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지언 Oct 21. 2022

두려움은 기억에서 비롯된 거야

미라클 명상 일기

“악~~!!!!!!”


소리를 지르고 팔을 휘저으며 깼다. 사람만큼 커다란 바퀴벌레가 날아왔던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모두 꿈이었다. 휴…. 다행이었다. 꿈자리가 사나웠다. 방 안을 걸어가는데 뭔가 이불을 덮고 나란히 누워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사람 같은 바퀴벌레들이었다. 사람이 바퀴벌레의 얼굴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하여튼 그 둘은 구분이 안됐다. 그 사람들을 지나 조심히 걸어가는데 그것이 날아온 것이다. 윽… 깨고서도 불쾌했다. 이게 무슨 뜻이지? 꿈 해몽이라도 찾아봐야 하나?


요즘 일이 잘 풀렸다. 몸이 가볍고 뭔가 되는 느낌이었다. 명상 상태도 좋았다. 그런데 꿈이 어지러우니 혼란스러웠다. 무슨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답을 명상에서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전 꿈 해몽을 주로 N지식인에서 찾곤 했다. 명상을 하고부터 조금 달라졌다. 모든 답은 내 안에 있다는 생각에 의존하는 습관을 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 새벽이어서 바로 앉아 눈을 감고 명상을 시작했다.



첫째 아이가 떠올랐다. 첫째 아이는 곤충을 참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아빠와 매미를 잡으며 놀았다. 매년 매미 유충을 집에 데리고 와 허물 탈피하는 걸 관찰하기도 한다. 잡으면 잠깐 관찰하고 조심스레 잘 풀어준다. 스스럼없고 곤충을 무척 사랑해서인지 곤충들도 첫째 아이가 가까이 가면 잘 도망가지 않는다. 기꺼이(?) 잡히고 기꺼이 다시 돌아가는 그런 관계다.


얼마 전엔 아이가 귀뚜라미를 잡았다. 나에게 귀뚜라미는 소리가 크고 다리가 긴 생물체였다. 가까이 가면 나에게 점프할지도 모르는 괴기스러운… 그런데 아이는 귀뚜라미도 똑같은 곤충으로 여겼다. 손 위에 가만 올려놓고 움직임이 간지럽다며 쳐다보곤 했다. 귀뚜라미뿐만이 아니었다. 나비, 공벌레, 그리고 심지어 그것까지도.


아이는 어느 날 뭔가를 유심히 보더니 손으로 삭 하고 잡았다. 그러더니 가만히 손 위에 놓고 관찰하였다. 그건 바로 바퀴벌레였다. 나는 보고 순간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런데 아이가 아무런 고정관념 없이 바퀴를 대하는 모습이 너무 신기했다. 아이에게 그 벌레는 아무런 기억도 감정도 없는 대상이었다. 너무 순수하고 맑다는 알아차림에 감히 뭐라 말하지 못하고 숨을 죽였다. 그 벌레는 다른 곤충들처럼 원래 있던 곳으로 고이 되돌아갔다.



“안 무서웠어?”


“왜? 뭐가?”


“바퀴벌레가 안 무서웠냐는 말이야.”


“그냥 다른 곤충이랑 똑같은데?”


“헐…”


“그냥 공벌레랑 비슷해. 좀 더 큰 것뿐인데?”


“헐…….”



“저기.. 더듬이가 길고 … 잡기 힘들지 않았어?”


“그치. 더듬이가 길고, 몸이 딱딱했어.”



정말 헐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ㅋㅋㅋ) 너무 구체적이니 여기까지만 대화 내용을 공유하겠다. 아이와 대화를 나누며 너무나 깨끗한 관점에 놀랐다. 나의 감정이 들여다보였다. 내 모든 감정이 기억이구나… 실은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닌.



