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TV 외화 시리즈들
저의 추억 속에 TV 외화 시리즈들이 이렇게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금방 끝날 것으로 여겼던 연재가 예상외로 오래 이어졌네요. 더 놀라운 것은 아직도 이야기 못한 시리즈들이 남아있다는 것이죠. 연재의 마지막에 도착하니 한 가지 궁금한 게 생겼습니다.
옛날 작품만 한 명작이 없다고 지금 시대를 한탄하는 사람들에게, 어느 평론가가 한마디 했습니다. "지금도 뛰어난 명작들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당신이 그 시절만큼 관심이 없거나 모를 뿐이다."
추억보정이 들어간 그 시절 문화 상품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심이 들었습니다. 특히 스트리밍 시대로 접어들면서 저의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들이 급속도로 줄어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지난 연재에서도 다루었던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 서비스의 출현은 그 변화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옛날과 지금을 바꾸어놓은 그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을 "소중함"의 부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릴 때 TV 외화 시리즈를 보기 위해서는 특정한 날, 특정한 시간을 기다렸다가 TV를 틀어야 했습니다. 재방송의 시청률도 높았던 이유는 그 외의 재시청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영상 콘텐츠 하나하나가 소중했습니다. 그 소중함은 음악이나 다른 문화상품들도 마찬가지였죠. 비디오테이프나 카세트테이프에 녹화, 녹음해서 소중히 간직했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넷플릭스에서 아무 영상이나 틀어놓고 다른 일들을 한다고 합니다. 그냥 일상 배경들 중 하나로 영상의 지위가 내려간 것입니다. OTT 구독료가 비싸지만 그 비용만큼 영상 콘텐츠를 소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위의 그림은 "말괄량이 삐삐"입니다. 이번 연재에서 제가 "삐삐"를 빼먹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좋아했던 시리즈였거든요. 그 시절 삐삐는 방학이 되면 어김없이 TV로 방영되었습니다. 재방이 무한 반복되는 것이었죠. 그래도 저는 언제나 TV속 삐삐를 봤습니다. 내용을 거의 외우고 있는데도 말이죠. 그만큼 소중했습니다. 더구나 지상파 TV판은 "더빙"이라는 희소성도 가지고 있었죠. 맛깔난 더빙은 그 작품의 50%를 담당했습니다. 아직도 특정 외화 시리즈 더빙판을 찾아다니는 덕후들이 존재할 정도입니다.
콘텐츠 구독 시스템이 표준이 된 시대에 콘텐츠에 대한 소중함이 예전과 같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입니다. 하지만 영화나 노래, TV 외화 시리즈들이 우리들에게 주었던 그 소중한 감정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슬프게 만듭니다. 제게 그나마 "감성"이란 것이 남아 있다면 그 시절 그 소중한 경험들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고도로 발전된 현재를 사랑합니다. 옛날로 돌아가라고 하면 화를 내며 거부할 것입니다.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고, 과거로 회귀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연재가 잊고 있던 소중함을 다시 떠올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시대가 소중함이란 것을 사라지게 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 "소중함"을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