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잘되며 오래가는 것을 원할 때, 카랑코에
그런 것이 존재한다
베란다에 하나둘 꽃이 핀다. 오래도록 피고 지고를 반복하는 제라늄에 이어 피클오이의 소박한 꽃까지.
피고 지는 한평 베란다 꽃들. 제라늄과 피클오이꽃
그런데 그 옆 마치 조화처럼 시간 지나도 변함없이, 풍성한 꽃을 자랑하는 카랑코에가 있다. 정확히는 겹 카랑코에, '칼란디바'다. 통칭 카랑코에라 부르겠다. 저번 달 꽃시장에서 고르다 고르다 첫째가 겨우 선택한 꽃이다. 단돈 4천 원에 가져와 여태 피어있다.
내게 카랑코에는 꽃다발을 사려고 갈 때마다 가성비에 끌려 사 오는 꽃화분이다. 단돈 몇천 원에 몇 개월씩 꽃을 즐길 수 있다. 단단하고 풍성하며 색과 종류가 다양하다. 여러 색을 골라 화분으로 만들어도 예쁠 것이다. 또한 다육과로 키우기 쉽다. 방 안 그늘에 둬도, 물 안 줘도, 꽃은 그대로다. 꽃을 계속 피우려면 분갈이해주어 방을 넓혀주는 것이 좋단다. 햇빛이 드는 곳에 두어야 한다. 진 꽃대를 잘라내면 줄기가 단단히 자라며 목질화 된다.
부케같이 예쁜 겹 카랑코에, 칼란디바
가끔 너무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 버거울 때가 있다. 수많은 아이돌이 뜨고 진다. 올해 잘돼도 내년은 또 모른다. 하루만 자고 일어나도 세상이 너무 달라져 놀란다. 얼마전 북한의 누가 죽었다더니, 이번엔 이태원 클럽에서 뭔 일이 있었단다. 빠르게 적응해야 하고. 계속 정보가 업데이트 되어야 하고. 뒤처지지 않게 공부해야 하고. 나도 사실 책과 음악은 항상 새로운 걸 즐기는 터다. 하지만 그 외의 영역에서 평화와 고요를 좋아하는 나는 가끔 지친다.
잘 되고 쉽고 오래가는 건 없을까. 육아가 조금 수월해진 요즘, 나는 앞으로 어떻게 일할지 수많은 시도와 연구를 하는 중이다. 그런 게 존재하긴 할까. 계속 바꾸어 세상에 적응해야 하는 것 말고, 한번 해놓으면 질 때까지 오래도록 누릴 수 있는 것. 있더라도 사기일 듯한. 혹은 사람들이 이미 몰려 레드오션일지 모를.
결국 '나'가 되는 것이 답이 아닐까 생각한다. 누가 나를 백 프로 따라 할 수 있을까?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에는 진정한 경쟁자가 없지 않을까? 나는 조금씩 바뀌어도 결국 나이지 않을까? 그렇담 나만이 할 수 있는 그건 뭘까. 가장 나스러운 것. 내 인생만이 전달할 수 있는 것.
계속 찾는 중이다. 결코 쉽지 않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이 나지 않으면 이것저것 해보며 주변의 반응을 보는것도 괜찮다. 그것이 콘텐츠가 된다. 나는 요즘 첫 번째 힌트를 얻었다. 브런치로 발행하는 매거진 <공대 엄마 예민 아이 육아 연구> 스타일을 살려보라는 감사한 분의 조언을 들은 것이다. 상당히 '나'스럽고, 나만의 경험을 대변하고, 아무도 이런 논문 같은 육아 글을 쓰지 않는다. 사실 누가 읽을까 싶어 아무 생각 없이 쓰던 글들. 글은 그렇게 써야 하나 보다. 아무 생각 없이 나스럽게.
또한 고전이 그럴 것이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오래가는 것에 매달리게 된다. 사람들은 고전 인문학 등에 파고든다. 어디에나 적용되는 영원한 지혜를 찾는다. 요즘 육아서도 '공통'의 지혜라는 콘셉트가 자주 등장하는 걸 보면 같은 이치인 것 같다. 내가 고전의 지혜를 가진다면. 어지러운 세상에도 중심을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내가 말하고 쓰는 것들이 그러한 오래가는 가치를 지니게 될지 모른다.
몇달째 그대로 풍성하고 아름다운 카랑코에 꽃
투고 원고를 다듬으며 카랑코에를 바라본다. 부디 내가 찾은 것이 오래도록 피는 카랑코에 같은 꽃이 되었으면. 물을 좀 안 줘도 햇빛을 덜 비춰도 키우기 쉬운. 벌레 꼬이지 않으며, 조금만 신경 쓰면 더 크게 키울 수 있는. 풍성하며 아름다운 가능성 많은 카랑코에 꽃. 우리 집 베란다 한 켠에 오래도록 피어있는 아름다운 너. 오늘 밤엔 너를 내 품에 쏙 안은 꿈을 꾸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