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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카 Aug 16. 2022

컬러리스트

요즘은 꽃 그리기와 조색하기를 번갈아가며 하고 있다. 하나를 하다 보면 현타가 온달까..

시간이 지난 후 돌아오면 조금 더 애정이 생기게 되는 느낌이다.


이왕 조색에 대해 배우는거, 컬러리스트 기사 자격증을 따보기로 한다.

마침 대학 전공 중 중, 기사 시험을 바로 볼 수 있는 전공이 있어서 내가 볼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시험에 도전하기로 했다.

참고로 남편은 전문대를 나왔는데, 전문대 졸업은 기사가 아닌 산업기사 자격증만 딸 수 있다.

나는 4년제를 나왔는데, 남편이 그렇게 갈구하던 기사 자격증에 쉽게 도전할 수 있는 것을 보고 현실은 참 누구에게는 쉽고, 누구에게는 각박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는 이 도전을 하는 데 있어서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는 것이 꽤 충격적이다.

(전문대나 4년제나,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살다보니 현실은 큰 차이를 두고 있었다.)


컬러리스트 자격증 공부를 독학으로 하면 문제집 비용과 시험 응시비만 내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실기 시험이라는 것이 있었고..

실기 시험을 하기 위해서는 최근 몸값이 2배로 뛰어버린 컬러칩이 필수 (시험장에서 정식 채택한 컬러칩 중, 가장 유사한 색을 재현하는 컬러칩은 최소 6만원짜리는 사야지 시험 응시시 쓸 수 있다.)였고, 포스터 칼라 물감도 필요했다. 이건 시험장에서 시험을 치르기 위한 필수품이었다. 그 외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필수용품처럼 구매하는 것은 양면테이프(풀은 조금 불편하고 잘 떨어질 수 있다는 이유다. 풀로 붙였다가 붙인 것이 떨어지면 감점처리된다.), 종이 팔레트(시험 시간에 팔레트를 씻으러 가는 데에는 순번을 매겨 제약이 있다. 매 번 씻을 시간과 여유가 없는 편이라고 한다.), 촛불(조색을 한 후 물감을 말려야한다고 한다. 안 말리고 그냥 붙여버리면 위 종이와 붙을 수 있기 때문..), 붓 12자루(무려 12자루..! 조색 하는데 붓을 계속 빨기 힘드니, 여러개를 가져다 놓고 비슷한 색상에 지정 붓을 쓰는 편이라고 한다.), 물통(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써도 되긴 하지만 4구짜리가 편하다.), 고무매트(조색한 부분을 자를 때 칼로 네모나게 잘라야 한다. 가위를 쓰면 안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필수품처럼 챙겨가는 것을 확인했다.) 등등.. 챙겨야 할 것이 생각보다 많았다. (참고로 시험 시간에 포토샵 쓰는 문제도 있다. 포토샵도 기본적으로 다룰 줄 알아야하기에 프로그램도 구독해서 써봐야 한다.)


시험이 일년에 3번 밖에 없기에 한 번의 시험으로 합격해야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에, 양면테이프같은 장비는 풀로 대신할수는 있지만, '굳이 몇 천원 아끼려고 모험을 하기는 싫다'라는 생각이 더 먼저 드는게 사실이었다.

컬러리스트 시험을 보는데 새 상품으로 구매를 한다면 30~50만원은 필요한 것 같았다. (시험 응시비만 10만원 정도 된다.)

KS155A는 시험장에서 쓰이는 것보다 크기가 작아서 최소 B이상 사이즈를 써야한다. 위는 12년도 가격표 (37,000원)
2020.06월 가격표 (40,200원)
2022.05 가격표 (45,200원)


2022.08.05 가격표 (54,000원. 판매처는 한 곳 뿐이다. 쿠팡에서는 최소가가 61,200원이다. 계속 가격 올리는 중인가보다.

 (*2022.08.05.에 컬러칩 가격이 확 뛰고 있다. 2012년도에 37,000원에 컬러칩을 판매하던 곳에 가서 가격확인을 해보니 68,000원에 팔고 있었다.....)


