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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맘 Jan 08. 2024

흩어진 돈 헤쳐 모여

티클 통장들을 모아둔다. 이제는 동산을 만들 차례다. 정기예금 통장에 있는 돈을 한 곳에 모은다. 대출금 상환을 위한 통장으로 흩어진 돈들 헤쳐 모여! 


드디어 우리가 목표한 대출금 상환 날이 돌아왔다. 은행이 정해 놓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정한 상환 날짜다. 하루빨리 남의 돈을 갚고 우리 돈을 모으고 싶었기에. 티끌을 짠내 나게 모았다. 주식계좌에 있는 돈들도 예외는 아니다. 마이너스 주식들은 넣어두고 플러스 주식들은 매도했다. 오랜 시간 가져갈 주식이라고 생각했는데 남의 돈 갚기가 먼저니. 3년 동안 모아놓은 배당금 통장 돈들도 헤쳐 모여! 흩어진 돈들이 모인 통장은 예상한 금액보다 조금 많았다. 많은 건 문제가 아니다. 더 좋은 일이다. 예금 이자를 따로 계산하지 않아 생긴 오차금액이다.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니깐. 


남편과 은행을 방문했다. 

"대출금 상환하러 왔는데요."

창구직원과 여러 번의 말과 사인과 비밀번호를 주고받으니 우리의 대출금은  0원이 찍혔다. 우리는 이제 남의 돈을 모두 갚은 것이다. 그리고 우리 집은 온전히 우리 집이 되었다. 매달 은행에 비싼 월세를 내고 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는데. 이제 그 불편함을 말끔히 흘려보낸다. 남편은 근로소득의 일부를 매달 적금으로 돈을 모았고, 나는 오랜 기간 동안 티클들을 모아 목돈을 만들었다. 우리는 각자가 할 수 있는 돈 부풀리기를 하고 있었다. 각자가 알아서 잘하는 걸로. 


티클을 티클로만 모으면 목돈이 되기까지 정말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어느 정도의 티클이 모이면 주식 투자를 한다. 투자가 안정적일 수는 없지만 최대한 안전한 회사를 선택해서 원금 손실을 방어할 수 있도록 한다. 일단 팔지 않으면 손실은 아니니깐. 주가가 상승하면 매도했다가 주가가 떨어지면 매수했다가를 반복하며 티클의 몸집을 조금씩 키워 나간다. 이러다가 몇 개는 아직도 마이너스에서 벗어나지 못해 탈출하지 못한 주식이 있다. 뭐든 생각한 대로 되면 좋겠지만 세상 사는 게 어찌 그런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려니 하며 주식시장이 호황이 오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투자에는 위험이 따른다는 건 누구든 알고 있는 사실이니깐. 조금은 마음이 쓰리지만 받아들이는 중이다. 


돈 쓰는 게 이렇게 즐거울 수가. 팬시점에 들러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에 필요한 펜들과 스티커 포스티잇등을 구매했다. 아기자기한 것들을 보니 기분이 저절로 좋아져 이것저것 바구니에 담기 바빴다. 모양이 귀여워서 담고, 신기한 활용도에 놀라 담고, 글자가 예쁘게 쓰여서 담고, 그냥 기분이 좋아 마구 담았다. 2024년을 잘 살아내기 위해 다이어리를 준비했고 그 다이어리를 꾸밀 재료들이 필요했다. 팬시점을 나와 빵집으로 향한다. 먹고 싶었던 빵을 골라 테이블 위에 한가득 올려 둔다. 점원이 세일 중인 빵을 권한다. 그것도 함께 계산해 달라고 말한다. 집으로 돌아와 쇼핑목록을 식탁 위에 펼쳐 놓는다. 먹고 싶어 했던 빵에 손이 가지 않는다. 몇 개는 냉동실로 넣어두고 몇 개는 싱크대위에 놓아두고 또 몇 개는 식탁 위에 보기 좋게 놓아두었다. 당장 먹고 싶은 빵이 없다. 팬시들을 책상 위에 정리한다. 다이어리에 오늘 소비한 내역을 적는다. 다이어리는 정해진 내용은 없다. 그날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일어났으면 좋은 일들을 적는다. 그날 나에게 일어난 일은 생각 없이 쇼핑을 한 내용을 적는 거다. 순간의 즐거움에 소비를 했다. 필요한 것들을 사는 것은 그리 나쁜 소비가 아니다. 불필요한 것들을 담아내는 게 문제다. 그날 산 빵 중에 일부는 먹지 못하고 버려졌다. 맛이 상하거나 곰팡이가 생겨나 서다. 팬시 용품 중에는 아직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있다. 


다이어리에 미래에 일어났음 하는 일들을 적어간다. 즐거움에 감춰진 후회를 불러올 것들에 대해서 기록한다. 기록은 기억의 한계를 넘어선다. 기억은 자주 불필요한 것들에 대해 잊어버리지만 기록은 잊어버린 기억들을 되살린다. 여전히 티클을 모으고 있다. 작지만 소중한 티클을 하나둘 모아간다. 흩어진 돈을 모으는 일만큼 즐거운 일도 없다. 대출금 상환이 끝나고 우리는 새로운 목표를 세운다. 그 목표를 위해 또다시 티클 모아 동산을 만들어 태산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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