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주인공을 정하라
펜 드로잉에서 선을 잘 쓰고, 형태를 잘 잡는다면 게임은 끝이다. 펜 드로잉의 90%는 마스터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나머지 10%는 무엇일까? 나는 화면 구성과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그림 그리는 것도 영화와 같은 연출이 필요하다. 특히 내가 의도하는 표현을 더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 또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구성과 연출을 잘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화면 구성과 연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적으로 주인공의 선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주로 사진 등의 대상을 보고 펜 드로잉을 한다. "그런데, 보고 똑같이 따라 그리는데 주인공이 필요해?!" 라며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주인공을 정하고 그리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확연하다.
보고 그리는 그림에서 모든 것을 다 잘 그리기는 힘들다. 그리고 집중력의 한계도 우리는 고려해야 한다. 취미로 그리는 우리에게는 중요한 요소 한 두 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모두 잘 그릴 수 있는 실력이 안되니까..
잘 그리고 싶은 것을 먼저 잘 그려 놓으면 일단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에 맞춰서 다른 것들을 그려나간다. 이렇게 하면 주인공의 크기를 내가 원하는 크기로 그릴 수 있다. 만약 반대로 주인공이 아닌 것들 먼저 그리다 보면 배경이나 조연들의 그려진 크기에 맞춰서 주인공을 그리게 되고 그 크기가 너무 작거나 크게 되는 일이 발생한다. 즉 주인공의 크기를 원하는 대로 그릴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한다.
주인공을 먼저 그리는 것은, 내 실력에 맞는 적당한 크기로 그릴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너무 작게 되면 그릴 수도 없고 전체 그림에서 잘 보이지도 않게 된다. 주인공의 존재감이 없어지는 것이다.
또한 주인공을 먼저 그리면 원하는 위치에 그릴 수 있다. 적당한 위치의 선점은 전체 그림의 느낌이나 메시지를 부각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다른 부분을 먼저 그리다 보면 정작 중요한 그림이 구석에 처박히는 암담한 일이 종종 발생한다.
(위의 그림에서 원본 사진과 다르게 여인과 강아지를 더 크게 그렸다. 주인공을 더 강조한 것이고, 너무 작아서 표현하기 힘든 면이 극복된다.)
도시의 복잡한 풍경 그림을 처음 그릴 때도 화면 구성과 연출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풍경의 주인공을 정하고 크기와 위치를 정한 뒤 어디까지 그려줄지 결정해야 한다. 그렇게 계획을 짜고 하나씩 그려 가다 보면 복잡한 풍경도 그려낼 수 있게 된다.
(위의 드로잉에서 수다를 떠는 할머니들과 수다의 대상이 되는 멀리 보이는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주인공인 할머니들을 부각하기 위해 특별히 채색을 해주었다.)
간단한 그림을 그릴 때도 화면 구성과 연출은 그림의 맛을 살리는 중요한 요소이다.
위의 그림은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펜 드로잉이다. 원본 사진 자체가 음영이 강했다. 디테일한 부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어떻게 그릴까 고민하다가 위의 그림을 그렸다. 디테일한 묘사보다 윤곽만을 그리는 연출로 대상을 표현했다.
위의 그림은 티나 터너란 미국 가수의 드로잉이다. 티나 터너는 파워풀한 가창과 어마어마한 카리스마로 유명한 가수이다. 그런 그녀를 표현하기 위해 과장된 화면 구성과 연출을 했다.
위의 그림은 옛날 슈퍼맨 영화의 한 장면이다. 여기서 주인공은 슈퍼맨이 아니라 아이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슈퍼맨을 모르는 아이는 이상한 못을 입은 아저씨의 창피함을 걱정할 뿐이다"라는 것이었다.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아이에게 포커스를 두는 연출이 필요했다.
취미 그림을 그리는데 화면의 구성과 연출은 필수 사항이 아니다. 그냥 심플하게 그림을 그리면 된다. 다만 그림의 재미를 좀 더 끌어올리고 싶고, 내 의견이 반영된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 고려해 볼만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