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시골 북카페를 찾아오는 사람들마다 한 마디씩 한다. 멀리멀리 산을 넘고 넘어 굽이굽이 골짜기를 지나온 듯한 뉘앙스를 건넨다. 마치 아주 깊은 산속, 미지의 세계 속으로 들어온 것처럼.
정말 그러할까? 변명을 하고 싶어 진다. 사실 이곳은 그리 깊고 깊은 산속이라 하기에는 좀 억울한 감이 있다. 일단 북카페에서 바로 1.5킬로 전방에 대단지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오는 공사로 지형이 제대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눈에 띄는 현장의 모습이다. 있던 도로가 없어지고, 없던 도로가 새로 생겨났다. 이미 친숙한 동네들이 사라진 지는 벌써 오래다. 그야말로 동네가 삭제되고, 집들과 건물, 교회, 주유소, 농장, 학교가 순식간에 삭제되었다. 사라진 도로 탓에 집을 찾아오는 데 순간 정신을 잃어 혼돈 상태에 빠졌다. 그러다가 도착한 곳은 집이 아닌 엉뚱한 곳에 도착을 해서 집을 잃어버리고, 낯익은 동네를 찾지 못해 길을 헤매게 될 지경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물리적인 보이는 한 부분에 불과하다.
누가 이곳을 시골이라 시선을 아래로 본다면 낭패를 당할 것이다. 그저 어르신들만 계시고, 농사를 생업으로 하시는 분 들만 거주하는 곳으로 생각한다면 또한 큰 오산이다. 생각보다 좋은 식당보다도 오히려 분위기 좋은 카페가 많은 지역이다. 북카페와 작은 책방도 있다. 근처에 작은 초등학교가 무려 6개나 있는 젊은 인구가 꽤 분포된 곳이며, 아이들이 뛰어노는 푸르른 마을이다.
작은 우리 동네에도 유치원과 초등학생 아이들이 8명이며, 중학생도 한 명 있고, 결혼하지 않고 직장에 다니는 젊은 청년 자녀들도 여럿 있으며, 결혼해서 부모님과 함께 거주하는 젊은 부부들도 있다. 평균 연령이 꽤 낮은 편이다. 그렇다면 우리 동네는 노인들이 사는 노년 마을이 아니라 청년 마을이라 해도 무방하다. 실제로 그러하다.
주변 동네는 우리보다 더 젊고 인재도 풍부하다. 시골의 젊은 엄마들이 우리 북카페에 모여서 차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순식간에 이곳이 시골임을 잊어버리게 한다. 나는 그런 젊은 엄마들의 모습이 좋다. 아이들을 아파트 촌에서 획일화된 모습으로 키우고 싶지 않아서, 자연 속에서 흙을 만지고 밟으며, 뛰어놀면서 자라게 하고 싶은 엄마들의 마음이 시골 학교를 찾아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들어오게 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그들은 과감하게 결단했다. 결심에만 그치지 않고 담대하게 실행에 옮겼다. 너무 멋지다. 한 번쯤 인생을 살면서 그 정도 용기와 도전으로 삶의 방향과 색깔을 완전히 바꿔보는 시도가 얼마나 아름다워 보이는지 모른다.
아무튼 그러다 보니 이곳에는 인재들이 많다. 다양한 분야의 재능 많은 사람들이 많아서 오히려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열려있어서 좋다.
꾸준히 모여서 책 읽는 엄마들의 모임도, 뭐든 손으로 만들고, 그리고, 공부하며, 배우는 작은 구성원들이 있다. 라탄 공예, 켈리그라피, 인형 만들기, 옷 만들기, 홈패션, 정원 가꾸기, 그림책 모임, 코딩 수업, 책 수업, 꽃꽂이, 필라테스, 바이올린, 피아노, 금속공예, 도자기, 가죽 공예, 염색, 힐링센터, 칼 제작, 한국어 수업, 독서모임을 비롯해 작가, 북 디자이너, 과외 선생님을 비롯해 교수님과 박사님 등 너무나 많은 재능가들이 존재한다. 다 나열하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길냥이 엄마와 유기견을 돌보는 사람도, 반려동물을 아끼며 애정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이곳을 문화 시골, 문화 천재 시골이라 불러야 할 것만 같다.
노인과 젊은 이가 함께 공존하는 이곳에서 우리 북카페의 역할은 분명히 있지 않겠는가? 이곳이 젊은 중년들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어르신들에게도 행복한 문화 공간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문을 열어 놓는다. 시도하고 계획하는 북카페 프로그램들이 하나하나 열리고 있어 기쁘다. 사람들이 오고 가며 문지방이 닳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북카페 단골 어르신들도 계신다. 검은색 고급 승용차를 타고 혼자 오셔서 아이스 바닐라 라테를 드시고 가시는 멋쟁이 팔십 대 할아버지는 종종 친구분들과 함께 찾아오신다. 집에도 우리 북카페처럼 본인의 서재를 잘 만들어 놓으셨다면서 내게 사진을 보여주셨다. 잘 정돈되고 관리된 어르신의 정원 사진도 보여주시며, 우리 북카페를 좋아해 주시는 어르신이 너무 따스해서 좋다.
"집에만 있으면 뭐 해. 자꾸 잠만 자는데, 이렇게 나와서 바람도 쐬고 하면 좋지. 그래서 오는 겨."
괜히 여쭙지도 않았는데, 자리에 앉으셔서 말씀을 건네신다.
나는 자주 찾아주시니 얼마나 감사하고 좋은지, 잘해드리고 싶어서 괜히 이것저것 챙겨드리면, 배부르다 하시면서도 행복해하시는 어르신의 모습이 나를 기쁘게 한다. 나는 제안을 했다.
"여기 오시면 제가 그림책 읽어드릴게요. 그림책을 읽으시면 너무 재밌어요."
"눈도 안 보여, 기억도 못 하고, 다 잊어버려. 못 읽어."
"그러니까 제가 읽어드릴게요. 그냥 들으시면 되어요. 재밌게 읽어드릴게요."
그 후로 몇 번 읽어드리려고 시도를 했지만, 아직 실패다. 친구분들과 오실 때마다 그림책을 읽어드리겠다고 조금 유난을 떨었더니 요즘은 발길이 뜸하시다.
괜히 책 읽어드린다고 한 건 아닌지 살짝 걱정도 되지만, 이런 멋쟁이 할아버지들께도 북카페가 작은 즐거움을 드릴 수 있다면 좋겠다. 부디 언젠가는 어르신들께 그림책 읽어드리는 날이 오기를.
겨울에도 아이스 바닐라 라테를 드시는 어르신은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커피)'시다. 내가 우리 북카페를 넘어 우리 시골을 전체에서 만난 어르신들 중에 가장 젊은 노인이시다. 꼭 현금을 챙겨 오셔서 계산하시고, 잔돈은 그냥 용돈이라며 받지 않으시는 아버지 같은 어르신이 계셔서 위로가 된다.
젊음은 나이를 초월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임을 보여주시는 나의 애정하는 아이스 바닐라 라테 어르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