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초를 더듬다
1999년 8월 14일 오전 9시 30분, 일본 이바라키현에서 일본인 남자와 한국인 여자 사이 둘째 딸이 태어났다. 이름은 사카모토 유미. 넉넉할 유에 아름다울 미 자를 써서 유복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성은 아빠에게 물려받았고, 이름은 엄마가 지어줬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네 살 이전의 기억은 잘 없다고 하는데 나는 아주 어릴 적 기억을 몇 개 가지고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동화책에 우유를 쏟아서 할머니에게 혼난 기억, 고모부가 자신의 콧구멍에 각각 엄지를 끼우고 양손을 접었다 폈다 하며 장난치던 기억, 엄마와 부엌에서 카레를 만들던 기억 등……. 2003년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이민 왔므로 일본에서의 기억은 모두 만 나이로 네 살 이전의 일이다.
그중에도 유독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두 가지 있다. 어느 쪽이 먼저 일어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무로 된 가정집이 배경이라는 점은 동일하다. 기억이라기보다 당시 내 시야에 들어온 풍경이 하나의 장면으로 인상 깊게 남아있는 것에 가까운데, 어릴 적 가족에게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앞뒤에 살을 보태 반복해서 이야기함으로써 하나의 <기억>으로 뇌에 저장된 것으로 추정한다.
첫 번째는 노란색 스마일리 패치가 크게 들어가 있는 빨간색 슬리퍼가 공중에 떠있는 장면이다. 그때 나는 일층과 이층을 연결하는 진갈색 나무 계단을 사이에 두고 언니와 비치볼을 주고받으며 놀고 있었다. 계단 위에 있던 내가 공을 잡은 양손을 머리 위로 쭉 뻗었다가 있는 힘껏 아래로 던졌을 때였다. 너무 힘을 준 탓인지 반동을 견디지 못한 작은 몸도 같이 홀라당 계단 밑으로 던져버렸다. 순간 눈앞의 장면이 슬로 모션처럼 재생되면서 발에서 벗겨진 슬리퍼가 보였다. 내가 신고 있던, 노란 스마일리가 웃고 있는 빨간 슬리퍼. 공중에 머무르는 동안 스마일리와 꽤 오랫동안 눈을 맞춘 것 같다. 그 뒤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엉엉 우는 나를 재빨리 병원에 데려가서 의사 선생님 앞에 앉혀놓자마자 눈물을 뚝 그쳤단다. 놀랍게도 다친 곳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두 번째는 형광등 스위치 커버에 붙은 마녀 스티커를 나무라는 장면이다. 엄마는 이유 없이 잘 우는 사람이었다. 엄마 입장에서야 모종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어린 내가 아무리 물어도 눈물 흘리는 채 잠시 미소 지을 뿐이었다. 그날도 엄마는 아빠의 귀가를 앞둔 이른 저녁, 부엌 앞 테이블에 앉아 흐느끼며 울고 있었다. 언니와 나는 이를 발견하고 허둥대며 엄마를 달래주려 애썼다. 나는 엄마가 울면 어쩔 줄 몰랐다. 우는 엄마가 그저 가엽고 안쓰러웠다. 엄마의 주변을 불안하게 맴돌며 지키고 있는데, 그날은 마녀 스티커가 눈에 띈 것이다. 언니는 엄마 얼굴 옆 나무 벽에 자리한 형광등 스위치 커버의 마녀 스티커를 가리키며 외쳤다.
“저 못된 마녀가 엄마를 괴롭힌 거야!”
나는 얼결에 덩달아 장단을 맞췄다.
“맞아! 나쁜 마녀! 다 마녀 때문이야!”
“당장 없애버리자!”
그 마녀 스티커는 언니와 나 둘 중 한 명이 붙였을 테지만, 우리는 과장된 액션을 보태가며 그 자리에서 마녀를 즉시 처단했다. 엄마는 우리를 보며 잠깐 동안 웃었던 것 같다. 그러나 언니와 나의 노력이 엄마의 눈물을 멈추게 하는 일은 없었다.
일본에서 살았던 건 아주 어릴 적임에도 이토록 제법 선명한 기억이 남아있는데 비해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구간이 존재한다. 아마도 2002년 혹은 2003년, 우리 가족의 삶을 송두리 째 바꿔 놓은 사건이 발생한다. 그 사건으로부터 한국으로 이민 오기까지의 구간을 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지만, 다른 가족들의 증언으로 사건 전후 가족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대충 알고 있다. 일시정지되어 있던 기억은 한국에서의 삶이 시작된 부분부터 다시 재생된다. 우연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뇌가 의도적으로 그 부분을 삭제했다고 느낀다.
그 사건은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의 삶에는 원인으로 작용했으나, 누군가의 삶에 비추어 봤을 때는 결괏값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엄마가 우리 집에 방화(放火)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