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기록
2월 7일 저녁이 되어서야 아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전날 아빠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곧바로 고속버스를 탔지만 중환자실 면회 시간에 맞추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오늘 아침에는 천안에서 촬영이 있었다. 촬영을 마치고 중환자실 저녁 면회 시간인 일곱 시에 맞춰 아빠를 보러 갔다. 약 두 달 만에 만난 아빠는 몸을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아침에 아빠를 보고 온 엄마는 분명 곧 괜찮아질 것 같다고 했는데…. 엄마의 지나치게 낙관적인 감상을 듣고는 예상할 수 없는 수준으로 아빠의 상태는 매우 나빴다. 손을 잡으려고 했는데, 아픈 아빠 손보다도 한겨울 바깥의 시린 기운을 머금은 내 손이 더 차가웠다. 아차. 다음번엔 핫팩을 가져와야지. 어쩔 줄 몰라 양손을 비비고 있으니까 아빠가 끙끙대며 손을 움직였다. 내가 손을 잡자 꽉 아빠가 움켜쥐었다. 말은 거의 할 수 없는 상태였고(아마 일본말이라 병원 사람들도 아빠의 상태를 정확히 모르는 듯했다) 가끔 눈만 힘겹게 껌뻑였다. 분명 당일 아침에는 의사가 수술까진 안 해도 된다고 했다던데 근처에 있던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고 시술 정도는 해야 할 수 도 있다고 했다. 병원비도 꽤 나올 것 같다. 약물치료를 하고 있다는데 정확히 뭘 어떻게 치료하고 있는지 몰라 함부로 말할 수 없지만, 중환자실에서 산소 호흡기를 달고 있는다고 말도 못 하고 몸도 못 가누는 사람이 낫게 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산소포화도가 자꾸만 낮아져 삑삑 소리가 났다.
그래도 내가 하는 말은 다 알아듣는 것 같았다. 그러면 안 됐었는데, 힘겨워보이는 아빠 모습에 초반에 너무 마지막 같은 말들을 해댔다.(사실 다는 못 알아들을 줄 알았다) 혼자 이것저것 떠들다가, 그날 천안에서 일본어 촬영 했던 게 너무 간단해서 “이런 걸로 20만 원 받아도 되는 거야?! “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웃는 아빠를 보고 아차 했다. 왜 진작 병원 가서 검사받으라는데 안 받았냐고. 시술 안 했냐고 묻는데 입술을 힘겹게 움직였다. 입모양으로 알 수 있었다.
「おかあさん。」
엄마.
아빠는 본인이 죽고 나면 엄마가 걱정인 거다. 조금이라도 돈을 남겨 두고 싶은 거다. 예전에도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에 반해 엄마는...
면회를 마치고 착잡한 심정으로 집으로 향했다. 일단 병원비가 최소 천은 나올 것 같은데 아빠 통장에 당장 쓸 수 있는 돈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고... 집에 들어갔는데 엄마가 아빠가 빨리 털고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툴툴거리는 식으로 말해 울컥했다. 지금 누워있는 사람 상태를 보고도 저런 말이 나온다고? 한술 더 떠서 운전면허도 외국인 등록증도 갱신 기간이 돼서 서류가 왔다며 아빠가 와서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말에 화가 폭발했다. 엄마는 아빠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과거의 상처와 원망과 분노가 울멍울멍 올라온다. 내가 이래서 같이 서울 사는 동안에도 어떻게든 빨리 집을 나가려고 한 거였지. 고작 이틀을 같이 있는데도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아빠는 어떻게 이런 여자랑 반평생을 살았지? 아빠가 돌아가시면 엄마랑 절연할까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다. 같이 있다간 나도 폭력적이게 변할 것 같다. 내 입과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아. 당장 나가서 병원 근처 모텔이라도 잡고 잠을 자고 싶었지만 택시비가 만만찮았고 무엇보다 너무 피곤했다. 자꾸 옆에서 뭐라고 하는데 대꾸하고 싶지도 않았고 화장도 안 지우고 그냥 잤다.
