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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맘 Jan 01. 2024

꽁 돈도 돈이다.

아이들이 사용하지 않는 레고 장난감들을 정리한다. 먼지만 쌓이는 장난감들을 당근에 올려 본다. 몇 시간이 지나고 문의 톡들이 온다. 오늘 몇 시 몇 분까지 갈 수 있으니 거래를 하자고 한다. 잘 된 일이다. 아이들 방을 정리할 수 있어 좋고, 구매자는 저렴한 가격에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으니. 약속한 시간에 물건을 거래하고 거래 금액을 받는다. 꽁 돈이 생겼다. 중고 거래를 하지 않았으면 생기기 않았을 돈이다. 그 돈으로 무엇을 할까 생각해 본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사줄까. 사고 싶었던 액세서리를 살까. 그것도 아니면 주말에 외식을 할까. 꽁 돈을 쓸 궁리에 머리가 바쁘다. 


'당근' 알림톡이 온다. 판매완료 상태를 해두지 않아 누군가 톡을 보낸 듯하다. 바로 판매완료 상태로 바꿔 두었다. 톡의 내용은 이랬다.

 '이 제품은 구하기 힘든 제품이에요. 그래서 이 가격에 파는 거 정말 손해입니다. 오지랖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지나가다가 안타까움에 말을 걸어봅니다. 이 시리즈 피겨 가격만 해도 희망 판매금액보다 높아요. 그냥 그렇다고요. 판매금액설정은 자유시지만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 

고마운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이미 판매한 상품에 대해 가격책정이 잘못되었다고. 몰랐으면 몰랐지 알고 나니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사용하지 않은 물건을 판매해서 기분이 좋았던 것도 잠시 제 가격을 받지 못하고 판매했다는 생각에 억울함까지 더해졌다. 이미 떠나간 배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위안을 해보지만 손해 보고 팔았다는 마음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좋은 시리즈의 제품이라도 누군가 사지 않는다면 먼지 쌓인 장난감일 뿐이잖아. 아이들 방을 정리해야 했고 끝까지 팔리지 않았다면 종량제봉투에 넣어서 버릴 생각까지 했다. 그랬던 나다. 근데 지금 제 가격을 받지 못했다고 이리 속이 상해 있을 일인가. 참으로 사람이라는 욕심은. 생각을 바꾸니 혼란스럽던 마음도 안정을 찾아갔다. 톡을 보내준 이에게는 고맙다는 말을 남겼고 이미 필요한 사람에게 판매가 된 상태라고. 말해 두었다. 아이들 장난감을 판매한 금액은 소비하지 않고 티클 모으기 통장에 넣어 두기로 했다. 꽁 돈도 돈이다. 꽁 돈이 생겼다고 소비할 곳부터 찾는 나를 보며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아직 재테크 고수들의 발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질책하며 조금 더 소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두기로 한다. 지인은 나를 짠테크 전문가라고 말한다. 전문가는 무슨 수료증도 못 받은 갓 새내기 수강생이다. 아직 배울 것도 알아갈 것도 많은 나다. 


집 정리를 할 때마다 중고 거래를 할 수 있는 것들을 줄지어 세워 둔다. 버리기에는 아깝고 판매하기는 또 애매한 상품들은 나눔으로 올려둔다. 누군가는 필요하겠다는 생각으로. 나눔 제품들은 짧은 시간 안에 거래가 완료된다. 쓰지 않는 물건을 나눔 하는 거지만 누군가에게 필요한 제품을 나눌 수 있다는 마음은 또 다른 중고거래 묘미다. 쓰지 않은 물건들을 정리하고 정리된 물품을 판매해 얻은 수익을 꽁 돈이라 정의했다. 근로소득이 아닌 불로 소득으로 자체 분류해 버린 나다. 먼지 묻은 제품을 소독티슈로 닦아내고, 사진을 찍고, 중고 플랫폼에 올리고, 여러 거래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약속을 잡고, 약속장소에 나가 거래를 완료하는 일. 이 모든 과정은 생산자인 나의 노동이 포함되어 있다. 환경에 의해서 타인에 의해서 얻어진 소득이 아니다. 


중고 판매금액은 티클 금액이다. 적게는 만원에서 많게는 오만 원까지. 돈의 액수는 다르지만 모두 티클통장에 넣어 둔다. 티클이 모여 작은 동산이 될 때 은행 정기예금 통장을 만들어 둔다. 티클들이 어느 정도 모이면 은행이 주는 이자를 받을 수 있기에.  티클 일 때도 은행이자를 주기는 하지만 아주 정말 눈곱만큼의 이자다. 중고 판매대금뿐만 아니라 기고한 글이 월간지에 실리는 달은 원고료를 받는다. 아주아주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그 수익 역시 티클 통장에서 동산을 기다리고 있다. 작은 것들이 모여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티클 일상을 살아내고 있다. 꽁 돈도 돈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되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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