는 사라지고 회색빛깔의 고양이만 집 앞을 찾아왔다. 나를 반기는 건지, 내가 주는 밥을 반기는 건지. 후자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지만 이 아이라도 나를 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해야 조금이나마 산뜻한 아침이 되지 않을까 싶다. 습관적으로 캔 두 개를 까서 문 앞에 두었다. 생각해 보니 요즘 저 녀석의 살이 불어나는 것 같은데, 고작 아침 한 캔 더 먹었다고 저렇게 살이 찔 수 있는 건가? ……. 곧 고양이는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고 나는 푸른 하늘을 대신해 새까만 아스팔트를 바라보며 검은 상념에 젖은 채로 학교를 향하기 시작했다.


 교실 앞에 도착했을 때 역시나 교실 문은 잠겨있는 상태였다. 딱히 일찍 오고 싶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그냥 때가 되면 눈이 떠지는 것이고 할 것도 없는 아침이라서 그대로 학교에 와버리는 것이다. 어차피 가장 먼저 교실에 오는 건 나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나는 항상 열쇠를 먼저 가지러 가기보다 교실을 들렀다가 오는 편이다. 왜인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매번 그러다 보니 그냥 습관이 되어버린 듯하다. 잠긴 문을 확인한 나는 어김없이 교무실을 향했고, 세 번의 노크를 한 후에 교무실의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승재 안녕~ 오늘도 일찍 왔네?"


 늘 밝고 쾌활한 성격의 체육 선생님. 매일 아침 교무실의 문을 여는 것은 체육 선생님이었다. 내가 키를 가지러 올 때면 항상 선생님 혼자 자리에 앉아계셨다. 아마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교무실의 문을 열리는 것까지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네 쌤. 열쇠만 가지고 갈게요."

 "오늘 너희 반 수행평가 있는 거 알지? 까먹은 애들 있을 수 있으니까 다시 좀 전달해 줘."

 "네."


 선생님의 말씀에 무미건조하게 대답하고는 열쇠를 가지고 교실을 향한다. 문을 열고 자리에 가방을 걸어둔 뒤 창문을 열어 교실을 환기시킨다. 좋은 의도가 있다기보다는 한 밤 동안 묵혀있었을 공기가 텁텁했기에 순전히 내가 숨을 쉬기 어려워서 그런 것이다. 그러고는 내 자리에 그냥 멍하니 앉아있는다. 핸드폰을 보지도 않는다. 그다지 재미있는 것도 없었고,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보고 있으면 괜히 더 우중충해지는 것 같았다.


 '드르륵'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여자애 한 명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왔어?"

 "응~"


 딱히 친구라고 할만한 교우가 없던 와중에도 유일하게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아이였다. 이름은 문리아. 리아는 항상 8시 10분에 맞추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언젠가 물어보니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라고 했다. 오늘도 리아가 들어오는 소리와 동시에 시계를 확인했다. 역시나 8시 10분. 이제는 놀랄 일도 아니지만 흥미로운 일이긴 했다.


 리아와 친해지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교실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게 우리 둘이었으니까. 다른 친구들은 40분이 넘어서야 한꺼번에 몰려들기 일쑤였다. 새 학기에 이름도 모르는 서로가 처음 만난 교실에서 30분이라는 정적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시간. 떨어진 곳에 앉아있어도 서로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있었고 괜히 물을 뜨러 간다거나 화장실을 간다거나 하여 자리에서 일어나면 서로가 서로에게 다가오는 건 아닌지 긴장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 무렵. 자리에 앉아있던 리아가 일어섰다. 다른 용무가 아닌 나에게로 오기 위해서라는 걸 교실을 가득 채운 공기의 무게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나는 괜한 긴장감에 시선을 창밖으로 돌려버렸다.


 "안녕?"


 인사 한 번 나눠본 적 없는 동갑내기 여자아이의 어색한 첫인사. 무거운 듯 가벼웠던 리아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어?…. 안녕."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았음에도 모른척하며 놀란 듯이 고개를 돌렸다. 마음속으로 침착을 반복했지만 목소리로 전해지는 떨림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는 부끄러워 리아를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리아는 곧 내 앞자리의 의자를 빼어 내 쪽으로 돌아보며 앉았다.


 "내 이름은 알지? 매일 일찍 오는 것 같길래 말 걸어보고 싶었어."


