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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맘 Dec 20. 2023

내 돈이 모였다면 남 돈부터 갚기

우리 어릴 적에는 다들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았다. 학교 친구들 집도 그렇고, 동네 언니 오빠 집들도 다 고만고만했다. 다들 하루 먹고살기 바빴다. 엄마는 가끔 앞 집 아주머니한테 돈을 빌리곤 했다. 학교 회비를 내기 위해서도. 먹을 것을 사기 위해서 돈이 필요했다. 몇 월 며칠 날까지 갚을 거라는 엄마의 구두 약속은 종이에 적는 계약서만큼이나 정확했다. 어떤 날은 우리 집으로 돈을 빌리러 오는 사람이 있었는데 말로 하는 약속으로는 부족했다. 언제까지 줄 거라는 계약서를 작성했지만 이행하지 않는 동네 어느 사람 때문에 엄마는 여러 번 그 사람을 찾아갔던 적이 있다. 돈을 갚을 생각이 없는 사람은 말이든. 종이든 아무 쓸모가 없다.


엄마의 신용은 좋았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가 돈을 빌려 달라고 하면 누구든 바로 빌려 주었다. 일이 늦게 끝난 어느 날은 밤늦게 대문을 두드려 빌린 돈을 갚고 왔다고 한다. 약속은 약속이라고. 오늘 갚고자 했기에 밤 12시가 되기 전까지는 무조건 갚아야 된다고. 늦은 밤 대문 두드리는 소리에 놀란 아주머니는 내일 줘도 되는 뭣하러 이 늦은 밤에 왔냐고.  엄마한테는 돈 갚는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했다. 


사람들 중에는 돈을 빌리고 차일피일 미루며 돈을 갚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곳저곳 돈을 빌리기만 하고 갚지 않는 사람은 빚이 눈덩이처럼 쌓여 버린다. 빚도 문제지만 그 사람은 두 번 다시 누군가에게 돈을 빌리기 어렵다.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 줄 사람은 없으니깐.


엄마는 돈이 모이면 남 돈부터 갚았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나이기에 돈이 모이면 남의 돈부터 갚는다. 여행을 계획하는 것도. 좋은 옷을 사는 것도 모두 남의 돈을 갚고 난 이후부터다. 


남편이 좀 더 실용적인 차로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기존 차를 팔고 돈을 조금 더 보태면 살 수 있다고. 멋 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동과 편의성을 위한 선택이기에 그러자고 했다. 차익금은 천만 원 정도가 예상된다고 했다. 캐피털을 이용할 거라는 남편의 말에 그러지 말자고 했다. 캐피털 이자를 생각하니 은행예금이자보다 몇 배나 높았다. 그럴 바에는 정기예금 통장을 하나 해지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예금을 해지하고 남은 차액을 현금으로 주고 차 구매를 완료했다.


 누군가는 빚도 현명하게 사용하면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앞에 전제가 달렸듯이 '현명하게 사용하면'이다. 현명하게 빚을 사용한다면 분명 자산 늘리기에 도움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택담보대출로 집을 구매한다. 빚을 내지 않고 전액 현금으로 집을 구매하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다. 간혹 뉴스에서 어느 배우가. 어느 연예인이 대출 없이 현금으로 전액 지불하고 샀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는 극히 드문 이야기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빚을 내어 집을 사고 자동차를 사고 사업을 시작한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빚이라면 빚도 자산이다. 


티클을 모아 남의 돈을 갚았다. 은행에서 빌린 돈. 집을 사기 위해 빌린 돈을 갚고 돌아오는 길 남편과 두 손을 꼭 잡으며 서로 수고했다고 말해 주었다. 그동안 여행 가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 참아가며 버텨온 돈과 시간이다. 내 돈이 생긴다면 남의 돈부터 갚아 나간다. 남의 돈이 내 돈이 되는 순간이다. 그렇게 오늘도 나의 티클은 동산을 향해 쌓여간다. 곧 태산을 만나는 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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