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새로운 가구를 거의 사용해보지 않았다. 중간중간 새 침대를 살 수 있었던 기회를 제외하곤 다른 사람들이 쓰던 가구를 주로 불평 없이 애용해 왔다.
결혼할 때도 시댁에 들어가 살게 되면서 새 가구를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영국으로 남편과 함께 떠난 유학 생활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재활용 가구를 이용해서 살아가는 알뜰한 삶이 몸에 배이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집을 구할 때는 집세가 '퍼니시드 하우스' furnished house(가구가 준비된 집)와 '언퍼니시드 하우스'unfurnished house(가구가 없는 집)에 따라 달랐다. 당연히 가구가 있는 집이 더 값이 나갔다. 이민가방을 들고 겨우 박스 몇 개를 배로 부치고 영국에 당도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작은 퍼니시드 플랫 하우스 furnished flat house (3층 다락방 집)밖에 없었다. 기숙사를 기다리다가 결정한 최선이었다. 그 후 영국 시티로드 밥티스트(city road Baptist church) 사택에 줄곧 살게 되었을 때도 모든 가구가 준비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던 식탁, 소파, 침대, 책상을 사용했다. 기타 필요한 냉장고나 자동차는 교민게시판에서 구입했고, 여러 선배와 동문들의 도움으로 식기류와 밥그릇, 밥솥, TV 등 소소한 살림살이를 채웠다. 지금도 나는 그중에 기다란 스텐 국자 하나를 영국에서 한국으로 다시 인도로 그리고 한국에 와서 우리 집 부엌에서 유용하게 잘 사용하고 있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길에 나눔 해 준 그릇을 지금도 잘 쓰고 계신다는 사모님. 지난여름에 고맙다며 영국에서 비타민을 여러 병 챙겨서 내게 보내오셨다.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아직도 기억하고 고마워하시니 내가 오히려 감사하다.
한국에서 다시 인도로 들어가는 컨테이너에 아이와 우리의 침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중고품으로 채웠다. 중고점에서 싣고 간 식탁 의자는 다시 인도에서 한국으로 보내졌다. 지금도 우리의 식탁 의자가 되어 임무를 다하고 있다. 오래오래 잘도 써먹고 있는 중이다.
이곳에 와서 집을 지었다. 가전제품은 거의 새 거로 동생들에게도 선물도 받고, 무리해서 구입을 했다. 하지만 가구는 여전히 중고들이다. 친정엄마가 소파를 사라고 현금을 두둑이 주셨는데, 난 소파도 중고로 구입해 버렸다. 결국 새로운 가구는 침대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 인테리어가 좀 그렇다. 서랍장, TV장, 콘솔, 책상, 뭐 하나 새것이 없으니 모양과 색상과 디자인은 들쭉날쭉하다.
사실 필요 없는 물건도 많지 않던가.
미래의 나의 집은 어떨까?
영국과 인도에서 중고 가구를 써온 경험은, 내게 소박한 삶의 가치를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미래의 집을 상상할 때도, 나는 그 따뜻한 ‘소박함’이 스며들기를 바란다.
내가 관리할 수 있는 만큼만 한 적당한 크기의 꽃과 신선한 야채와 유실수가 심긴 정원이 있고, 청소하기 부담 없는 단층집이면 좋겠다. 할 수만 있다면, 그때는 내가 원하는 디자인과 색상을 지닌 새로운 가구를 내 취향에 맞춰 구비하고는 간소하고 정갈하게 꾸미고 싶다.
난로가 있으면 좋겠는데, 남편이 난로 피우는 걸 어려워한다면 없어도 괜찮다.
편안한 소파에 기대어 커피가 식기 전에 마셔주며, 읽다 만 책을 읽고 싶다. 내 다리 곁에는 반려견 한 마리가 꾸벅꾸벅 졸고 있지 않을까?
정원에 나가서 꽃을 한 다발 꺾어다 식탁 테이블에 올려놓고, 바람결에 흔들리는 은은한 꽃향기를 맡고 싶다. 가끔 찾아오는 지인들과 까르르 웃고 떠들며, 정기적인 티타임도 나눌 것이다. 남편은 늘 동행하겠지.
그리고 가끔 딸아이의 취향대로 꾸며진 금색 화려한 집에 놀러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