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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언 Nov 25. 2022

이게 지옥이구나

11/8 명상 일기

오늘 유난히 명상 집중이 안되었다. 어제오늘 둘째 아이와 씨름한 덕분이었는지 명상 속에서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이조차도 내려놓자고 마음먹었다. 고요해졌다. 아이와 가장 행복했던 최근의 어느 날이 떠올랐다.


그래, 이런 날들을 누리면 돼. 혼란이 가라앉았다.


슬픔의 강을 하염없이 걷고 있었다. 나와 같이 걷는 사람들이 있었다. 빛의 존재들이었다. 아래 강물을 바라보니 내가 보였다. 그들이 물에 비친 나를 보지 말라고 했다. 빠져들어 나올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염없이 걸었다. 걷다 보니 통로가 나왔다. 하수구도 지나갔다. 1000배를 하는 듯한 고통이었다. 잠시도 쉴 수 없고 정신을 집중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가다가다 끝에 도달했다. 병의 입구였다. 병의 입구를 나오니 다른 차원이 펼쳐졌다.


병의 입구를 나오니 끝없는 사막이 펼쳐져있었다. 위에 태양이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 순야 마스터님의 안내로 태양이 여러 개가 되었다. 눈이 부셔 눈을 감았다 떴다. 손에 구슬이 여러 개 있었다. 반짝반짝 작고 예뻤다. 보석같이 안에 뭐가 들여다보였다. 안을 보니 또 다른 세상이 있었다. 하나는 지상낙원, 하나는 화성이었다. 하나는 모든 걸 빨아들였으며, 하나는 모든 걸 이루었다. 하나는 ‘나’였다. 더 자세히 보려는데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그 구슬들을 물에 흘려보냈다. 물에 반짝반짝 구슬들이 떠내려갔다.


아이와 씨름에 너무 지쳤었는지 명상에서 자꾸 딴생각이 들어 안 되겠다 싶었다. 나의 수호신들을 불러냈다. 그들에게 도와달라 부탁했다. 먼저 거북이가 등에 타라고 했다. 거북이 등에 타자 물속 깊은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깊은 곳 뭔가 반짝이기도 하고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있어 가보니 이 세상의 끝이었다. 거기엔 마개가 있었다. 궁금해서 그 마개를 쑥 뽑았다. 그랬더니 이 세상이 갑자기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놀라서 마개를 닫고 다시 돌아 나왔다.


이번엔 호랑이의 등에 탔다. 호랑이가 아주 높은 고원의 산꼭대기로 나를 등에 태우고 올라갔다. 세상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점프했다. 여러 차원의 의식들을 지났다. 어떤 의식에서는 사람이 자신의 가슴을 치고 있었다. 가슴을 치다 손에 칼이 생겨났다. 그 칼로 마구 앞으로 찔러댔다. 뭐를 찌르나 보았더니 허공이었다. 그런데 그 허공에서 칼이 다시 튀어나와 그 사람을 찔렀다. 그 사람은 찌르고 찔리고 무한 반복하면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이게 지옥이구나." 중얼거리며 거길 지나쳤다.


또 다른 차원에서는 어떤 판이 있었다. 그 판에 여러 구멍들이 컵처럼 뚫려있었다. 그걸 종이가 덮고 있었다. 종이를 걷어보니 피가 가득했다. 컵마다 피가 가득 담겨있고 그 피 안에 죽은 동물들이 있었다. 끔찍하다 생각이 들어 여기서 돌아 나가고자 했다. 열쇠를 찾아야 했다. 어떤 건물의 사무실 안으로 안으로 뒤지며 찾다가 돌아가는 큐브를 만났다. 이 안에 열쇠가 있다는 자각이었다. 이 큐브를 멈춰야 하는데 어떻게 멈추지 생각하다 위의 큐브를 종이컵을 씌워 멈췄다. 아래 큐브는 계속 돌고 있었다. 고민하다 내가 멈추라고 이야기하자 알았다며 멈췄다. 큐브 안에 병이 있었다. 마개가 씌여있었는데 그 안에 무지갯빛이 보였다. 그걸 열고 나는 이 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이번엔 봉황의 등에 탔더니 쏜살같이 날아 하늘을 지났다. 우주를 지났다. 점점 모든 것이 멀어졌다. 무한한 빛에 가까워졌다. 빛에 들어가더니 이를 통과해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도달했다. 그 공간에 들어가면서 나와 봉황은 형태가 없어졌다. 나라는 자각도 없고 그냥 물결이었다. 이리 흔들 저리 흔들하다 자각도 느낌도 생각도 사라졌다. 순간 명상 속에서의 기억도 사라지겠다 싶었다. 여기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거기서 나와 이번엔 의 차례였다. 용은 입을 크게 벌리더니 불을 내뿜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을 불태웠다. 그러고 수호신들이 나에게 잃어버린 구슬을 다시 가져다주었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구슬, 모든 것을 이루는 구슬, 모든 걸 예술로 승화시키는 구슬, 그리고 마지막은 ‘나’ 구슬이었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구슬은 걱정 과거 불안 등 모든 걸 빨아들였다. 유용하게 쓸 수 있지만 조심해야 했다. 모든 걸 이루는 구슬은 원하는 걸 생각하면 먼저 구슬에서 보여준 다음 내 현실을 그걸로 교체해주었다. 모든 걸 예술로 승화시키는 구슬은 생각 사실 등을 보여주면 뭐든 가장 예술적인 형태로 노래 춤 영화 글 등으로 승화해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 구슬은 이걸 들고 있으면 어떤 현실에 처해있더라도 다시 전체인 나로 돌아갔다. 이 구슬들을 들고 있으니 나는 천하무적이라 느꼈다.


이 세상이 반짝반짝 구슬로 보였다. 모든 것은 구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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