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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카모토 미깡 Feb 08. 2024

잔여 시간을 알 수 없는 타이머가 눌리고 말았다

서문

너무너무 살고 싶은데 너무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어지는 기분 알아? 이럴 땐 더 내려놓아야 한다는 신호일 텐데. 이 타이밍에 이런 일이 생긴다는 건, 당분간은 그런 삶이 허락되지 않는 걸까.

아마 너무너무 잘 살고 싶어서 그럴 거야.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게 보상심리라는 게 생기잖아. 그런대로 살더라도 그냥 살아지는 건데. 지레 겁먹는 거지. 내가 그린 완벽한 그림대로 살아지지 않을까 봐. 그 <그림>이라는 거. 그 불행의 씨앗은 대체 누가 심어준 걸까?


남과 비교하기 전까지는 불운을 불행이라 생각하지 않았어. 손쓸 수 없이 무너진 집이더라도 애초에 그 집에만 살아본 사람은 그걸 문제 삼지 않으니까. 비가 새는 구멍 하나 없이,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한. 곰팡이 피지 않고 하수가 역류하지 않고 엄마가 환청과 싸우지 않는 집을 보며 비로소 어렴풋 알게 되는 거지. 출발선이 같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어쩌면 의지와 노력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가끔가다 극한의 상황에서 노오력으로 극적 승리를 쟁취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곤 해. 글쎄. 나도 그런 영웅 서사에 취했던 적이 있지만, 그런 식의 주입은, 때론... 너무 폭력적이야. 고통을 인지하는 게 아닌 억누르는 법을 배운 나는 반영구적인 장애를 얻었어.


오늘 아침 아빠를 보러 병원으로 향하는 엄마를 잠시 안아줬어. 한없이 작디작은, 그래서 가여운 당신의 품. 너네 어릴 때 이후로 이런 건 처음이라며 쑥스러워하는 당신. 아아. 하나뿐인 나의 엄마야. 가끔은 당신의 미련함이 참을 수 없이 미워. 억압의 사슬을 당신 손으로 끊어줄 수는 없는 거야? 한 발 용기 내서 다가와 줄 수 없는 거야? 아빠가 먼저 가는 상상 따위 해본 적도 없고 실감도 안 난다는 엄마 말에 기가 찼다. 서울에 있는 나도 아는 걸 옆에 있는 엄마가 왜 몰라? 언제 훅 떠나도 이상하지 않은 칠십 대 중반 노인이, 동일하게, 불운하게도 이어져 온 어마무시한 <책임감>의 사슬에 몸도 마음도 짓눌려 쪼그라드는 줄도 모르는 채, 언어도 안 통하고 친구 하나 없는 타국에서 평생을, 병든 아내와 두 딸을 위해 헌신하다 병을 얻었는데. 그해 겨울에도 버티고 버티다 끝내 쓰러져, 심지가 다 타들어간 촛불처럼 연약한 생명력이 쉼 없이 흔들렸는데.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던 그날의 공포를 나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는데. 대추밭 주인의 횡포에 아빠가 분노할 때, 왜 그 감정을 가만히 들어주지 못했어? 왜 참으라고만 했어? 왜 대화를 피했어? 왜 더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어? 당신의 화는 정당하고, 이해한다고. 그렇지만 그런 식으로 내 앞에서 화내는 게 무섭다고. 대추밭 주인도 무섭다고. 그런 단어가, 그런 표현이, 엄마의 사전에는 없는 거야? 왜 내가 육십 대 노년 남성의 희롱에 나의 존재 가치마저 의심할 만큼 마음이 꺾였을 때, 죽을 만큼 힘들어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어리광을 피울 때, 그래도 어떡하니 참고 살아야지, 너 또 이상한 생각 하지 마라 따위의 말밖에 해주지 못했어?


엄마는 <억압>으로 스스로 병을 키웠고 아빠의 화병을 돋웠고 내 팔에 굵직한 흉터를 남겼어. 아빠 편을 들어주는 게 서울에서 아둥바둥하는 둘째 딸 뿐이라는 걸 나는 알았고 그게 너무 무거워서 무서웠어. 나도 너무너무 힘들단 말야. 나도 며칠 전에 알바하다 쓰러졌단 말야. 근데도 말할 사람이 없어서 혼자 울었단 말야. 그러다 참지 못하고 인스턴트 라면으로 배를 채웠단 말야.


아아 엄마가 보고 싶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상상 속 엄마의 품이 그립다. 지금 나를 돌보는 건 만 스물네 살짜리 동갑내기 초보 엄마란 말야. 마음이 곯아 우는 딸에게 인스턴트 라면을 끓여주는 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못 미더운 엄마란 말야. 그런 나도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단 말야. 나를 양육하기 위해,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기 위해, 외로움의 사슬을 끊기 위해 죽어라 애쓰고 있단 말야.


愛に近づけないものがより苦しくなるデスゲーム、スタート。

残り時間は後僅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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