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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언 Nov 05. 2022

모두를 구원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가?

10/30 명상 일기

장대 같은 비가 갑자기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며 집에 가려고 뛰었다. 진흙탕에 넘어졌다. 넘어져 옷은 온통 진흙 투성이가 되었다. 손도 철퍽거렸다. 의외로 진흙의 느낌이 좋았다. 부드럽고 자유로웠다. 일어나 걷는데 문득 비를 맞는 해방감이 좋았다. 얼른 집에 들어가야 하는데, 계속 비를 맞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강중강중 뛰기도 했다. 집을 앞에 두고 비를 맞으며 한껏 느꼈다. 가방도 가방 안에 있는 중요한 것들도 젖어버렸다. 그냥 자유로움이 좋았다.


물이 뚝뚝 떨어지며 집에 들어갔다. 젖은 몸을 수건으로 닦았다. 축축한 옷을 훌훌 벗었다. 가방의 물건들을 꺼냈다. 옷도 가방도 널어 말렸다. 샤워실에 들어가 따뜻한 물로 씻기 시작했다. 문득 비로 샤워를 했는데 뭐하러 또 씻냐는 생각이 들었다. 수돗물이랑 빗물이랑 뭐가 다른가… 그래도 비누향이 좋았고 씻는 걸 마무리했다.


가방에 들어있던 노트가 다 젖었다. 분명 중요한 것이어서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자유를 만끽했으니 되었다. 종이는 말리면 되고 기록은 남아있었다. 잘 펴서 널어놓았다.


따뜻해진 몸으로 고구마를 꺼내 먹었다. 요기를 하고 아이들을 데리러 차를 타고 나갔다. 가는 길에 사고가 나 있었다. 스산했다. 아이들을 차에 태워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남편이 걱정되었다. 연락하니 잘 오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남편도 잘 도착했다.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문득 학교에서 집에 가지 못하고 우산 없이 우두커니 서있던 아이가 떠올랐다. 그 아이를 데리러 갔다. 우리 아이들과 함께 차를 타고 갔다. 그 아이들을 태워 집에 데려다주었다. 어릴 때 내 생각이 났다. 내가 이렇게 행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넓은 들판에서 네 잎 클로버를 찾았다. 보이지 않길래 그냥 세 잎 클로버를 관찰하였다. 모두 예쁘고 귀했다. 그 자체로 좋았다. 비가 오고 난 뒤라 기분이 좋았다. 강아지를 데리고 와서 한껏 뒹굴었다. 그러다 네 잎 클로버가 하나 보였다. 그걸 가지고 기분 좋아 있는데 아이들이 여기도! 하면서 나에게 하나씩 가지고 왔다. 네 잎 클로버가 세 개가 되었다. 문득 우리 남편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하다 내 걸 남편에게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행복하니 됐다고 생각했다. 집에 가서 남편을 만났는데 자기가 네 잎 클로버를 찾았다며 보여주었다. 내가 남편에게 주어야겠다고 생각해서 남편이 찾은 듯했다. 고맙고 기뻤다.


가족들이 모두 같이 둘러앉아 바라는 걸 이야기했다. 나는 우리 가족이 이렇게 함께 있는 것만으로 모든 걸 이루었다고 했다. 헬렌은 맘대로 날이 많아져서 이미 감사하다고 이야기헸다. 크리스는 가오리를 키워서 감사하다고 이야기했다. 남편은 부에 감사하다고 얘기했다. 남편 덕에 물질적으로 누리고 살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말은 하나하나 다 귀엽고 천진난만했다.


행복한 기분으로 캄캄한 밤 창밖을 보는데 천사가 날아왔다. 나에게 뭔가를 내밀어 손으로 받았다. 상자였다. 안에 씨앗이 들어있었다. 이걸 심으면 네 잎 클로버가 나니 가지라고 말했다. 그 씨앗을 심었다. 온통 네 잎 클로버가 생겼다. 그걸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빛이 쏟아졌다. 빛이 쏟아지는데 예수님이 앞에 있었다. 예수님이 나를 안았고, 나는 예수님 품에 폭 안겼다. 그렇게 예수님과 나는 엉켜 빛 덩어리가 되었다.


고민거리들이 떠올랐다. 먼저 내가 저번 명상에서 들고 온 계약서였다.


어느날 호랑이가 내 등을 떠밀었다. 떠미는 방향으로 계속 걸었다. 앞에 보니 커다랗고 높은 빌딩이 있었다. 그 빌딩에 들어가라는 눈빛으로 호랑이가 나를 쳐다봤다. 무언의 압박이었다. 빌딩에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어떤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표지에 핏자국이 있는 종이뭉치를 내밀었다. 계약서였다. 표지를 열어 읽는데 종이에서 빛이 뿜어져나왔다. 진리의 약속이었다. 이걸 지키기 위해 수많은 아픔과 노력이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순간 두려움이 들었다. 내가 진리를 세상에 알려도 될까? 계약서를 받아 들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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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계약서에 사인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이 길이 맞는데, 뭔가 내키지 않았다. 사인할 필요 없다는 목소리가 들렸다. 계약서 그 자체를 세상에 나눠 알리라고. 나는 묶여있을 필요 없다. 그냥 비도 맞고 빛도 느끼며 여여하게 살아가면 된다고. 이리저리 넘나들며 내가 원하는 삶을 살면 된다고.


내가 오래 바라던 꿈이 떠올랐다. 나는 우주 그 자체가 되는 것을 늘 상상하고 이미 이루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또한 묶임이라는 알아차림이었다. 나는 지금 이 세상에 살고 있다. 현재에 존재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 중요성을 놓는 것이 바로 진정한 우주가 되는 것이었다.


빛이 뿜어져 나오는 계약서에 사인해 돌려줄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 계약서를 엮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자유로웠다. 그리고 현재에 존재함으로 나는 내 세상을 만들어냈다. 어디도 종속되지 않은 나만의 우주였다.

내가 겪는 모든 힘든 일들도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그럼, 사람들을 구원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가? 우주가 되어 선구자가 되지 않아도 된다는 건가? 그렇다는 대답이 올라왔다. 나는 이 자체로 멋지며 영감이다. 내 자리에 있으면 된다. 결국 목적지는 같다. 하지만 여정도 충분히 즐겁다.



바닥을 내려다보니 도마뱀이 있었다. 도마뱀을 들어 올리니 도마뱀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같이 이야기하는데 도마뱀이 내 몸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나에게 저리 가라고 방향을 지시하기 시작했다. 도마뱀의 지시대로 가니 어떤 동굴이었다. 가만 보니 내 몸은 엘사였다. 내가 마지막 원소라는 걸 자각하는 찰나, 내가 원하는 건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 아래쪽에 꽃이 피기 시작하더니 꽃잎이 나를 감쌌다. 그렇게 한참을 지나 꽃봉오리가 열렸다. 안에 아기가 있었다. 새로 태어난 나였다. 나의 꽃에서 줄기가 뻗어 나와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무로 가득한 정글 같은 숲이었다. 점점 멀어져 내가 만든 세상을 바라보았다. 화성처럼 붉은 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에워싸 길을 터주었다. 지나가며 보니 조상님들이었다. 시댁 친정 모두 모여있었다. 고개를 숙여 나에게 인사를 했다. 그들을 미소로 바라보며 지나가는데 저 앞에 예수님과 부처님이 있었다. 밝은 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모두를 지나 맨 끝에 기다리는 나를 만났다. 나는 나와 얼싸안았다. 누구에 종속된 존재도 아닌 진짜 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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