엄마와 아침 면회를 같이 가기로 했다. 면회를 마치면 오늘은 밖에 나가 자겠다고 했다가 엄마와 제대로 부딪혔다. 나는 참았던 말을 다 쏟아내고 말았다. 난 엄마가 현실도피하고 있다고 생각해. 지금 아니어도 어차피 아빠는 돌아가실 텐데 그 이후 생각은 해봤어? 아빠는 저렇게 누워서도 엄마 걱정인데 엄마는 아빠가 빨리 일어나서 서류 처리해야 된다 소리나 하고 있고. 좀 다르게 표현할 방법은 없어? 엄마는 진짜 중요한 얘기는 안 하고 다른 소리만 해. 그냥 걱정된다고 불안하다고 솔직하게 말해주면 안 돼? 내가 볼 때는 엄마는 억압 때문에 병이 난 거야. 거기까진 이해할 수 있어. 당연히 엄마 잘못이 아니었겠지. 하지만 여태 이러고 있는 건 엄마도 엄마 삶에 대한 책임이 있어. 엄마는 자신뿐만 아니라 아빠도, 나도 억압했지. 엄마가 반론했다. 내가 억압한다고 네가 참고만 살지 않았잖아. 헛웃음이 나왔다. 처음으로 자해 사실을 밝혔다. 나는 엄마한테 배운 적 없어. 솔직하게 말하는 법도, 감정을 표현하는 법도, 살아남는 법도. 나가서 개고생 했고 온갖 일 많이 당했고 죽고 싶은 생각 여러 번 했어. 그러면서 힘들게 힘들게 배웠어. 혼자서, 알아서, 잘. 내가 성추행을 겪었을 때도, 나는 변호사비를 못 대주는 엄마가 미웠던 게 아니라, 힘들겠구나 말 한마디 안 해주고 그래도 어쩌니 참고 살아야지 했던 게 미웠던 거야.
병원으로 향하는 버스정류장에서 엄마가 내게 사과했다. 말이라는 건 한번 터져 나오면 밑 빠진 독처럼 줄줄 새어 나와서 못다 한 말이 계속 떠올랐다. 엄마. 내가 중학생 때 엄마한테 다리가 저리다고 했다? 근데 엄마가 기분 탓이라고 병원도 안 보내줬어. 나도 그런 줄 알고 참고 살았는데 알고 보니 허리디스크였어. 미안해. 엄마가 몰라서 그랬어. 엄마가 느끼는 것도, 아빠가 느끼는 것도 , 내가 느끼는 것도 다 기분 탓이 아니야.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고마우면 고맙다고,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제 때 말해줘. 아빠 돌아가시고 나면 다 후회로 남을 거 아냐?
면회는 한 명씩. 최대 두 명이 30분의 시간을 쪼개서 쓸 수 있는데 엄마 먼저 가라고 했더니 꽤 오래 있다가 왔다. 아빠는 어제보다 기계를 하나 더 달고 있었다. 아마 산소포화도가 떨어져서 그런 것 같다. 입을 벌리고 숨 쉬는 게 힘겨워 보인다. 아빠가 입모양으로 뭐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못 나갈 거 같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냐 아빠. 내가 어제 들었는데, 시술까진 할 수도 있는데 나갈 수 있대. 아빠가 눈을 껌뻑껌뻑했다. 걱정하지 말고 힘내고 있어. 내가 저녁 때도 올게. 엄마랑 싸워서 나는 오늘 병원 근처에서 묵기로 했어. 내가 엄마한테 화냈어. 아빠한테 너무 어리광 부리는 거 아니냐고. 아빠가 웃었다. 나중에 엄마에게 들어보니 엄마가 면회 중 아빠한테 사랑한다고 했는데 아빠가 눈을 동그랗게 떴단다. 아마 엄마에게 무슨 바람이 불었나 싶다가 나랑 싸웠다는 얘기를 듣고 대충 상황을 파악한 것 같다.
아빠 옆자리에 있는 30대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 괴로운 듯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비트는데 눈이 마주쳤다. 어제저녁에는 관계를 알 수 없지만 조금 더 나이가 있어 보이는 여성이 면회를 왔는데 오늘 아침에는 없다. 마스크에 가려 눈빛 밖에 전할 수 없는데, 아빠 손을 잡고 있는 내가 홀로 고통스러워하는 그에게 어떤 눈빛을 보내야 할지 알 수 없어 잠시 눈을 마주치다 다시 아빠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면회 시간이 끝남을 알리는 관계자의 목소리에 나는 아빠에게 인사를 마치고 잠시 그에게 다가 얇은 이불 한 겹을 사이에 두고 손을 잡았다. 제가 손이 차가워서요. 힘내세요.라고 말하고 나오면서도 의문이 든다. 힘내라고 말해도 됐던 걸까. 너무 무책임하고 무거운 말이었나. 그의 눈빛을 읽을 수 없었다. 그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지난한 두려움과 공포의 시간 속에서 외롭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