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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언 Oct 27. 2022

매일 최상의 삶을 살겠다는 결정

미라클 명상 일기

내 삶은 지옥 같았다. 결혼 전엔 우울증이 심했다. 집에서 거의 누워 지냈다. 사람을 만나면 쉽게 번 아웃됐다. 육체적 피로감도 쉽게 느꼈다. 회사생활은 불가능했다. 결혼 이후 특히 아이를 낳고는 이렇게 살 수 없었다. 많은 노력을 했다. 의식적으로 자연을 접하고 밖에 나가 걷곤 했다.


이렇게 겨우 생존하는 낮은 에너지 상태에서 명상을 시작하게 되었다. 마치 삶에 광명을 찾은 듯했다. 명상 후 올라가는 에너지를 처음엔 주체할 수 없었다. 그 상태가 너무 좋아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뒤로하고 싶을 정도였다.


아이들이 내 상태를 끌어내릴 때가 있었다. 처음 명상할 때는 정말 화가 났었다. 나는 이 상태에 머무르고 싶은데 자꾸 방해를 하니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이조차도 수행이 부족해서라는 걸 알아차리고 정진했다.


명상에서 느끼는 황홀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모든 것을 아는 상태. 두려움과 고통이 없고 오로지 기쁨과 사랑만 있는 상태. 나중엔 그 기쁨조차도 잔잔한 미소가 되었다. 이곳에 영원히 머무르고 싶었다.


이렇게 천국을 경험하니 낮은 상태가 더욱 지옥처럼 느껴졌다. 지옥에만 있을 때는 그냥 살았다. 그런데 천국을 오가니 이제는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하루에도 여러 번 이렇게 컨디션이 바뀌었다. 새벽에 일어나 걷고 명상하면 나는 최상의 상태가 되었다. 자비가 넘치고 배려심이 가득했다. 그런데 오전 10시 정도가 되면 신데렐라의 12시 종이 울리듯 컨디션이 떨어졌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호흡이 불안정해졌다. 예전처럼 부정적인 생각이 들고 마냥 드러눕고 싶었다.


수많은 시도를 했다. 샤워를 하고 음악을 틀었다. 운동하고 춤을 추기도 했다. 햇빛도 넉넉히 쬐었다. 의식 책은 늘 달고 살았다. 이런저런 시도 끝에 일단 집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걸 알아챘다. 요가를 시작했다. 오전에는 최대한 밖에서 일을 보았다.


이렇게 조절하기 시작했지만 순간 놓치는 때가 있었다. 그런 날은 다시 지옥을 경험했다. 반복되니 자신감이 무너졌다. ‘컨디션 기복이 심한 사람.’ 나는 나에게 이런 딱지를 붙였다. 예전 붙였던 ‘저질체력’ ‘우울증’ 이런 말보단 낫다고 위로했다. 하지만 조울증처럼 흡사 미친 사람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더 붙잡았다. 명상의 상태를 하루 종일 이어가고자 했다. 최상의 상태가 평균이 되길 바랐다. 꾸준히 심상화 했다. 컨디션 기복이 없는 온전한 나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다 집중 수련할 기회가 있었다. 수련하며 나에게 높은 컨디션이 유지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그게 나에게도 가족에게도 나아가 인류에게도 행복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조금 더 활기차게 움직일 수 있으면 모두에게 이롭다는 확신이었다. 나는 최상의 컨디션이 유지되어야 마땅하다. 집중 수련으로 절정의 상태에 도달했을 때 내가 온전함을 느꼈다. 이제 더 이상 컨디션 기복은 없다는 확신이 들 찰나, 내 마음속에서 이런 말이 올라왔다.


“정말 괜찮겠어?”


소스라치게 놀랐다. 정말 괜찮겠냐니, 대체 무슨 말인가.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나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에 놀랐다. 평소 자각하지 못했다. 뭔가 걸림돌이 있는 듯했다. 내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건강한 상태가 계속 유지되어도 괜찮겠어? 컨디션 기복이 나를 건강하게 하잖아.”