명상 속에서 아이와의 이 최근 일화가 떠올랐다. 그 벌레 모습을 한 사람들. 나는 사람들이 두려웠다. 어릴 때부터 나는 낯가림이 지독히 심했다. 사람들이 우쭈쭈 하면 바로 울음이 터지곤 했다. 엄마랑만 있어서 그런가 봐요~ 라던 우리 엄마의 영혼 없는 변명. 엄마는 나의 유일한 안전지대였다.


부모님 이혼하시고 나는 세상에 내던져졌다. 밤마다 찾아와 부수고 욕하고 때리는 큰아빠. 틈만 나면 조부모님의 손찌검. 성추행하는 사촌오빠까지. 환경이 그래서였을까. 몇 외에 만나는 사람들도 형편없었다. 나는 사람이 정말 싫었다.


동물이 그나마 애착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동물마저도 사람에게 이용당했다. 환경단체에서 활동하다 병이 나기도 했다. 사람이 세상의 암세포라고 느꼈다. 바퀴벌레 같기도 했다. 환경을 파괴하고 다른 생물을 말살시키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차라리 다 사라져야 마땅했다.



내 상태가 이렇다 보니 생활이 어려웠다. 20대 이후부턴 늘 모자를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끼고 다녔다. 사람들의 눈을 보는 게 힘들었다. 대화를 할 때는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집에 돌아와 못한 말을 떠올리며 이불 킥을 하곤 했다. 내 표현을 못하니 불합리한 일도 자주 겪었다.


그런 내가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순수했으며 사랑스러웠다. 아이를 안고 젖을 먹일 때 그 느낌… 이 세상에 두려움은 없고 오로지 빛만 있는 듯했다. 그런데 이 아이도 사람이구나.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던 내 마음이 꿈틀거렸다.


"어떡하냐. 이제는 그냥 받아들이자. 정말 싫지만 나도 사람이고 이 아이도 사람이다. 모두가 나쁜 건 아닐 거야. 그리고 사람도 동물이잖아.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동물처럼 결국 사람들을 모두 사랑할 수 있게 될 거야. 과거는 이미 모두 지났고 나는 더 이상 그때로 돌아가지 않아."


그렇게 스스로 치유를 시작했다. 아이가 큰 힘이 되었다. 눈을 못 맞추던 내가 눈을 맞추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라도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다. 사실 아이 키우는 게 너무 어려워서 상대적으로 덜 힘들게 느껴졌다. 와중 거듭되는 육아 공부로 심리학을 파고들게 되어 큰 발전이 있었다.


그런 어려움을 돌파하고자 썼던 육아일기와 쌓인 경험으로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 카페를 만들고 모임을 운영했다. 관심사를 중심으로 나를 잘 이해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라 어렵지 않았다. 또한 나 스스로 많이 성장했기에 충분히 소화 가능했다. 최근 모임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모임이 사람들에게 효과 있고 도움 된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득문득 올라왔던 것 같다. 이렇게 모임 운영해도 되는지. 나 스스로 버거운 것은 아닌지. 사람이 늘어나면 힘들지 않을지. 유명해지는 것도 꺼려졌다. 가끔 사람과 상대하는 것에 지쳤다. 책임감이 강하고 진실된 내 성향도 버거웠다. 강의하고 수업하면서 이 일이 내게 맞는지 모든 게 의심스러웠다.



명상을 하니 그런 나의 눌러놨던 두려움과 혼란이 느껴졌다. 내가 앞으로 가고자 하는 여정에 한 번은 해결하고 갈 과제로 느껴졌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꿈에 나온 그 벌레를 통해 아이가 나에게 답을 주고 있었다.


모든 건 그냥 곤충일 뿐이야. 나에겐 큰 두려움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야. 모든 두려움은 기억에서 비롯된 거야. 그 기억들도 돌아보면 모두 그냥 이야깃거리일 뿐이야.




용기를 냈다.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그냥 뭔가 이유 있던 에피소드로 기억하기로. 해묵은 감정을 큰맘 먹고 떼어냈다. 깨끗하고 맑은 존재로 내가 새로 태어난 듯 느껴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