위 나열된 물품은 시험에 필요한 도구였고, 시험 연습을 위해서는 도화지를 준비해야하고, 컬러칩도 여분이 필요하다. 연습을 많이 하는지, 포스터 칼라도 2세트씩 사는 사람이 꽤 있는 느낌이었다. 중고로 물건을 싸게 살 수 있을까 기대를 했지만 최근 컬러칩 몸 값이 말도 안되게 뛰어버린 탓일까, 거의 새것을 사는 것과 별반 다른 느낌이 아니었다. (10만원짜리를 8만원 즈음에 사는 느낌이다.)


컬러칩.. 나는 그놈이 탐났다.

다만 소모품이기에 새제품으로 살 엄두가 안났다. 뭔가 손해보는 느낌이랄까.

이전 시험 합격자 발표가 날 즈음 물품 판매 글이 왕왕 올라오는 편이었기에 그 타이밍을 노렸지만, 사실 발품팔며 중고 제품을 알아본 노력에 비해 아주 저렴하게 제품을 사지는 못했다.


내가 찾던 이상적인 놈을 찾았지만 50만원이 넘는다.

컬러칩이 탐났던 이유는 채도 구분이 어렵게 느껴져서였다.

(명도는 명도띠라는 것을 만들 수 있어서, 최소의 기준표는 만들 수 있다.)

노랑색이 채도가 높다고 하는데, 파랑은 노랑에 비해 채도가 낮은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채도의 의미는 '순 색상이 포함된 정도'이기에, 엄연히 따지자면 순수 노랑과 파랑의 채도는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컬러칩에서도 두 색상의 채도를 비교해주지는 않는다. (색상에 따른 채도와 명도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컬러칩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에, 제품을 검색해봤는데 분류를 내가 원하는대로 해주는지는 모르겠지만 전문가용으로 나온 것은 50만원이 훌쩍 넘어버렸다. 10만원 안팎으로 살 수 있는 제품에서는 색상을 제시해주고, 그 색에 어느 잉크가 어느 비율로 들어갔는지 정도를 표시해주었다. 하지만 이런 정보는 최근 구매했던 '색이름사전'이라는 책에 딸려온 포스터에도 적혀있었기에 굳이 구매하지 않았다.)

색깔이라는게, 그러니까 채도가 가장 높은 노랑색의 기준과 채도가 가장 높은 파랑의 기준이라는게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색의 절대적인 양보다 중요한 것은, 어느 장소에서, 어느 각도에서, 어느 재질에 올려진, 어느 빛 아래에서, 어느 색에 둘러싸여있는지 등 보는 시기와 관점에 따라 어차피 달라지기 때문인 것 같다. 물감도 제조사마다 이름이 같아도 색은 모두 다르다. 하물며 색상표라고 제시되어있는 색과 실제 물감을 짰을 때의 색도 다르다.


무엇보다, 색을 지각하기 위해서는 3가지 준비물이 필요하다. 사물과, 광원(빛), 그리고 눈이다.

눈. 누군가는 꼭 갖추고 싶어도 불가능할 수 있는 준비물.

반면에 준비를 굳이 하지 않아도 누구에게는 항상 구비 되어있는 준비물.

같은 조건 하에서 같은 것을 바라본다고 해도, 눈이라는 준비물이 사람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에 절대적인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같은 눈을 가지고 같은 것을 계속 바라보면 착시현상이 들기도 하고, 눈이 시려지기도 한다.)


(실제로 컬러칩을 사도 브랜드별로 색이 꽤 차이나는게 있었다. 시험 때에는 어차피 내가 사용한 색종이에 상응하는 색에 대한 답을 쓰면 돼서 상관이 없나보다.)

(심지어 흰-검 명도 톤도 다르다.)

이렇게 변수가 많은 색에 대해 왜 배우고 싶을까?

누군가는 조색은 요리사가 식재료에 대해 이해하는 것 처럼, 내 눈에 들어온 물질의 색, 명도, 채도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훈련이라고 했다. 이를 바탕으로 배색을 하는 것이 목표이지, 조색 자체가 목표는 아니라고 했다. 절대음감과 비슷하게 절대색감을 훈련한다는 느낌이다.

