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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언 Nov 23. 2022

나는 깨어났다

11/1 명상일기 #1

펠리칸이 날아가고 있었다. 펠리칸의 부리에 아기가 있었다. 펠리칸이  물가에 아기를 내려놓고 멀찌감치서 엄마느낌으로 쳐다보았다. 아기는 찰방찰방 물에서 물장구치고 데굴데굴 굴렀다. 아이는 자연과 이야기 나누고 자연 그 자체인 것처럼 자라났다. 아이가 제법 컸을 때쯤 멀리서 사람들이 나타났다. 사람들이 아이를 보고 손가락질하며 뭐라뭐라 이야기했다. 아이는 화들짝 놀랐다. 마치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처럼 세상의 것을 알아차린 듯했다. 아이는 두려움에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에서 숨이 쉬어진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깊이 깊이 헤엄치는데 저 아래 밑바닥  빛이 보였다. 흙 속에 묻혀있었다. 아이는 손으로 파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땅이 갑자기 반으로 쪼개지며 거북이가 안에서 나왔다. 빛이 찬란하고 몸이 산처럼 커다란 거북이었다. 


이때부터 아기가 나로 인식되었다. 거북이가 나와 마주보고 이야기했다. 같이 헤엄치고 놀다가 나보고 타라고 말했다. 거북이 등에 타 붙잡았다. 워낙 큰 거북이라 빠르게 물살을 가르며 헤엄쳐 나가기 시작했다. 깊은 강을 지나 바다로 갔다. 무지개빛 영롱한 물결을 지났다.


거북이가 나를 어떤 섬에 내려주었다. 섬에 도착해 올라가 보니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잔뜩 있었다. 그 사람들은 물에서 자유롭게 호흡했다. 거북이와 놀기도 했다. 사람들을 신기하고 반갑게 바라보며 이 섬에 무엇이 있나 둘러보았다. 섬은 크고 우거졌다. 쭉 안쪽으로 들어가보니 순야 마스터님이 계셨다. 이 섬의 지도자였다. 


제가 뭘 해야 하죠?


뭘 해야 하냐 묻자 지도자님은 “너는 여행자다.” 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쪽으로 올라가라고 옆의 계단을 가리켰다. 그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계단은 높고 길었다. 한참을 가다보니 빛나는 보석이 있었다. 그 보석을 만지자 보석에서 어떤 기운과 에너지가 내 몸으로 흡수되었다. 이어 올라가니 또 다른 보석이 있어 그렇게 했고 내 몸이 또 달라졌다. 그렇게 수많은 보석들을 만났고 나를 보니 내 모습이 달라져있었다. 빛이 가득 퍼지며 가벼운 몸이 되었다.  옷은 하늘하늘 선녀의 날개옷 같았다. 굉장히 높게 올라왔고 수많은 보석을 지나쳤는데 아직도 끝이 아니었다. 넓고 광범위했다. 나는 지쳐 잠시 앉아 쉬었다. 그러자 봉황이 날아와 나를 태우고 보석들로 옮겨다니며 나를 도와주었다. 


깊고 깊은 어떤 곳에 도착했다. 거기서 손을 내밀어 잡으려고 하는 느낌이 났다. 내 손을 내밀었다. 그랬더니 손을 쑥 잡아당겨 나는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커다란 수정구슬같은 안에 백발노인이 있었다. 머리가 온통 하얗고 길었다. 수염도 하얗고 길게 늘어져있어 마치 간달프같은 외모였다. 


내가 뭘 해야 하죠?


그 노인이 나보고 이 넓은 세상을 보라고 말했다. 밖을 바라보니 정말 내가 지나온 길이 넓고 높고 무한대로 컸다. 한참을 바라보는데 노인이 내 등을 세게 밀었다. 나는 하염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내가 생각하는대로 할 수 있다는 자각이 있었다. 나는 걸 상상하자 내 옷이 날개가 되어 나는 땅에 사뿐이 도착했다.



여기가 어딘가 둘러보았다. 무대였다. 앞을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수천 수만의 눈동자가 느껴졌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할 것 같은데 떠오르지 않았다. 눈을 지긋이 감고 영혼의 목소리를 들었다. 생각나는대로 말을 시작했다.


“정신 차리세요!”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이 세상은 모두 가짜입니다.”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눈을 감으라고 말했다. 그러자 다들 눈을 감았다. 팔을 들어 주먹을 쥐라고 말했다. 다들 그렇게 했다. 주먹으로 내 몸을 두드리라고 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두드렸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라고 했다.


“나는 깨어났다.”


사람들이 눈을 감고 몸을 두드리며 깨달았다고 말하는데 그중 맨 앞 가운데 한 명이 눈을 번쩍 떴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그 사람은 내가 되었다. 또 다른 사람이 눈을 떴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또 다른 내가 되었다. 이어 계속해서 사람들이 눈을 떴고 또다른 내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렇게 모두 내가 되었으며 멍한 표정으로 집에 돌아갔다.


무대에 나혼자 덩그러니 남았다. 뭘 해야할지 몰랐다. 가만히 우두커니 서있는데 장면이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비디오 되감기를 빠르게 하듯 모든 것들이 뒤로 돌아갔다. 백발노인을 만나고 마스터님을 지나 거북이를 만나 닫시 아기가 되었다. 더 깊고 깊게 환한 빛에서 공한 상태로까지 이르렀다. 그 상태에 나는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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