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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띠정 Jan 16. 2024

인도 학교에서 제2외국어가 된 한국어 열풍

인도 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다

조촐하게 시작된 주인도 한국문화원의 세종학당에 날이 갈수록 한국어를 배우러 오는 학생들로 넘쳐났다. 초기에는 학생들이 많지 않아 고민했다. 그런데 불과 그러한 고민을 시작한 지 2년 정도가 흐른 후에는 생각지도 못할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매 학기가 끝나고, 새 학기를 준비하면서 새로운 학생들의 등록을 받는 기간에 엄청난 사람들이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주인도 한국문화원(KCCI)으로 몰려왔다. 문제는 한국문화원 안에 그 많은 학생을 다 수용할 수도 없었고, 가르칠 선생님도 부족했다. 급기야 등록일을 축소하고, 모집 인원 수도 제한을 두었다. 예비 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룹 인터뷰를 진행하여 새로운 신입생들을 선발했다. 탈락한 사람들의 불만이 폭주하기도 했고, 심지어 재수, 삼수를 해서라도 지치지 않고 계속 등록 신청을 하는 사람들도 나왔다. 하물며 개인적으로 긴밀하게 부탁을 해오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어학을 배우는데 인터뷰까지 해야 하는 것도, 그 많은 지원자 가운데 적합한 신입생들을 찾아 합격시키거나, 탈락시키는 일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인터뷰 시간에 맞춰 줄을 길게 늘어선 많은 인도의 젊은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인도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이며, 한국어를 배우는데 시간과 재정을 투자하고 있었다. 기꺼이 줄을 서서 인터뷰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은 한국인으로서, 특히 외국어로서의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인도에서 한국어 열풍이 불었다. 급기야 우리나라 교육부가 인도 교육부와 협의하여 인도학교에 정식으로 한국어가 제2외국어로 채택되기 위해 힘썼다. 그렇게 주인도 한국문화원의 세종학당이 한국의 교육부와 함께 이 일을 위해 기초를 세워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내 인도 교육부에서 한국어를 인도학교의 정식 제2외국어로 채택하는 쾌거를 이루어 냈다.     


한국어 수업을 원하는 인도학교의 신청을 받아 선생님들이 교육부의 지원을 받아 인도 학교로 직접 한국어 수업을 하러 나가기 시작했다. 한국어 원어민 선생님이 되어 인도의 어린 학생들을 만나러 가게 된 것이다. 내가 한국어 수업을 하러 가던 학교는 델리 북쪽 외곽에 있는 ‘그린웨이 모던 스쿨(Greenway Modern School)’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12학년까지 갖춰진 꽤 큰 규모의 인도 사립학교였다. 

처음 그 학교에 한국어 수업하러 갔을 때, 나를 기다리던 5학년에서 11학년 사이의 장난꾸러기 인도 학생들의 눈빛과 호기심 가득한 얼굴을 지금도 사진으로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어떻게 그들의 맑은 눈을 잊을 수 있겠는가?


‘이 아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이곳에 앉아있을까?’

나는 궁금했다. 그들은 그냥 한국어가 배우고 싶다고 했다. 어떤 아이들은 BTS를 좋아한다고 팬이라고 했다. 신기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사랑스러웠다. 푸른색 교복을 입은 그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은 맑았다.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서 연신 까르르 까르르 웃어댔다. 그들에게 들리는 한국어는 신비하기도 하고,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말처럼 생소하면서도 흥미로워 호기심을 가득 채우고도 남은 모양이었다. 


교실은 더웠고, 천정에는 선풍기가 여러 대 매달려 윙윙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날씨가 더워 교실의 모든 창문은 활짝 열려있어서인지 바깥 소음이 간간히 교실 안으로 들려왔다. 화이트보드 흰색 칠판과 마커가 준비되어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교실 칠판인 옛날 녹색 칠판에 흰색과 노란색 분필이 전부였다. 거기에다 수업 중간중간 아마도 교실에서 살고 있는지 생쥐들이 출몰하여 이곳저곳을 휙휙 지나다니고 있었다. 내게는 아주 아주 특별한 결코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이 된 곳이다. 


내가 출석부에 적힌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을 때, 학생들은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그날 처음 받아 든 그들의 힌디어 이름을 내가 정확하게 부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부족한 가운데 포용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배우고자 했다. 그 시간에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나를 바라보고 앉아있는 학생들이 그토록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나는 목소리를 높여 수업을 이끌어가야만 했다. 한국어 알파벳 자음과 모음을 가르치기 위해 칠판에 가장 예쁘고 큰 글씨를 썼다. 칠판을 지우면 분필 가루가 날리고, 내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만 같았지만, 즐겁고 신나게 웃으면서 수업했다. 