어느 요소가 강한지에 대해 알고 있으면, 배색을 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사람들은 그냥 '색'으로 구분하는 세상을, '색, 명도, 채도'로 나누어 (어떻게 보면 조금 더 단순해진다. 이 때 쓰는 색은 12가지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보고 이름을 붙이는 색은 지각할 수 있는 것만 1,000가지가 넘는다.) 보게 되는데, 이런 구분을 통해 배색을 이론으로 배울 수 있다. 감에 의존하는 배색이 아닌 것이다.


남편에게 절대음감도 비슷한 원리로 아티스트의 갈망인거냐고 물으니 굳이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절대 음감이 있으면 작업할 때 편하다나..

(사실 절대 색감이나, 절대 음감이나 모두 기계의 힘을 빌려서 측정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는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조금 더 신기한 얘기를 하자면, 시각, 청각, 미각 등이 이어져있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가령 어떤 색을 보았을 때 어떤 소리가 들린다거나, 어떤 음식을 먹었을 때 어떤 색이 떠오르는 등의 형태로 이어져있는 것이다. (우리도 어렸을 때 그랬을 텐데, 나누는 훈련을 하다보니까 둔해졌을 것이라고 한다.) 예술의 세계는 기이하고 신비롭다.

 

조색이라는 세계에 대해 알아보았으니 이제 조색하는 방법에 대해 얘기를 하겠다.

조색을 하는 방법은 세가지 정도로 나뉜다고 한다.

-양 옆 색 첨가(주로 색상 조절, 혹은 채도는 비교적 비슷하게 하고 명도만 조절하고 싶을 때 쓴다. 상황에 따라 다르니 실전이 중요하다. 왜냐면 노랑이나 연두같은 색을 첨가하면 채도가 확 올라갈 수 있는데, 그럴 때에는 색상환에서 조금 더 멀리있는 색(빨강 등)으로 조정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보색 첨가(채도 떨어트리고 싶을 때)

-흰색 혹은 검은색 첨가(명도를 확 조절하고 싶을때 쓴다. 단, 채도도 변하기는 해서, 어쩔때는 검정을 넣었을 때 밝은 느낌이 나기도 하는데 그건 채도가 올라가서이다. 반대로 흰색을 넣었을 때 어두운 느낌이 날 때도 잇는데 그건 채도가 떨어져서라고 한다. 색상의 세계는 뭐 하나 절대적인게 없다.)


그 외로, 색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은 수없이 많다.

예를 들어, 물이 많으면 어두워보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물감을 몇 개 사서 그 브랜드의 색상표와 비슷하게 조색을 해본 적이 있는데, 물감을 발랐을 때는 비슷해보였지만 물감이 마르니 내가 만든 색이 밝아지는 효과를 느꼈다.)

또, 목표색이 오른쪽에 있으면 좀 더 밝게 보인다는 신기한 사실. 왼쪽에 위치한 색은 좀 더 어두워보인다고 한다. 이런 것까지 고민하려니 너무 예민해지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치열한 공부(?) 끝에 다음날 출근하는 길이었다.

버스 손잡이가 보였다. 채도가 높은 노란 색이었다.

버스 문쪽에도 노란 고리가 달렸는데, 주황이 조금 더 섞인 노랑색이었다. 이건 채도가 조금 더 낮은건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창 밖을 보니 표지판이 보였다. 저것도 주황이 조금 더 섞인 노랑이구나.

노란 도보 블럭도 있었는데, 순수 노랑위에 까맣게 때가 탄, 그러니까 섞이지 않은 색의 조합을 보니 새롭게 느껴졌다. 조색을 할 때에는 계속 색을 섞었는데(그렇다면 명도가 낮은 노랑이 되었겠지), 도보블럭은 때가 타기만 할 뿐, 도보블럭 색 자체가 바뀌지는 않아서, 색 위에 색을 입히는 느낌이 색다르게 느껴졌다.


별 생각없이 살던 세상에 노랑이 이렇게나 많은 줄은 몰랐다. 색을 구분하며 보니 시작하니, 분석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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