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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Jun 20. 2024

초2아이, 학군지 수학학원 상담 후기

보리는 언제부턴가 수학을 좋아하지 않는다.

2학년이 된 이후 학교에서 단원평가를 치면서부터였던가.


처음 1단원 평가에서 60점을 받아왔었다. 그걸 나에게 내미는 아이가 시무룩했다. 나는 수고했네!라고 말해주고 보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기죽은 아이의 얼굴이 신경 쓰여서 우리는 2학년 1학기 수학 문제집을 구매했다.


보리는 외모부터 체형, 성격까지 나를 똑 닮은 내 딸이다. 그렇다면 이 아이가 수학을 잘할 리가 만무하다. 그래도 아직 초2밖에 안 됐으니까, 지금부터 학교 진도만 잘 따라가면 문제없겠지. 생각하며 우리는 매일 문제집을 한두 장씩 풀었다. (솔직히 '매일'은 아니었지..)


2단원 도형, 3단원 두 자릿수 덧셈 뺄셈, 4단원 길이재기.. 이어진 단원평가에서 보리는 80점, 75점, 85점 받아왔다. 틀린 문제를 보니 대부분 문장제 문제들이었다. 특히 풀이과정을 쓰는 걸 어려워했다. 오답 숙제를 위해 문제집에 있는 비슷한 문장제 문제의 정답을 그대로 베껴가기도 했다. 국어 영어는 좋아하고 언어능력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수학 문제의 말을 유독 이해 못 하는 듯했다. 나는 '보리야, 이거. 문제를 제대로 안 읽은 것 같은데?'같은 말을 자주 하게 된다.


이번 5단원 '분류'에서도 80점을 받자 보리는 속상한 듯 보였다. 그리고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내 짝 민규는 단원평가 맨날 100점이야. 아니면 95점. 민규는 수학학원 다닌데.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보리를 수학학원에 한번 보내보자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본인이 보기에 보리와 나의 집공부가 책 읽기, 글쓰기, 영어책에 지나치게 편중된 것 같아 보였다나. , 나는 수학에 관해서는 정말 아는 것이 없긴 하다. 등학교 1학년때부터 수학을 포기했던 애가 나였다.




수학학원을 검색해 보았다.

초등 저학년은 사고력수학을 많이들 한다고 들 것 같다. 사고력 수학 학원 몇 군데를 추봤더니 우리 집 근처엔 없고 죄다 차로 10-15분 정도 이동해야 하는 동네에 있었다. 그곳은 우리 지역에서 학군지라 불리는 동네였다.


그중 한 곳에 전화했더니 레벨테스트를 보러 오라고 했다.

말로만 듣던 레테구나. 비용은 2만 원이고 시간은 1시간가량 소요된다고 다. 예약을 잡았다.


남편과 보리와 함께 차를 타고 학원에 갔다. 학원 안팎의 벽면에는 수학학력경시대회 입상자 명단, 각종 영재원 합격자 명단이 벽지처럼 도배되어 있었다. 우리는 보

리가 시험을 칠 동안 밖으로 나와 근처 분식점에 가서 김밥을 사 먹었다.


-와, 이 동네는 학원이 진짜 많아.

-그러게. 건물마다 학원이 없는 건물이 없네.

-공부를 많이 하나보다 애들이.

-우리 보리 성적이 안돼서 여기 못 다니는 거 아냐?ㅋㅋ

-에이 설마 그러려나ㅋ



한 시간쯤 후에 학원에 갔다.

원장선생님은 우리를 보더니 조금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 보리가 문제를 너무 많이 틀려서요, 지금 재시험 보고 있습니다. 조금 더 기다려주세요.



많이도 아니고  많이 틀렸구나. 뭐 예상은 했었다. 수학을 잘하는 아이도 아니고, 학원 분위기를 보니 문제도 어려울 것 같았다. 우리는 30분을 더 기다린 후 상담실로 안내되었다. 1시간 30분가량 혼자 빈교실에 앉아서 문제를 푼 보리는 지친 기색이었다. 상담을 하는 동안 아이에게 읽을 책을 주고 기다리게 했다.



원장선생님은 전혀 웃지 않다.

아이의 시험지와 그것으로 통계를 낸 결과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테이블도 유리 아래도 학력평가 우수자 명단으로 빼곡했다. 그는 말을 시작했다.


-교과도 조금 부족하고, 사고력이 전혀 되어있지 않네요. 저희 학원은 이미 2학년 1학기 과정을 끝냈는데 보리는 안 배운 부분 거의 틀렸어요. 이런 경우 입학이 불가능하진 않은데.. 동네 수학학원에서 교과진도를 좀 보완하고 따라잡으면서 여기서 사고력수학을 병행할 수 있습니다.


