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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블루밍 Oct 04. 2021

제대로 산다는 건

open the door

책을 읽으면서 책 속에 있는 이런저런 인물과 자기가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는 경우가 있잖아? 다른 책을 읽으면 또 다른 모습이 보이고, 끝없이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거야. 자기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수백 개의 서로 다른 자아가 보여. 어느 것도 진정한 자아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수백 개의 자아를 다 합친 것이 진정한 자아인 것 같기도 하고, 모든 게 미정이야.

제대로 살고 있는 사람은 오히려 너라는 생각이 들어. 너는 네 안에 있는 자아들 중의 하나에다 너를 고정시키지 않았잖아. 너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

- 루이제 린저, <삶의 한가운데>


예전의 나는 하루빨리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어 이번 생의 캐릭터를 설정하고, 그 안에서 충실히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별일 없이 쭉 뻗은 도로를 고속으로 달릴 수 있고, 그게 잘 사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어린 마음에 내가 가는 길이 아직도 공사 중인 게 싫었다. 계획대로라면 이때쯤 24번 국도는 공사가 마무리되어 매끈한 상태여야 하는데, 울퉁불퉁해서 차가 덜컹거리며 느리게 가야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그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다. 계획대로 착착 된다면 오히려 적당히 달성할만한 목표들로 내 성장을 옭아맨 것은 아닌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그랬다. 미성년을 지나 온전히 나 홀로 이 세상을 맞닥뜨려야 할 때, 겁이 난 나머지 쪼그라든 포부로 만든 목표들을 그저 달성했다는 것에 합리화하며 살았다. 학점도 적당히 나오는 만큼 받았고, 취업도 적당히 갈만한 곳들을 넣었다. 이직을 준비할 때 더 가고 싶었던 곳들을 지원하긴 했지만 그에 맞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소박하지만 매달 들어오는 월급이 있었고, 저녁시간만큼은 내 마음대로 살고 싶다는 욕구가 흘렀다. 사실은 최선을 다했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을 때 상처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인정하기 싫지만 20대의 대단한 겁쟁이였다. 


어떤 캐릭터를 설정해 나를 고정시켜두는 건 죽기 전에 많은 후회를 남기지 않을까. 스무 살에 보는 세상과 스물다섯 살에 보는 세상이 다르고, 서른 살에 보는 세상은 또 다를 테니 말이다. 세상이 바뀌기도 하고 내가 변하기도 하니 많은 것들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과거만을 고집하는 우물 안 개구리로 살기에는 경험하고 느낄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러니 더욱 나답게 성장하고 싶다면 숨어 있는 잠재력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를 찾아 발현하여 나다움이 묻어나는 여러 개의 캐릭터로 살아가는 것이다. 자신을 어떤 모습에 한정시키면 그냥 그렇게 살게 된다. 그보다 조금 낫거나 덜하거나 둘 중 하나인 셈이다. 자신의 한계를 너무 일찍 정해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를 제일 잘 믿어줄 수 있는 건 내 자신이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언제든 자신의 능력을 감당할 준비를 해라.


스물아홉의 나는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도로 정비에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안전하고 하자 없는 설계와 공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게 진짜 제대로 사는 방법이라고 말이다. 자신이 뜻하는 바가 언제 이루어질지, 얼마나 이루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하며 만들어 가는 길 또한 내 일상을 충만하게 만드리라는 점은 자명하다. 진정 내가 원하는 목표라면 달성 여부를 떠나서 그 과정도 행복할 수 있다. 내가 유명한 작가를 꿈꾸지만, 아직은 주목받지 못한 채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마저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처럼.


부디 자신의 다채로운 캐릭터를 찾는 동안에도 마음껏 행복하기를. 그 결과 발견된 자신들로 충만한 삶을 만끽하기를 바라본다.




삶은 저마다 자아를 향해 가는 길이며, 그 길을 추구해가는 과정이다. 삶은 자신에게 도달하고자 끊임없이 추구하는 좁은 길에 대한 암시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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