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립 키우기 실패, 해도해도 안될 때

자아를 성찰하다

by 엄지언

한평 베란다 텃밭을 시작하며 튤립 구근들을 먼저 주문했다. 실한 구근들이 도착해 심었더랬다. 싹까지 올라와있어 머지 않아 탐스러운 꽃을 볼 수 있겠구나 했다.

이렇게 실했는데 쩝.


그런데 웬 걸. 아무리 지나도 튤립은 올라오지 않았다. 심지어 싹도 제대로 나지 않았다. 작년에 대 실패를 경험했더랬다. 꽃시장에서 튤립 세봉지를 사다 심었다. 어떤 구근도 싹이 나지 않았던 기억. 추워서 그랬겠지, 베란다에만 둬서 그랬겠지, 물이 많아 그랬겠지, 여러 추측을 했더랬다.


그래서 다시 도전했다. 올해는 꼭 꽃을 보고야 말겠다는 각오였다. 일부러 나누어 심었다. 한세트는 개별 화분에, 한세트는 큰 야외 화분에. 베란다 안에도, 바깥에도 놓았다. 그런데 내가 관리를 잘 못한 걸까? 물을 제때 안줬나, 아니면 너무 과습했나. 너무 늦게 밖에 내놓아 뿌리가 썩었나. 그런데 모두 실패. 단 하나의 싹도 나지 않았다.


대체 이유가 뭐였을까. '튤립 키우기' '튤립 키우기 실패'로 검색해서 한참을 뒤졌다. 서늘하고 해 잘드는 곳에서 자라는 튤립. 과습이 좋지 않단다. 그래도 너무 말리면 안된다. 추위에 강하지만, 노지에서 너무 추우면 얼기도 한단다. 아니 뭐 이리 어려워. 이렇게 하는 게 좋지만 한편으론 이렇게 안하는 게 좋은, 밸런스가 필요한 튤립인가. 밸런스하면 난데. 블루베리도 열매 맺고, 산딸기도 재배해 매년 따먹던 난데. 너 튤립 나 정말 어렵다!


가만보니 동향 베란다는 쉽지 않단다. 그래서 그런거니? 우리집 베란다는 동향이다. 해가 아침에만 쨍하다. 과습과 통풍에 신경써야한다. 또한 저온에서 키워야 한단다. 그래서 그랬던 거니? 심고 날씨가 너무 들쑥날쑥 했었지. 엄청 추웠다가 엄청 더워지기도.


뭔가 오기가 생긴다. 될 때까지 하고 싶다. 하지만 다시 심으려면 내년 봄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현실. 나는 내년에 튤립을 더 많이 왕창 사서, 다양한 조건에서 심어보겠지. 이렇게 하다보면 언젠가는 되겠지. 하지만 그전에 인정해야 할 것같다. 실패했다. 그리고 이번이 두번째다.

20200530_003513.jpg 과습에 망가진 구근들

나는 포기를 모르는 인간이다. 그냥 타고나길 그렇다. 하지만 가끔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음을. 쉬었다가 다시 시작해야 함을. 때를 다시 기다려야함을. 이렇게 배운다. 그런데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끔 뭐든 쉽게 내려놓고 편히 사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쉽지만 누군가에게 정말 힘든 일이 있다.


이것은 내 '지속성' 기질과 연관이 있다. 지속성 높은 사람들은 생각의 전환이 힘들다. 나같은 사람들은 뭔가가 잘 안되면 더 타오른다. 되지 않은 것을 머릿속에서 떨쳐내기 어렵다. 어떻게든 다시 시도해야 직성이 풀린다. 해내야 순탄하다. 그래야 그 생각을 떠나보낼 수 있기 때분이다.


정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뭐 하나라도 완성하고 끝내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이건 내 인생에서 터득한 노하우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마음속 의식을 치룬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기에 이제 그만 되었다 라는 마음의 매듭을 지으면 완성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정 안될 땐 대리 완성도 필요하다. 꿩 대신 닭이라도 괜찮다.


이런 내가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나를 받아들이자 오히려 나로부터 편안해졌다. 그래 나는 이런 사람이야. 그러니 나답게 살자. 장점도 단점도 모두 안는다. 비로소 내 삶의 책임감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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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키우며 정신 없는데 2년째 시도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또한 심으며 첫째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니 결과는 둘째고 과정이 소중하다. 또다시 실패했지만 이만큼 했으니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년에도 도전한다. 그냥 그게 나니까. 나는 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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