그는 보리의 시험지를 펄럭펄럭 넘기며 말을 이었다.


-보시면.. 산도 정확하지 않고요. 연산 공부 따로 안 하나요? 여기 이 문제도 다시 풀어보라고 해서 맞힌 거고요. 그리고 이런 문제도.. 풀이 과정이 정확하지 않으니 맞혔다고 보기 힘들죠. 글씨체를 보니 전형적으로 융통성이 부족한 스타일이네요.


이어서 문제별 영역별 전국 평균, 전국 석차가 표시된 결과지를 볼펜으로 가켰다.


-상중하 중에 하 이고요, 하중에서도 하 입니다. 저희 학원에 2학년만 10개 반이 있는데요. 그중에 보리가 들어갈 수 있는 반이 딱 두 개 있어요. 교과를 기본으로 해야 사고력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아까 말씀드렸듯이 보리가 다른 학원에서 교과를 보강하신다면 여기 들어와도 될 것 같습니다. 두 반 모두 여석은 1자리 남았고요. 주 1회 2시간 수업이고요. 금요일이 더 좋을 것 같은데, 영어학원은 몇 시에 끝나나요?


-아.. 영어학원 안 다녀요. 그, 한 번에 2시간이면.. 쉬는 시간은 있나요?

내가 물었다.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네 뭐, 잠시 숨 쉴 틈은 있습니다. 2시간 내내 문제집만 푸는 건 아니고 교구도 하고 디스커션도 합니다.

-아.. 우리 애는 한 시간도 진득이 앉아있지 못하는데.. 그치ㅋ?


나와 남편을 서로 보고 웃었다. 원장선생님웃지 않다. 오히려 표정이 더 어두져서 으셨다.


-한 시간을 못 앉아 있나요?




나는 보리가 푼 시험지를 넘겨보았다. 보안상 가지고 나갈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내 딸의 익숙한 글씨체가 눈에 들어왔다. 지런히 또박또박 잘도 썼다. 지우개로 여러 번 지우고 다시 쓴 흔적에서 아이의 고뇌가 보여서 웃음이 나왔다. 진단평가는 교과 영역 100점, 사고력 영역 100점으로 총 200 점 만점이었다. 보리는 교과에서 80점, 사고력에서 18점을 얻어 총 98점을 받았다. 교과 80점이면 나쁘지 않은 것 아닌가? 나는 내심 생각했다.



우리는 결과지를 받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해 보고 연락드린다는 말과 함께.




사고력 수학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건지도 몰랐다. 그게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도.


비관적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보리가 수학을 못할 수도 있다고 막연히 생각해 왔다. 이 아이를 관찰해 보면 여러모로 나와 소름 끼치게 비슷하기 때문이다. 뭔가를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바라보고 느끼는 모든 방식이 말이다. 그 사실 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로 인해 불안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수학적 이해능력이 부족 아이였다. 학창 시절에 다방면으로 노력했음에도 수학에서는 결국 이렇다 할 성취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수학을 못하는 내가 싫지 않았다. "수학만 잘했어도 내가" 같은 생각 해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말한다. 수학을 잘해야 대학을 잘 간다고. 요즘 입시가 그렇다고. 고등학교 교사인 내가 그 사실을 왜 모르겠는가. 3 학부모가 된 친선배교사도 말했다. 아이 수학 등급 때문에 너무 속상하다고. 지금 하는 과외를  더 일찍 시작했어야 했다며. 어디 그 선배뿐이랴. 주위 아이들이 다닌다는 학원의 개수, 어마어마한 숙제량과 그로 인해 늦어지는 취침시각, 가파른 속도의 선행학습에 관해 듣고는 늘 놀란다. 어쩌마주치는 아이 친구 엄마들의 말속에는 앞서나가야 한다는 강박과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짙은 안개처럼 깔려있다.



나는 가끔 이런 대화에서 길을 잃는다.

이를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맞는 걸까. 부모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아이를 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디까지 노력해서 어디까지 나아가야 그것을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왜 우리는 남보다 앞서나가야만 할까. 옆사람이 뛰면 나도 같이 뛰어야만 하는 걸까. 한 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보리는 많이 부족한 아이일까. 역시 나는 이상주의자인가.






학원을 나오면서 보리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엄마, 나.. 여기 다녀야 돼?

-다니고 싶어?

-아니ㅜㅜ 너무 어려웠어.

-음, 그럼 엄마 아빠랑 좀 더 생각해 보자. 집에서 엄마랑 열심히 문제 풀어도 되고, 우리집 근처에 있는 학원에 가봐도 되고. 운 좋으면 좋은 선생님을 만날 수도 있고. 그리고.. 수학에서 꼭 백점 받아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근데 엄마, 나 꼭 백점 받아보고 싶어.

- !


나는 이 아이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어느새 내 육아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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