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은 초록이고 반은 붉은 잎들이 애처롭게 매달려있다. 여름의 습기가 증발한 건조한 공기. 그 속에서 나뭇잎들은 몸을 곱으며 바싹 말라간다. 어제 본 <작은 나무>라는 그림책이 떠오른다. 작은 나무는 가을이 오고 겨울이 와도 잎을 떨어뜨리지 못한다. 숲 속 작은 동물들과 곤충들이 와서 놀던 싱그러웠던 초록을 그리워하며. 자신의 몸에 달린 말라비틀어진 나뭇잎들을 꼭 붙들고 겨우내 버틴다. 잎이 없으면 너무도 외로울까 봐 두려워서, 나무는 안간힘을 쓴다. 차가운 겨울이 지나면 다시 따뜻한 봄이 온다는 것을, 더 자란 줄기에 다시금 초록 잎사귀들이 돋아날 것이라는 것을 작은 나무는 아직 모른다.
며칠 동안 야근과 이른 출근을 반복하던 남편이 다시 여유를 되찾았다. 오늘 아침, 다정한 아빠는 달걀국을 끓여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딸들의 머리를 빗겨주었다. 우리 넷은 모처럼 식탁에 둘러앉아 아침을 먹었다. 아이들은 아빠가 만든 달걀국을 제일 좋아한다. 보리가 숟가락 가득 밥을 떠서 국에 말다가 웃으며 말했다.
- 이렇게 넷이 같이 밥 먹으니까 너무 좋아!
특별할 것 없는 우리 집 아침 식탁이 별안간 환하게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나는 심상히 밥을 먹으며 이 사람들을 다 내보내고 나서 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이의 말 한마디에 따뜻한 공기가 우리를 에워싸는 듯하다. 좋다고 느끼는 순간에 좋다고 내뱉으면 그 좋음은 확장된다. 고마운 마음도, 감사하는 마음도 그러하듯이. 이렇듯 우리는 매 순간 온전하다. 그걸 발견할 눈만 있으면 말이다. 이 소중한 진실을 작은 나무에게도 알려주고 싶다. 우리는 온전한 겨울로 향하는 중이다.
위의 글을 쓴 것이 한 달 전이다.
집 앞 정원의 나무들은 이제 나뭇잎을 거의 다 떨어트렸다.입동入冬이 지난 시점, 계절의 변화는 몸의 감각이 가장 먼저 알아차린다. 아침에 눈을 뜰 때 약간 뻑뻑한 느낌. 건조해진 손발 끝이 거칠어지는 현상. 들숨에 찬 공기가 들어오면 주르르 흘러내리는 맑은 콧물.
오전 7시.
침대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가서 전기포트의 전원 버튼을 누른다.달칵.물이 끓는 동안 싱크대 가장 높은 수납장에 있는 인공눈물을 꺼내 양쪽 눈에 두어 방울씩 떨어트린다. 몇 차례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면 건조함이 완화된다. 같은 선반에 다시 손을 뻗어 옆에 있는 보이차를 꺼낸다. 거의 너덜너덜해진 종이 포장지를 살며시 열고 찌그러진 원반 모양으로 뭉쳐있는 찻잎의 가장자리 부서트린다. 손가락 반마디 정도의 찻잎. 검게 메말라 서로 얽혀있는 그것을 티포트에 넣고 차를 우린다.
거실 공기에는 섬유유연제 향이 낮게 깔려있다. 어제 거실에 널어둔 운동복이 밤새 다 말랐다. 난방을 설정해두지 않았는데 어쩐지 바닥에 온기가 들었던 것 같다. 보일러 컨트롤패널을 살펴보니실내온도가 23도로 설정되어 있다. 작년, 아니 아마도 올해 3월까지 작동했던 보일러가 다시 작동되기 시작했나 보다.
전기요가 깔린 침대에서 나오기가 싫어지는 계절. 발이 시려서 수면 양말을 찾게 되고, 손과 발에수시로 보습제를 바르는 일상. 오후 다섯 시만 되어도 어둑해지는 날들. 황량하고 매서운 바깥풍경과 아늑하고 따스한 실내공기. 그 격차가 주는 비현실적인 감각. 긴긴밤을 또 무얼 하며 보낼까, 쌀을 안치고 귤을 까먹으며 생각해 본다.
한강 작가의 단편 '작별'(제12회 김유정문학상수상작품)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난처한 일이 그녀에게 생겼다. 벤치에 앉아 깜박 잠들었다가 깨어났는데, 그녀의 몸이 눈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느 겨울날, 눈사람으로 변한 그녀는 차분히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감각하고는 받아들인다. 당황하여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이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한다. 작별이다. 사랑하는 이와 보냈던 저녁. 아이와 처음 교감했던 순간. 자신에게 등을 돌린 누군가에 대한 이해. 그런 것들을 떠올리는 의식. 나는 이 단편을 읽다가 울고, 베껴 쓰다가 또 운다.
가로수의 잎은 다 떨어지고 하천은 꽁꽁 얼고, 사람들은 각자의 두꺼운 외투에 몸을 숨기는 계절. 작별과 겨울은 모든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슬픔도 외로움도 눈물도 콧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