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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맘 Dec 27. 2023

먹고 싶은 거 세 번 참아보기

한 달 동안 생활비 소비를 들여다보면 식비가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입의 즐거움과 편리함에 배달음식을 많이 주문한 달은 식비가 과도하게 지출된 달도 있다. 돈이 새어나가는 원인을 찾았으니 고쳐 나가면 되는 거다. 일단 소비해 버린 돈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깐. 


한 번에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다. 서서히 조금씩 천천히 해보기로. 담배나 술은 단칼에 잘라내야 하지만 먹는 건 그리 매정하게 잘라내지 못한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먹는 거 가지고 쪼잔하게 굴면 사람이 치사해지기 마련이다. 일주에 서너 번의 배달음식 의존도를 한 두 번으로 줄인다. 음식을 주문하기 전 삼세번의 질문을 던져본다. 

첫째, 정말로 먹고 싶은가.

둘째, 냉장고에 대체할 만한 음식이 있지 않은가.

셋째, 후회하지 않겠는가.


세 번의 질문에도 소비브레이크가 밟히지 않는다면 먹어야 하는 거다. 생일이라든지, 상장을 받았다든지, 누가 들어도 기특한 일을 했다든지 하는 특별한 일이 아닌 이상 먹고 싶은 거 세 번 참아보고 그래도 안되면 삼 세 번의 질문을 던져보고. 그래도 안되면 주문서를 넣는다. 푼돈 그까짓 그 돈 아껴서 뭣하려고 먹고 싶은 거도 못 먹게 하냐고 불만의 소리를 토해낸다. 푼돈 무시하지 마라고. 푼돈이 얼마나 큰 힘이 생겨나는지 곧 보여준다고. 기대하라고 말해둔다. 그리 말하고 나면 돌아오는 건 '피식' 코웃음뿐이다. 


쪼잔하게 그러지 말라고. 돈 벌어서 먹고 싶은 것도 제대로 사 먹지 못하냐고. 불만이 폭발한 날이 있었다. 먹을 것 가지고 소비 브레이크를 밞는 건 다른 어떤 것보다 어렵다. 인간의 기본 3대 욕구인 수면욕, 식욕, 성욕에도 버젓이 식욕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인간의 본능을 제어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폭동과도 같은 반발에 주문배달 횟수 제한을 풀어 버렸다. 나만 좋자고 소비를 줄이는 것도 아니고. 다 잘 살아보자 하는 일인데 불만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식탐으로 치면 우리 가족 중 내가 제일이다. 어릴 적 사진첩을 들여다보면 손에는 꼭 먹을 것을 쥐고 있다. 한 번도 먹을 게 없었던 사진이 없었다. 돌사진조차도. 


회사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위해 간식 빵이 도착했다. 든든하게 먹으라고 여유 있게 빵을 주문한다. 모두가 먹는 걸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걸 그때 알아 버렸다. 유독 입이 짧은 직원이 있었다. 점심도 공깃밥 하나를 비우지 못한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두 시간 뒤 간식빵이 도착한다. 현장에 있던 직원들은 빵을 먹으러 사무실로 모여든다. 다들 두세 개의 빵을 해치운다. 그 한 직원은 빼고 말이다. 현장직원들이 휩쓸고 간 빵바구니 앞에 선다. 남은 빵은 사무실 직원들이 먹거나 냉장고 보관하거나. 정리하는 사람 마음이다. 빵 먹을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다. 다들 손사래를 친다. 점심 먹은 게 아직 소화되지 않았단다. 먹고 싶으면 먹으라는 과장의 말이 들린다. 몇 개의 빵은 냉장고에 넣어두고 땅콩 크림빵과 단팥빵을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문서정리를 하며 빵을 간식 삼아 먹었다. 


현장 직원이 냉장고 문을 열고 빵을 꺼내 든다. 그리고 외친다. "빵이 왜 이것밖에 없지. 누가 먹은 거야!"라고. 그 직원은 빵을 먹으면서 빵 개수를 세어 놓고 일을 하러 간 것이다. 현장직원을 위한 간식이지만 사무실 직원들도 함께 나눠 먹을 수 있게 넉넉히 주문서를 넣는다. 근데 빵 먹은 범인을 색출하고 있는 상황은 황당 그 자체였다. 빵봉지가 내 착생 위에 있다는 걸 그 직원은 이미 눈치채었다. 아마 냉장고 문을 열기 전부터 알고 있는 눈치였다. 나만큼 식탐이 대단한 직원이라는 걸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거기서 끝났으면 그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 직원은 점심 공깃밥 개수에 대해서도 불만의 소리를 높였다. 먹는 것 가지고 치사하게 왜 저런다냐. 공깃밥 하나를 더 먹었다고 난리인 거다. 그날 반찬이 맛있어 한 공기 더 먹었다. 그게 뭐 어떻다고 저 난리인지. 현장에 일하는 사람들을 배려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문을 닫고 나가 버린다. 


먹는 거에 진심인 나다. 그런 나지만 식비를 아끼지 않으면 생활비에 구멍이 날 것이고. 돈은 어떻게 모을 수 있겠는가. 먹고 싶은 거 세 번 참아보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나의 소비패턴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강요한다고 한들 들어주지 않으니깐. 스스로 동참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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