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방법을 끝까지 찾으면 둘 다를 얻을 방법은 분명 있다.
육아하며 참 속상했다. 아이를 키우니 일을 잃었다. 일을 하면, 아이와의 시간을 잃는다. 양자택일해야 하는 걸까? 하나를 얻기 위해 하나를 포기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그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여자의 운명인 걸까?
그런데 길을 좀 지나와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다. 요즘은 아이도 보면서 일도 하는 엄마들이 많아졌다. 나름의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다. 먼저, 낮에는 아이를 돌보고 밤에는 프리랜서로 일하는 엄마다. 밤에 쉬어야 하는 게 맞지만, 일이 또 다른 '쉼'이 된다면 가능하다. 일을 함으로 돈을 얻고, 성취감을 얻고, 무엇보다 '안심'을 얻는다. 일의 끈을 잡고 있다는 안심. 엄마가 행복해야 육아도 잘 되는 법 아닌가. 그렇게 번 돈으로 육아에 요령을 꾀할 수도 있다.
또한 육아하며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 엄마다. 아이 재우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 사실 일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하다 보니 재밌어서 일처럼 열심히 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와 다음날 읽을 영어책에 세이펜 스티커를 붙인다. 미술 놀이할 재료를 정리해 놓는다. 레시피 뒤져가며 다음날 먹을 아이 반찬을 만든다. 사진 찍고, sns에 올리고, 소통하고 잠든다. 성취감, 육아 효능감, 아이 발달 자극 모두 챙긴다.
좋은 직장에 다닌다면 오랜 기간 아예 육아 휴직을 하고 그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아이와의 온전한 시간. 매일 아이를 눈에 담는다. 감정을 심장에 새긴다. 일하고 싶어 몸이 간질간질할 때도 있지만, 열정을 쌓아두었다가 일에 복귀하면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나는 아이는 그럭저럭 잘 키웠지만 일적인 부분에선 그 시간에 공백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내가 매일 썼던 일기들. 읽었던 수많은 연구자료와 책들. 그걸 모아 모아 정리하니 내가 그동안 걸어온 길이 보였다. 그걸 모아 브런치북 <난초 아이>를 만들었다. 진통을 겪어 낳았다. 나는 아이를 둘 낳았는데, 이렇게 하고 보니 아이가 하나 더 늘었다. 내가 글로 낳은, 내가 키울 '책'이라는 아이. 분명 두 마리 토끼를 잡을 방법은 있다. 한평 베란다를 가꾸며 더욱 그걸 느낀다.
아이는 유튜브 영상을 보다 '벌레잡이 식물'을 알게 되었다. 끈끈이주걱, 파리지옥, 네펜데스. 매일 노래를 불렀다. 어쩜 식물을 좋아하는 나보다 더 깊이 들어가는구나. 심지어 하드코어(?)적이구나. 우리 집 베란다엔 꽃과 채소만 있는데. 아 올챙이도 있다! 근데 걔네는 조만간 풀어줄 예정이다. 벌레잡이 식물을 사러 가잔다. 그...래. 오랜 뜸을 들여 대답했다.
오랜만에 꽃시장에 갔다. 사람이 전혀 없을 줄 알고 갔는데 웬걸. 사람들은 다른데 안 가고 다 꽃시장에 간 듯했다. 마스크 단단히 끼고 사람들과 거리 두며 식물 쇼핑을 했다. 바로 가까이 벌레잡이 식물들이 보였다. 유튜브에서만 보다 실제로 보니 아이 눈이 휘둥그레진다. 네펜데스 주머니 안으로 벌레가 쏙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 거지? 파리지옥을 만지면 어떻게 될까?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네펜데스 7천 원, 끈끈이주걱은 꽃도 달려 7천 원. 파리지옥은 6천 원에 주신단다. 물을 받아 화분을 넣는 저면관수를 추천하신다. 네펜데스는 주머니 안에 물이 좀 있으면 좋단다. 네? 주머니에 물을 넣으라고요?? 내가 모르는 영역들. 뭐에 홀린 듯 한아름 사 가지고 나왔다. 너무 신이 났는지 아이가 직접 들고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가 좋아하니 나도 덩달아 신났다.
베란다에 벌레잡이 식물들을 배치했다. 아이가 가장 잘 볼 수 있는 자리에 놓았다. 아이들은 매일 아침 달려가 식물들이 벌레를 잡았는지 관찰했다. 수많은 아이디어를 냈다. 벌레를 넣어볼까? 흙을 넣어보면 어떨까? 베란다가 연구소가 되었다.
며칠 후 관찰하니 끈끈이주걱에 날파리가 붙어있었다. 내가 먼저 발견하고 아이들을 불렀다. 이리 와봐! 벌레를 잡았어!! 나까지 흥분이 되었다. 처음엔 사 오길 머뭇거렸는데, 이젠 아이들에게 빙의되었나 보다.
안 그래도 요즘 날씨가 추워 베란다 문을 좀 닫아놓았더니 날파리가 한두 마리 보였었다. 환기가 잘 안되던 듯하다. 골치였던 벌레들을 벌레잡이 식물이 잡아주었다. 어머나. 세상에. 우리 아이들이 좋아해 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내가 싫어하는 벌레까지 잡아주다니. 갑자기 애정 급상승이다. 그 후로 벌레잡이 식물들은 나의 극진한 사랑을 받고 있다. 어느 날 파리가 들어오면 더욱 큰 역할을 하겠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지만, 분명 다 잘될 방법이 있어.
나는 그걸 찾을 것이다. 하다가 잘 안되면 어느 때는 내려놓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내려놓는 과정마저도 배움이라고. 그 배움을 얻었으니 나는 또 하나를 얻었다고. 신선 도인 같이 말하련다. 인생 괜찮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