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의지하고 있는 꽃과 나무에서 우리 삶이 보인다
수국이 죽었다. 퇴근하고 돌아와 보니 어린아이 얼굴 만했던 수국이 통째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아침에 탐스런 얼굴로 인사해 주던 그 수국이 맞단 말인가. 아니 대체 어찌된 일인가. 너무나 실망스럽고 허탈하여 축 늘어진 수국을 안은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해가 뜨거워서 그랬나? 화분에 양분이 부족해서 그랬나? 커다란 꽃송이를 받쳐 줄 줄기가 너무 연약했나? 별의별 생각이 스쳐갔다. 사오자마자 마당에 심었어야 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내일 심자고 미루다가 이런 일이 벌어진 것만 같아 속이 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물을 많이 주지 않은 게 원인이었다. 꽃을 보려고 들인 수국은 그 모습을 겨우 이틀만 볼 수 있었다. 내년을 기약하며 아직은 푸른빛이 감도는 줄기를 화단 한 켠에 옮겼다.
사실 내가 죽인 건 수국뿐이 아니다. 지난 겨울 혹한에 포도나무도 죽었다.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한 기념으로 친정 엄마가 사주신 과일 나무다. 별 신경 쓰지 않아도 여름이면 포도 몇 송이쯤 선뜻 내주던 나무였다. 또 지난 봄에 들인 작약은 여름 내내 꽃도 피우지 못하고 땡볕에 이파리마저 타버렸다. 봄과 여름을 우리 집에서 지낸 작약은 좍좍 갈라지는 이파리를 달고 겨우 살아가고 있다. 대부분 성공적으로 길러낸다는 허브나 다육이도 우리 집에서는 살아 내기가 어렵다.
한편 아슬아슬 죽을 고비를 몇 차례나 넘기고도 살아낸 녀석들이 있는데, 대추나무와 워터코인이다. 이사 하면서 심은 아기 대추나무는 아직 한 알도 맺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매년 파릇파릇 잎을 피워내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견하다. 뒷집 공사할 때 크레인에 치이고, 뒷 마당에 있던 걸 앞마당으로 옮기며 뿌리를 앙상하게 드러내는 위기에 처했었다. 그마저 지금은 덩치가 커지고 있는 소나무 옆에서 위축되어 가고 있다. 겨우내 작디작은 이파리 서너 개로 연명하던 워터코인 또한 마음을 졸이게 하는 녀석이다. 지난 봄에 흙과 양분을 보태어 주었더니 풍성해 져서 마음을 흐뭇하게 했었는데, 기온이 갑자기 떨어진 어느 날 밤 가을 벼처럼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게 아닌가, 참담했던 수국 사건의 공포를 다시 느끼게 했던 녀석이다. 이렇게 내 손에 죽어간 꽃과 나무는 한 둘이 아니다.
반면 소나무 아래 있는 붓꽃은 손대지 않아도 잘 자란다. 꽃도 잘 피우고, 꽃대도 날이 갈수록 튼튼해진다. 무심코 심은 메리골드는 한 해가 지나니 엄청난 번식력으로 올 여름 흐르러지게 피워낸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집 앞을 지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 줄만큼 잘 자라준다. 그러고 보니 소나무 아래 있는 애들은 나무 그늘이 보호막이 되었는지 잘 자라고 있다. 마치 넉넉한 부모의 품에서 자라 몸과 마음이 튼튼한 아이처럼 그렇게. 메리골드나 허브는 자기들끼리 서로 어울려 지내며 꽃과 향기를 피워내고 있다. 형제가 많은 집에서 자라는 모나지 않은 아이들처럼 말이다. 거실에서 마당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서로를 의지하고 기댄 꽃과 나무에서 우리 삶이 보인다.
수국이나 작약, 모란처럼 뙤약볕에 심어 둔 애들은 가려주는 그늘도 없고, 이웃하는 친구도 없이 버티다가 폭염에 이파리가 타고, 꽃송이의 숨마저 꺼지고 말았다. 기르는 법도 모르면서 예뻐서, 탐이 나서 덜컥 사들인 탓이다. 힘겹게 살아가는 꽃나무를 보고 있으니 아이 기르는 법도 잘 알지 못한 채 부모가 된 내 모습이 겹친다. 넓은 품을 갖지 못한 엄마에게 상처받았을 아이가 떠올라 가슴이 저릿하다. 마찬가지다. 심기만 해도 잘 자라 줄 것이라 여긴 것부터 잘못이다. 물을 안 줘서 죽이고, 물을 너무 많이 줘서 죽이고, 더위에 죽이고, 추위로 죽이는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생명은 내 손을 거치며 살아질 수도 있고, 숨이 막혀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니 참으로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것이 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