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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띠정 Dec 26. 2023

머플러와 델리의 겨울 스케치

인도의 겨울 풍경

     생각할수록 신기한 인도의 겨울 날씨였다. 특히 델리의 겨울은 12월에서 1월까지 두 달 정도로 기온이 영하 이하로 내려가지 않았다. 우리의 첫 인도의 겨울은 애매모호했다. 낮에는 두꺼운 겨울 외투를 입은 탓에 자동차 안에서 에어컨을 켰다가 집 안으로 들어가면 손발이 얼 것 같은 차가운 추위가 몰려왔다. 집 안 공기가 너무 차가웠다.      


겨울에는 딸아이를 등교시키기 위해 아침마다 차에 히터를 틀었다. 치마로 된 교복을 입은 아이의 체온을 지키기 위해 따뜻한 숄로 몸을 감싸 주었다. 오후가 되면 뜨거운 태양열로 기온이 올라갔다. 아침에는 히터를 켰다가 오후에는 다시 에어컨을 켜야 하는 인도의 겨울은 뭐라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델리의 겨울 한낮에 내리쬐는 햇볕은 여름 햇살처럼 뜨거웠기 때문이다. 하굣길에 몸을 움직여 대는 아이의 몸에서는 땀이 흘러내릴 지경이었다. 이러한 계절의 특징 때문에 인도학교의 겨울방학은 겨우 2주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길고 무더운 여름방학은 두 달 가까이 되었다. 일 년의 대부분이 여름이기 때문에 인도의 주택에는 난방 시설이 없었다. 무더운 여름의 이글거리는 태양 빛을 차단하기 위해 인도 집들은 거의 북향이었다. 인도 집의 대부분은 창문이 없었다. 빛이 실내로 들어오지 못하게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그토록 긴긴 타는 듯한 여름을 견디어 낼 수 있다. 주택은 대부분 박공지붕이 아닌 옥상만 있는 네모 상자 모양이었다. 옥상에는 어김없이 물을 받아 사용하는 물탱크가 자리하고 있었다.   

   

겨울을 지나기 위해서인지 테라스는 크게 만들었다. 기온이 갑자기 낮아지면 체감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탓에 많은 이들이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햇볕이 잘 드는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며 따끈한 짜이(Chai, 우유와 설탕을 넣어 펄펄 끓여 마시는 인도 전통 홍차)를 마시는 겨울 풍경은 참 정겨웠다. 사람들은 추운 실내보다는 집 밖으로 나가서 햇볕을 쬐며 몸을 따뜻하게 녹였다.      


긴 여름을 보낸 인도 사람들은 겨울에도 면이나 실크로 만든 얇은 사리나 꾸르따 수트(인도 사람들이 평상복으로 입는 인도 전통 의상)를 입었다. 요즘은 인도의 젊은이들이 현대 일상복을 입지만, 아직도 전통 의상을 즐겨 입고 있다. 찬 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가벼운 옷만으로는 급속하게 떨어진 기온을 견디기 어려워 남녀를 불문하고 어깨와 목을 감싸기 위해 두터운 카슈미르 숄(Kashmir Shawl, 카슈미르 지방의 캐시미어 염소의 연한 털로 만든 숄)이나 파시미나 숄(Pashimina Shawl, 히말라야 고산지대에 사는 산양의 복부 털로 짠 수제 직물로 실크처럼 부드럽다.)을 둘렀다. 갑자기 떨어진 기온에 대비해야 하는 방책이었다.


오래전 많은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 ‘겨울연가’에서 머플러를 멋들어지게 두르고 나와 인기를 얻었던 배우 배용준의 모습이 인도 길거리 여기저기에서 보였다. 몸을 따뜻하게 보호하기 위한 인도 남자들은 겨울 패션이었다.

     

몸을 감싼 파시미나(Pashmina, 인도 잠무 카슈미르와 히말라야 지방에서 산양의 부드럽고 연한 털로 만든 고급 모직물)담요나 숄, 스톨, 스카프 등으로 체온을 유지하며, 움직이는 햇볕을 따라 의자를 옮겨갔다. 생강이나 마살라(Masala, 인도 요리에 들어가는 혼합 향신료)를 듬뿍 넣은 뜨끈뜨끈한 짜이와 함께 비스킷을 베어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인도 사람들은 대화를 즐겨하며, 말재주에 능할 뿐만 아니라 토론이나 논쟁에도 강하다. 사실 그들의 언변과 입김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일 때가 많다. 평소에 인도 사람들이 모여서 대화하는 것을 즐기면서 길러진 능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학교에서도 ‘논쟁 대회(토론 대회)’가 열리며, 학생들도 감정을 억제하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이성적인 토론과 논쟁에 잘 훈련되고 있으니 배울만한 점이다.


인도에서 철학이 발달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작은 모임들 가운데 피어나는 이야기꽃과 따끈한 짜이 한 잔으로 짧지만 춥고 차가운 인도의 겨울을 버텨내는 그들만이 가진 삶의 지혜였다.      


