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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맘 Jan 03. 2024

한 번쯤은 나를 위해 플렉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한다. 너무 돈돈돈 외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충동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어느 광고의 카피처럼. 열심히 짠테크 한 당신 플렉스 하라고 외쳐본다. 감정에 따라 소비를 하던 습관은 사라진 지 오래다. 우울해서 소비하고, 날씨가 좋아서 돈 쓰려 나가고, 비가 오니 맛있는 거 생각나서 돈 쓰고. 이래저래 돈 쓰는 궁리만 하며 지낸 시간들을 흘러 보낸다.


일정금액이 모이면 한 번은 플렉스를 외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쉼 없이 달려온 짠테크 일상에 잠시 쉼의 공간을 내어주는 건 필수 선택사항이다. 이런 재미도 없으면 길고 긴 여정을 어떻게 견디고 버틸 수 있나. 절대로 버텨내지 못한다. 적어도 나는. 나름 성향에 맞게 무질서 속에 질서가 있는 짠테크다. 일정 금액에 도달하면 사고 싶었던 것들을 과감히 질러 버린다. 그때의 소비는 삼세번 질문이 적용되지 않는다. 무조건 결제이다. 망설이지 않는다. 그날만큼은. 


목표한 금액에 도달하고 사고 싶었던 가방을 구매했다. 오래전부터 눈여겨본 제품이다. 명품은 아니지만 나름 가격대가 있는 제품이다. 명품가방 가격과 비슷한 고가 라인 제품들도 있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니. 다행인지 나름 실용적인 디자인을 좋아하는 나다. 오랫동안 자주 들고 다닐 수 있는 디자인을 선호한다. 


시장에서 구매한 어그 슬리퍼는 눈이 오면 양말이 젖어 버리는 방수 기능이 없는 제품이다. 바닥 미끄럼방지도 약해 여러 번 넘어질 뻔했다. 다음 목표금액에 도달하면 어그 슬리퍼다. 털이 풍성하고, 방수도 되고, 미끄럼 방지도 되는 걸로. 목표금액을 높게 잡아두지 않는다. 짠테크라 돈이 모이는 건 더디고 더디다. 그렇다고 돈을 모으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남에게 빌린 돈을 빨리 갚아야 하니깐. 티클을 끌어 모아 동산을 만드는 일은 인내와 끈기 그리고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견디고 견디어 내면 동산을 만나고 태산을 바라볼 수 있다고 믿는다. 


세상에 사고 싶은 건 많은데 능력은 따라가 주지 못하는 현실에 자주 부딪친다. 은행 업무를 보러 간 날 연말이라 내년 달력을 나눠 준다. 은행 달력은 돈 들어오는 달력이라 인기가 많다. 며칠 전 뉴스에는 인기 있는 여가수가 모델인 은행 달력은 품절이라 중고 플랫폼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등장했다고. 탁상달력은 구하기도 힘들다. 지인한테 얼른 은행에 가서 하나 받아 오라고 말했다. 지인은 은행 달력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매년 디자인 달력을 구매하고 있다고.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그다. 그러니 집 분위기에 맞는 달력을 매년 구매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 거니깐. 


들어오는 돈은 한정되어 있는데 소비를 즐기는 주위 사람들을 볼 때면 궁금해 묻는다. 그렇게 생활하면 다음 달 생활비는 괜찮아? 지인은 대답한다. 매일 허덕 되지 뭐. 내가 볼 땐 그리 허덕 되는 거 같아 보이지 않는데. 그의 소비패턴은 다음 달도 달라지지 않는데. 그들의 가계부를 훔쳐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어떻게 생활이 가능할까. 그들만이 알고 있는 비밀스러운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내년은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계획 중이다. 우리가 곧 남의 돈을 모두 갚아 버리면 플렉스 하기로 했기에. 여행지는 후보지 몇 개를 정해두었다. 열심히 티클을 모은 나에게 한 번쯤은 플렉스 기회를 주는 건 필요가 아니라 필수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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