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멸한 한평 베란다 텃밭

다섯발자국을 가로막는 마음의 유리벽

by 엄지언

우리 집 베란다 야채들이 전멸했다. 오이도 열리고 완두콩도 따먹던 작은 텃밭.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한동안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베란다에 가볼 마음의 여유가 들지 않았다. 나는 매일이 버거웠다. 하루하루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고 버티는데 모든 에너지를 썼다. 잠시 들러 물을 줘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마음을 일으키지 못하니 몸이 일어나지 않았다. 매일 생활하는 거실에서 다섯 발자국만 걸어가면 되었다. 단 5분만 살펴보면 되었다. 그런데 나는 그걸 하지 못했다.


흙이 바짝 말라있겠지. 다 시들어가고 있겠지. 심지어 몇 가지는 말라죽었을지도 몰라. 물을 주자. 그런데, 지금은 못하겠다. 나중에 나중에...


풍성했던 텃밭이 이렇게.


그 나중에가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나는 겨우 힘을 내서 베란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 거리가 얼마나 멀었던가. 그 잠깐의 여유가 나에게 얼마나 귀했던가. 역시나, 잎들이 추욱. 식물들은 말라있었다. 휴. 몰골이 처참했다. 미안했다. 이럴 걸 알고 더욱 몸이 움직이지 않았던 걸까. 난 뭐가 두려웠던 걸까. 여유는 있었던 걸까. 일단 생각은 접고 몸을 움직였다. 바짝 마른 흙에 물을 주었다. 마른 풀들을 뽑아냈다. 살아있는 것들에 고마운 시선을 보냈다. 물을 주니 그제야 숨을 쉬었다.


미안. 미안. 미안해. 내가 대체 왜 그랬던 걸까.


보이지 않는 투명 유리막이 있는 듯했다. 물리적인 것보다 더욱 강한,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그것. 내 마음은 어떤 상태였던 거지? 내 안을 들여다보았다.


친정엄마가 미국에서 잠시 방문했다. 덕분에 오전 시간 잠시 일을 볼 수 있었다. 내가 하는 일에 엔진이 달렸다. 글을 쓰고, 올리고, 영상 편집을 했다. 이 너무 재밌었다. 힘든 육아는 버티는 시간이 되었다. 친정엄마는 금방 돌아가셨다. 미루고 미루던 둘째의 어린이집 적응을 시도했다. 오전만 보내 잠시 내 일할 시간을 확보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엄마랑 바로 떨어져야 해서였을까. 둘째는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오랜만에 건강검진을 했는데 일부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 얼마 전 겨우 나를 일으켜 세웠는데. 다시 바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여러 가지 일들에 내 정신은 갇혀있었다. 일종의 우울증이었는지도 모른다. 원해서 괴로웠고, 원하지 않으니 괴로웠다. 나는 갈 곳이 아무 데도 없었다. 아이를 키우며 수많이 겪었다. 내가 바라는 데로 되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모든 목표를 버렸다. 그런데 그것도 행복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나가는 것. 내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주변의 다른 것들을 차단하는 것. 그것들을 해내야 했다. 얼마나 중요하면서도 어려운가. 나에게 두려운 것은, 밸런스였던 걸까.



자, 다시 용기를 내어 베란다를 살려내자.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니 더 신속하게 잘할 수 있다. 식물들이 전멸했을 때 내가 따르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풍성해진 보스턴 고사리

먼저 잘 살아있는 식물들을 챙긴다


다 죽어가는데 오히려 더 잘 살아있다니. 이보다 고마울 순 없다. 내 은인과도 같은 존재들. 이번 베란다 사건에서는 호야, 보스턴 고사리가 특히 그랬다. 내가 데리고 있던 호야는 이렇게 풍성해지는 법이 없었는데 이아이는 좀 다르네. 또한 보스턴 고사리는 키우기만 하면 말라죽었는데 이번은 별개인가. 그리고 흙꽂이 해둔 스킨답서스가 뿌리를 내려 새 잎을 내었다. 이 와중에도 자리를 잡았구나!


더욱 살아난 호야
흙꽂이로 뿌리 내린 스킨답서스



다시 씨를 뿌린다


말라죽은 것을 걷어내었다. 거기에 다시, 같은 씨를 뿌렸다. 잘 안됐음 다시 키우면 되지 뭐. 씨앗도 많은 걸. 흙을 고르고 잔뿌리를 걷어낸다. 다시 물을 뿌린다. 내 마음이 씻겨 내려간다. 거기에 작은 구멍을 내어 씨앗을 콕 눌러 넣었다. 아. 뭔가 희망이 다시 심어지는 기분. 며칠 만에 푸릇한 루꼴라 싹이 쏙 돋아났다. 좋다.


다시 루꼴라 씨를 뿌려 싹이 돋아나다


새 식물들을 들인다


죽은 아이들을 다시 들인다. 들여보니 새 식물들도 여름이라 상태가 좋지 않다. 아, 이 아이들이 여름에 민감해서 더 그랬을 수도 있겠구나. 백 프로 내 잘못만은 아니었을 거라고. 때가 더욱 그리했다고. 내 마음을 달래 본다. 잘 안되면 또 들이면 된다. 두세 개 더 들여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도 있다. 새로운 아이들도 함께다. 더더욱 싱그러워진 베란다. 단돈 삼만 원에 단순하게도 너무 행복해졌다. 이 모든 게 식물 세상에선 가능하다. 맘 편히 다시 뿌리고 다시 들여도, 괜찮다.


잘 포장되어 온 식물들♡
엄청 실한 고추모종
다시 풍성해지자






마음 힘든 사람들에게 정말 도움되는 건 원예인지 모른다. 내 마음 그대로 식물들이 반응한다. 내가 아프면, 식물들도 힘이 없다. 내가 기분 좋으면, 식물들도 노래를 부른다. 내가 관심을 끊으면, 식물들도 그 숨이 끊어진다. 그럼에도 다시 시작하기 매우 쉽다. 내 마음을 살피려면 식물들과 함께 살아가기다.


나는 다시 내 걸음을 찾았다. 마침 경험수집잡화점 건강 관리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검진 결과를 계기로 더욱 의지를 다잡게 되었다. 꾸준히 관리한 결과, 한 달 만에 작지만 만족할만한 성과가 있었다. 다른 것이 아닌 내 건강으로 성취감을 느끼다니. 너무나 오랜만에 겪는 기분이었다. 또한 남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유 없이 화내는 걸 대폭 줄이고 아이 돌보는 걸 도와주기 시작한 것이다. 왜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만 마음이 동하는 걸까? 기억을 더듬어보니 예전 습관성 유산 때도 그랬다. 둘째도 다시 가정보육으로 돌아왔다. 아이와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을 더 누린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나도 아이도 일도 속도에 맞게 천천히 한 걸음씩. 필요시 주변을 차단하고. 어렵지만 그리하련다.


전멸했던 베란다는 다시 녹색이 움튼다. 내 마음처럼. 혹시나 다시 이런 일이 생겨도 나는 또 일어날 것이다. 내 베란다와 함께. 이제는 두려움을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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