바깥에는 여기저기에 불을 피워대는 화로가 있었다. 우리도 종종 발걸음을 멈추고 불가에 다가갔다. 그들과 함께 불멍에 동참하며 차갑게 곱은 손을 데웠다. 이러한 풍경은 정겹기도 하고 가끔 애처로워 보이기도 했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붉은 화로는 시린 손을 녹여주며 뭐든지 닥치는 대로 태워버릴 기세였다. 사실 이런 화로에서 나오는 매연은 인도 겨울 대기 오염의 원인이 되어 문제가 되었다. 태워서는 안 될 폐타이어 등 플라스틱제품을 태우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디왈리 축제(Diwali, 인도에서 가장 큰 힌두 명절) 때 폭죽을 많이 터트리고 대규모의 농지를 태우는 중에 나오는 연기와 대기 오염이 세계 최악의 미세먼지 지수를 갱신하고 있다. 겨울의 길거리는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뿌연 먼지로 가득하며, 학교도 휴교에 들어갔다. 거의 일상이 마비되었다. 최고치의 미세먼지를 마시며 지내야만 했다. 창문 밖 풍경은 뿌연 안개와 같은 대기 중의 미세먼지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영상의 기온을 유지하는 인도의 겨울은 살을 에는 듯한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한국의 추위에 비하면 집에 난방 시설이 없어도 전기장판 하나로 거뜬히 견디어 낼 수 있었다. 50도 가까이 오르내리는 고온으로 끓어오르는 10개월 동안의 여름을 보낸 인도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아 보였다. 비록 영상의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몸은 추운 동장군으로 다가오는 겨울을 감당해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델리에서 영상의 겨울밤에 인도 사람들이 도로 옆 길가에서 잠을 청하다가 동사하는 경우가 빈번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길고 긴 여름에 지쳐 추운 겨울을 기다리는 인도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낮과 밤의 기온 차가 큰 인도의 겨울은 질병에 노출이 많이 되어 다소 위험했다. 몸이 약한 사람들은 인도에서 겨울을 나기가 힘들었다. 특히 겨울에는 장티푸스나 바이럴 피버(Viral Fiver, 인도 겨울에 유행하는 독감의 한 종류)와 같은 바이러스성 질병 때문에 조심해야만 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바이러스가 침투해 들어와 몸을 장악해버리기 일쑤였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인도에는 겨울에 장례식이 많았다. 겨울은 유난히도 아프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은 계절이었다.    

  

딸아이도 인도에서 맞은 첫 겨울에 바이럴 피버(Viral Fiver)로 심하게 아흔 적이 있었다. 열이 많이 나고 아무것도 먹지 않는 아이에게 한국에서 가져간 해열제를 먹이며 열이 내리기를 기다렸지만 허사였다. 좀처럼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다. 아이의 몸이 불덩이 같았다. 몸을 혼자 가누기도 어려워 보였다. 평소에 잘 먹고 씩씩하던 아이는 힘이 빠져 물조차 마시려 하지 않았다. 아플 때마다 마시던 꿀물도 입에 대려 하지 않았다. 그저 엄마를 바라보며 도와달라고 애원하는 듯한 아이의 눈빛이 내 가슴을 찢었다.     


급히 같은 동네에 사는 소아과 의사 선생님 댁에 가서 도움을 청했다. 일요일 저녁에 찾아간 의사 선생님 댁 거실에서 딸아이는 모든 것을 다 토해냈다. 선생님은 다 토하고 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하셨다. 항생제를 먹은 뒤, 아이는 정말 감쪽같이 열이 내렸고, 안정을 찾았다. 음식도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해서 눈앞이 깜깜해진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서 머리에 상처가 난 적이 있었다. 나는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 아이를 붙잡고 울면서 무작정 밖으로 나갔었다. 그때도 동네 이웃들이 우리를 같은 동네에 사는 외과 의사 선생님 댁에 데려다주었다. 의사 선생님은 아이의 상처 부위에 드레싱과 응급처치를 해 주셨다. 다행히 상처는 생각보다 심하지 않았었다. 당황스럽고 두려운 위급한 상황에 머릿속이 하얘져서 어찌할 바를 몰랐었다. 그러한 어려운 순간마다 우리는 동네 이웃들의 도움으로 여러 차례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인도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의 빚을 졌고, 은혜를 입었다. 지금도 우리는 인도의 겨울을 추억하며, 함께 했던 소중한 사람들을 기억한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지 않아 겨울에도 눈 구경을 할 수 없었던 델리. 평생 하얀 눈 구경도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그곳. 10시간 정도 차를 타고 북쪽 히말라야로 굽이굽이 올라가야만 겨우 눈을 구경할 수 있었던 곳이지만, 그 땅의 그 겨울이 그립다.

인도의 겨울 풍경, 불가에서 조는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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