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7 명상일기
마스터님의 안내로 하얀 털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커다랗고 단단한 몸이 느껴졌다. 꼬리는 길쭉했다. 호랑이였다. 하얀 호랑이는 내가 쓰다듬자 개랑이처럼 누워 꼬리를 흔들었다. 나는 나만의 호랑이가 너무 좋았다. 안고 자고 늘 데리고 다녔다. 사실 내가 데리고 다니지 않아도 늘 내 곁을 따라다녔다.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어느날 호랑이가 내 등을 떠밀었다. 떠미는 방향으로 계속 걸었다. 앞에 보니 커다랗고 높은 빌딩이 있었다. 그 빌딩에 들어가라는 눈빛으로 호랑이가 나를 쳐다봤다. 무언의 압박이었다. 빌딩에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어떤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표지에 핏자국이 있는 종이뭉치를 내밀었다. 계약서였다. 표지를 열어 읽는데 종이에서 빛이 뿜어져나왔다. 진리의 약속이었다. 이걸 지키기 위해 수많은 아픔과 노력이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순간 두려움이 들었다. 내가 진리를 세상에 알려도 될까? 계약서를 받아 들고 나왔다.
호랑이는 만나는 사람마다 반응이 조금씩 달랐다. 먼저 마스터님과 만났는데 강아지처럼 온순해져 바닥에 드러누웠다. 꼬리를 흔들고 배를 보이기도 했다. 우리 가족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호랑이와 깔깔대며 놀았다. 보통 사람들에게 갈 때는 약간 거리를 두는 것으로 반응했다. 반응이 다르니 궁금해졌다. 푸틴 대통령을 데리고 와보았다. 푸틴 대통령에게도 반응이 비슷했다. 약간의 거리를 두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유난히 친하게 대하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악인으로 여겨지는 사람이든 선하게 인식되는 사람이든 반응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호랑이가 갑자기 으르렁거렸다. 어떤 사람이 걸어가다 뒤를 돌아봤다. 표정과 느낌이 묘했다. 그 사람을 보고 호랑이가 큰 소리를 내고 공격태세를 갖췄다. 갑자기 달려가 그 사람을 삼켜버렸다. 나는 왜 그 사람에게만 다르게 대했는지 알기 어려웠다.
며칠 후 호랑이가 갑자기 켁켁거렸다. 뭔가를 토하기 시작했다. 미끄덩하고 나와 보니 구렁이였다. 그 사람을 삼키고 구렁이로 나온 게 분명했다 그때 알아차렸다. 아, 그 사람은 인간이 아니었구나. 인간이 세운 ‘에고’ 혹은 ‘그림자’라고 느껴졌다.
어느날 호랑이가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왔다. 너무 놀랐다. 어떤 경우에도 쉽게 싸우는 법이 없는데 그렇게 전투적으로 싸웠다니. 호랑이를 눕혀놓고 밖에 나가보았다. 커다랗고 시커먼 에너지체가 있었다. 집채만큼 컸으며 모든 걸 삼킬 듯했다. 그건 사람이 만든 두려움이자 공포였다.
호랑이에게 돌아와 물었다. 네가 이렇게 아프고 피흘리며 싸우는 것이 슬프다고. 어떻게 하면 되냐고. 그랬더니 호랑이가 말했다. “네가 결정하면 되잖아.” 순간 퍼뜩 생각이 들었다. 그렇구나. 호랑이가 행복하기를 결정했다. 행복하고 자유로운 모습을 상상했다. 그랬더니 호랑이가 점점 사라졌다.
잠깐! 어디 가는 거야. 너랑 더 같이 있고 싶어
내가 행복하기를 네가 결정했잖아.
짧은 대화끝에 호랑이는 결국 사라졌다. 그렇구나. 호랑이가 행복해지는 것은… 돌아가는 것이었구나. 호랑이의 영혼이 보였다. 호랑이는 내가 생전 마음속으로 명복을 빌어준 수많은 동물들이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들이 나를 위해 이렇게… 진심으로 그들의 행복을 빌었다.
사람이 두려운 것이 아니구나. 사람이 하는 생각들, 가상으로 세우는 인물들 그것이 진정 두려운 것이었다. 호랑이가 알려준 것을 새겼다. 그리고 내가 결정하면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