마지막 종강 수업에 나는 아이들이 먹고 싶어 한 김밥과 떡볶이를 만들어 갔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음식들, 이 세상에 존재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알록달록한 한국 음식에 아이들의 큰 눈은 더 커졌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너무나 생소하게 보이는 진한 빨간색 양념이 들어간 떡볶이와 검은색 천으로 둘러싼 것만 같은, 그리고 동그라미 안에는 알 수 없는 식재료가 원을 그리며 나란히 담겨있는 김밥을 아주 조심스럽게 하나 집어 맛을 보았다. 그 오묘한 맛을 느끼며 신기해하던 학생들의 일그러진 표정이 너무 우스꽝스럽기도 하며, 귀엽고, 재미있었다. 차마 용기를 내지 못해 끝내 하나도 먹지 못하고 포기한 학생들도 있었다. 그들 인생에서 한국 음식과의 첫 만남과 그 특별한 경험을 했던 그 순간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 


나는 학생들이 너무 궁금해서 꼭 맛보고 싶다고 했던 된장과 고추장도 집에서 가져가 직접 보여주며 맛보게 했다. 채식주의자가 대다수인 학생들은 고기가 들어있느냐며 내게 확인을 해왔다. 나는 인도에서 지내는 동안에 특히 인도 사람들을 위한 음식을 준비할 때는 항상 고기나 달걀을 전혀 넣지 않았다. 김밥과 떡볶이에도 당연히 쌀과 야채 만을 넣어서 만들어 학생들에게 안심하고 맛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당연히 고추장과 된장은 순수 야채 양념인 것을 검증하고 나서 아이들이 고추장을 손가락으로 찍어 먹어 보기 시작했다. 찡그리며 맛있다고 하던 아이들, 해맑은 그 아이들의 모습들, 수줍은 여학생들의 미소가 더욱 그립다. 


사실 우리의 누런 된장은 그 뚜껑을 열기가 무섭게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바람에 된장을 맛보는 아이는 거의 없었다. 한두 학생들만 겨우 큰 용기를 내어 그들에게는 어마어마한 된장 맛을 맛보는 거대한 도전에 성공했다. 한 아이는 된장을 집으로 가져가도 되는지 물어왔다. 집에 가서 부모님께 꼭 보여드리고 싶다고 해서 학생의 손에 된장을 들려 보낸 적도 있다. 한국의 문화와 한국어, 한국의 음식과 양념이 인도 사람들의 가정 속으로 그렇게 서서히 스며들어 가고 있었다. 


한국 전통의상을 보여주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 나는 직접 한복을 입고 학교에 갔다. 문화원에서 준비해 간 한복을 학생들에게 입어 보게 하고, 옷고름을 매어주며, 함께 나란히 한복 입은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우리는 서로 작은 선물을 주고받았다. 순수하고 따뜻한 아이들의 마음을 느끼며 눈물이 울컥했다. 나는 학생들에게 아리랑 노래를 가르쳐주었는데, 후에 학생 밴드가 BTS의 ‘아리랑’을 연습해서 발표하는 모습을 보면서 뜨거운 감정이 차올라 주책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한국어로 자기소개하는 연습도 하고, 한국 노래를 배우던 그 시간이 그들의 인생에 작은 밑거름이 되었기를 바란다. 그 당시에는 힘들고 불편하기도 했지만, 돌아보면 얼마나 보람되고 행복한 순간이었는지 모른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보고 싶다. 


이제 인도 교육부에서 한국어를 정식 제2외국어로 채택했다. 지금 인도 학교에서는 교과목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인도 현지에서도 더 많은 한국어 교사를 양성해 내고 있으며, 점차 더 많은 인도 학교에서 학생들이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선택한다. 앞으로 한국어의 열풍이 얼마나 더 뜨겁게 어떻게 불어갈지 생각만으로도 그 기대가 벅차오른다.


인도 사람들은 알고 있다. 한국어가 그들의 미래에 얼마나 큰 경쟁력을 지니고 있는지를 일찌감치 알았다. 한국어를 구사하면, 앞으로 그들의 삶이 질적으로 얼마나 좋아질 수 있는지 볼 수 있는 보배로운 눈을 가졌음에 분명하다. 그들은 미래를 훤히 내다보고 있다. 이미 한국어를 공부한 인도 사람들이 한국 기업에 취직해서 자리를 잡고 있지만, 앞으로는 이보다도 더 상상하지 못할 만큼 더 많아질 거라는 정도는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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