 리아의 떨림은 금세 사라져 있었다. 나는 리아의 대답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뜸을 들이다가 어색함을 못 이기고 의식의 흐름을 따라 내뱉었다.


 "리아.. 맞지? 그냥 오다 보니까 일찍 오게 되네."

 "넌 왜 일찍 오는 거야?"

 "나도 비슷해. 그냥 일찍 일어나니까 일찍 오게 되던데?"


 나는 리아의 대답에 그렇구나. 하며 끝을 맺어 버렸다.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이야기. 어쩌면 어색한 사이에서나 할 수 있는 말투와 표정들. 리아의 떨림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나는 여전히 떨고 있었다. 리아도 그걸 느껴서였을까. 나의 마지막 말을 뒤로, 부담스러울 정도로 빤히 쳐다보다가는 앞으로 인사하고 지내자는 말을 남기며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게 세 달이 지난 지금, 우리의 어색함의 거리는 크게 줄어들었다. 그동안 친구는 사귀었지만 뭐랄까 오래도록 같이 떠들 만한 친구들은 아니었다. 또래의 남자아이들이 그렇듯 쉬는 시간만 되면 밖으로 나가 공을 차기에 바빴고, 나는 멍하니 기운 없이 앉아있기만 할 뿐이었으니까. 리아는 교실의 여자아이들 무리와 어울렸다. 대부분은 다른 반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교실에 남아 있는 시간이 적었지만 때때로 리아는 교실에 남아 나와 대화를 하곤 했다. 많은 걸 공유하지는 않았지만 내 학교생활의 유일한 숨구멍이라고 해야 할까. 리아와 대화하는 동안에는 회색 구름이 가득한 하늘 한가운데 뻥 뚫린 푸름을 마주하는 것만 같았다. 우중충했던 내 안의 날씨도 그 순간만큼은 맑아졌다.


 아침에 체육 선생님께서 이르셨던 대로 반 친구들에게 오늘 체육 수행평가가 있다고 전해주었다. 그것 말고는 평소와 다르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아 참, 곧 있으면 시험기간이 다가오는 탓에 리아는 쉬는 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공부에 열중했다. 나도 멍 때리는 시간을 줄이고 리아를 따라 조금씩 공부했고 이따금씩 서로 대화하던 시간을 대신하여 시험공부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물론 대부분은 리아가 내게 알려주는 것이었지만.


 "오늘도 고생했고 곧 시험 기간인데 공부도 좀 하자~"

 "반장, 인사."


 "차렷, 공수, 인사. "


 "ㅡ감사합니다!" 


 담임 선생님의 종례가 끝나고 나는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어느새 다다른 집 앞에는 텅 빈 참치캔을 앞에 두고 잠들어 있는 고양이가 있었다. 집 문을 열자 고양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잠에서 깨어 '야옹'하고 울며 나를 반겼다. 나는 가방을 내려두고 또다시 참치캔 두 개를 가지고 나와 문 앞에 놔두었다. 먹는 모습이 궁금해 고양이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부담스러운 건지 내가 보고 있을 때는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다. 나는 슬며시 문을 닫고 고양이 소리에 귀 기울였다. 고양이의 식사시간. 그 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우중충했던 마음이 더없이 가라앉는 순간이다. 


 '지잉'


 울릴 일 없던 휴대폰에 카톡 하나가 도착했다.


 [ 승재! ]

 [ 영어 67쪽 본문 시험에 나온다고 했던가? ]


 리아였다. 교실에서 처음 대화했던 순간의 어색함이 묻어있는 메시지. 가라앉고 있던 나의 마음이 다시 세상 밖으로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 거기 말고 74쪽 본문부터 나온데 ]


 처음과 비슷한 공기, 그러나 다른 떨림. 나는 더 이상 떨지 않았다. 단순히 대면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그냥 편안했다. 창문을 열어도 꽉 막혀있던 집안에 어느새 햇빛이 드리웠다. 오늘 밤 우리는 학교에서의 일상을 넘어 다른 공간에서의 일상을 공유했다. 리아를 알아가고 나를 알려주는 시간. 리아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즐거웠다. 새벽 시간까지 이어진 카톡. 내일 보자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오늘의 이야기는 막을 내렸다. 나는 오랜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단잠에 들 수 있었다. 잠들기 직전에 보았던 일기예보에서는 내일 비가 온다고 하던데, 내일도 나는 나의 감정을 탓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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