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 만에 서울 나들이에 나섰다. 백 년처럼 길게 느껴진다. 코로나가 꽉 발목을 붙잡고 있으니 서울을 코 앞에 두고도 마음대로 갈 수가 없었다. 벼르고 벼르며 기다리던 딸아이와 함께 한 특별한 외출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샤이니는 작년에 한국으로 온 이후로 한 번도 서울을 안 가본 게 아닌가?
마침 오랜만에 친구랑 초밥을 먹기로 했는데, 딸아이에게도 서울 구경을 시켜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제 이 곳에서 서울에 가려면 꽤 먼 여행을 해야 한다. 먼저 차를 타고 시내로 나가서 차를 주차해 놓고, 서울 가는 광역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 지하철이나 버스로 갈아타야만 원하는 목적지에 이를 수가 있다.
하필이면 아침부터 비가 내리는 외출하는 날, 서둘러 채비를 하고 나섰지만 우리의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분명히 전 날 최적의 코스를 미리 찾아봤으면서도 결국 실수를 하고 말았다.
분명히 시청을 지나간다고 생각했던 버스가 광화문을 지나 바로 서울역 쪽으로 가는 것이다. 덕분에 경복궁과 인왕산을 보고, 세종대왕 님과 이순신 장군을 뵙고, 세종문화회관과 광화문 광장, 조계사와 안국역 골목의 인사동 거리도 살짝 보였다.
돌담길을 따라 걷는 서울 골목길
비만 오지 않는다면 당장 버스에서 내려 걷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비가 내리고 있어서 마음을 진정시키며 버스에 탄 채로 아이에게 창밖으로 보이는 순서대로 눈으로 입으로 설명을 해주는 걸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생각했던 버스 노선이 아니었다. 버스는 어느새 숭례문을 지나 서울역으로 가고 있었다. 일단 서둘러 급히 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잡아 탔다. 노선이 엉키는 바람에 약속 시간에 맞추지 못해 친구랑 통화하는 내용을 들은 기사님이 내게 말을 걸어오셨다.
"아니, 어디서 오는데 그렇게 오래 걸렸어요? 난 좀 전에 경남에서 9시 반에 출발해서 도착했다는 사람 병원까지 태워다 줬는데, 경상도보다 멀리서 왔어요?"
"용인에서 왔어요. 제가 이사를 갔는데 노선이 헷갈려서요. 백병원에서 내렸어야 했는데, 바로 시청으로 가는 줄 알고 있다가 빙 돌았어요. 광교에서 가는 버스 노선으로 착각했지 뭐예요. 이 전에 수원에서 살았거든요. 시골 촌 티를 내버렸네요."
너무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하다 보니 어리둥절했다. 샤이니도 높은 빌딩 숲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서울 구경 삼매경에 빠져 들었다. 점심도 맛있게 먹고, 북카페에서 책도 보고, 커피도 마시고, 그림도 그리며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서 잠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회용 지하철 티켓도 사 보고, 흔들리는 지하철에 몸을 싣고 사람들 틈에 서 있어 본다.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고, 요즘 유행하는 트렌드는 뭔지 살펴보기도 하고, 사람들의 표정을 힐끗 쳐다보기도 한다.
2호선 순환 지하철이 지상으로 달릴 때는 바깥 구경을 한다. 고향은 아니지만 마치 고향 같은 기분이 든다. 남편은 서울이 고향이라 종종 서울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곤 했지만, 내겐 서울이 고향이 아닌데도 그런 비슷한 느낌마저 든다.
강변과 잠실역, 신천은 나의 청춘이다. 물론 학교를 다닐 때는 태릉까지 다녀야 했지만, 내 젊은 시절의 나의 일터요, 약속 장소는 이곳이었다.2호선 지하철이 강변역을 지날 때 추억이 밀려오며 가슴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동서울터미널 2층의 두란노서원은 나의 단골 약속 장소였다. 그곳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책을 보거나 마음의 안식을 누렸다. 건너편 테크노마트 CGV에서 영화도 보고, 수다도 떨고, 지하 푸드 코트에서 커다란 양푼 비빔밥을 친구와 나눠 먹었다. 지금도 그 푸드 코트가 그대로 있는지, 메뉴도 같은지 다시 한번 가서 눈으로 보고 싶은 곳이다.
2호선을 타고 잠실대교를 건너며
지하철이 잠실대교를 건널 때 딸아이에게 말을 꺼냈다.
"엄마가 결혼하기 전에 여기에 매일 와서 일하며 살다시피 했던 곳이야. 날마다..."
"진짜? 무슨 일 했어?"
"음... 잡지 편집했었어. 에디터."(사실 회보 발간함)
말하고 보니 거창해 보이지만 그렇게 멋지게 일하지는 못했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 시절을 사랑하고 종종 그리워한다.
수요일에 일이 늦게 끝나면 바로 근처에 있는 남포교회에 가서 수요예배를 드리곤 했다. 그 당시 나는 남포교회 박영선 목사님께서 쓰신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책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었기에 더 좋아했던 시간들이다.
매일 어두운 밤에 잠실역 5번 출구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나의 청춘이 눈에 아른거렸다. 너무나도 바쁘게 열심히 달리며 꿈을 꾸던 나는 시간관리와 자기 계발, 미래의 계획과 비전에 무척 관심을 갖고 부단히도 노력했던 거 같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와 쉬었다가 다시 아침이 되면 서둘러 잠실역 6번 출구에서 내려 신천역으로 달음박질하다시피 걸었던 그 시절 청춘이 눈 앞에 보였다. 마치 두 사람이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를 알아본다.
롯데백화점과 롯데호텔, 롯데월드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121층 롯데타워가 들어오고 나서 너무 많이 변한 잠실의 풍경이 낯설게 느껴진다.
너무 많이 변한 잠실역 풍경
내게는 어쩌면 세월의 간격을 좁힐 수 있는 교집합이 필요하지 않을까? 오래전 청춘이던 나와 지금의 나의 모습이 넓어진 간격으로 멀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땐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이 화장을 하지 않아도 고왔는데, 지금은 창문에 비치는 내 모습 대신 창밖 풍경이 더 눈에 들어온다. 어쩌면 지금 내 모습이 오래전 내 청춘의 얼굴보다 더 낯설기 때문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