소름 끼치는 말이 이어 나왔다. 내가 나를 붙잡고 있었다니. 깊고 깊게 자세히 들어가 보았다. 나에겐 두려움이 있었다. 우리 아빠는 운동을 많이 하고 건강한 분이셨다. 그런데 갑자기 암 진단을 받았다. 우리 아빠는 이야기했다. 조오련 선수가 갑자기 죽은 것을 보았냐고. 그렇게 건강하고 운동을 많이 한 사람도 비명횡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건강한 사람은 스스로 건강한 줄 알기에 오히려 관리를 안 하고 몸에 둔감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내 컨디션 기복에 타협을 한 것이었다. 일부러 컨디션 기복을 만든  아니었지만.


늘 건강한 상태는 뭔가 위험할지도 몰라. 차라리 완전치 못함으로 나는 평소 건강을 관리할 수 있을 거야. 가끔 정기검진도 받고 영양제도 먹을 수 있는 동력이 될 거야. 나의 컨디션 기복은 이대로도 괜찮아.


나는 나의 상태에 타협하고 그것을 정당화했다. 이렇게 한 내 마음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갑자기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준비하지 못하고 떠날까 봐 무서웠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내 아이들. 엄마 없으면 어찌 살까 과거에서 비롯된 아픔이 나를 잡았다. 이를 알아차리고 나는 이것을 떼어내려 했다. 명상은 계속되었다.


이제 이런 아픔을 알았어. 하지만 나는 이제 과거와 달라. 질병도 죽음도 나를 함부로 대할 수 없어. 나는 생각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는 걸 알았어. 이 세상은 홀로그램과 같아. 


이렇게 생각을 거듭해도 그 두려움이 잘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발로 차고 손으로 던져도 그대로 내 몸에 꼭 붙어있었다. 실랑이가 계속되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이야기했다.


이번 생이 끝이 아니야. 나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야. 진정한 나는 영원하며 죽지 않아. 육체가 죽더라도 어쩔 수 없어. 나는 그 모든 중요성을 놓겠어. 하루를 살아도 온전하게 살 거야. 나는 더 이상 두렵지 않으며, 그 무엇도 내가 매일 최상의 삶을 살겠다는 결정을 막지 못해.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믿고 맡겼다. 사실 영혼은 말하고 있었다. 나는 온전한 상태로 살아갈 수 있다고. 죽음도 내가 결정할 수 있다고. 하지만 물질적인 내가 붙들고 놓지 않았다. 나는 그마저도 다 놓을 테니 이제 그만 나를 놓아달라 이야기했다. 결국 그 두려움은 내가 놓아버린 것과 함께 떨어져 나갔다. 무거웠던 덩어리가 떨어져 나가 공기 중으로 형태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 후로 나는 컨디션 기복이 사라졌다. 매일 새벽 명상을 하고 우주를 느낀다. 나의 이 감정은 하루 종일 지속된다. 주변에 의해 흐트러질 때도 있다. 하지만 이내 알아차린다. 감사합니다를 반복하는 나의 주문은 여기에 속도를 높인다.


컨디션 기복이 사라진 삶은 놀랍다. 굉장히 많은 일을 하루에 처리할 수 있다. 나는 새벽에 모든 일을 다 마친다. 그리고 오전에는 바깥 업무를 본다. 오후에는 가족과 함께다. 운동과 명상도 틈틈이. 늘 알아차리는 상태를 유지한다. 가끔 흐트러질 때도 있지만 그마저도 온전한 나를 감사하기 위한 쉼이다.


기적이다.


이후 명상 중 내 마지막 날을 보았다. 나는 온전하며 아름다웠다. 죽는 날까지도 미소 짓는 상태였다. 사고와 질병에서도 자유로웠다. 나는 원하는 때 원하는 죽음을 맞이했다. 아이는 다 자라고 손주 손녀에게도 다 도움을 주었다. 이만하면 되었다고 나 스스로 말하며 명상하듯 눈을 감았다. 내 마지막 장면은 햇빛이 비치듯 환하게 빛났다. 아무런 미련 두려움 없이 나는 그렇게 지구별 여행을 마감했다.


무언가 바라는 것이 가로막힐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내 안을 들여다본다. 뭔가 모를 두려움이 있다면 그저 알아차리면 된다. 그럼 모든 것이 풀리기 시작한다. 꼬인 실타래가 풀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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