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모카 Mar 11. 2024

없는 돈을 왜 빌려줬을까

지난 '기초수급자가 돈을 빌려줬다'편 이후, 남편은 내게 자꾸 묻는다.

'정말 궁금해서 묻는데, 왜 빌려준거야?'


사실 이 물음은 이전부터 계속 있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답을 해줬지만 남편에겐 납득이 안갔는지, 계속해서 물을 다름이었다.

남편은 돈을 빌려줄 당시의 내가, 투자를 하면 받을 기대 대가가 무엇이라고 생각했는지 궁금해하는 듯 했다. 사실 난 그런 것은 없었다. 내 행동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에 대해 생각을 했다기 보다는, 그냥 하고싶은대로 행동했던 것이었다.


'요즘 우리에게는 너무 많은 선택권이 있지. 특히 인터넷과 일상을 어놓을 수 없는 요즘은 더 그래. 우리는 최선을 선택해야한다는 강박이 있어. 나는 최선을 선택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 것일 뿐이야.'


이 대답이 남편에게도 시원한 대답이 되길 바라며 최선을 다해 설명을 해주었다.

나는 남편에게 멋있다는 말을 좀처럼 듣지 못하는데, 나에게 멋있다고 해주었다. 남편 역시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하기 어려워하는 상황인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아기를 거의 홀로 키우다시피하면서 시련이 많았다. 특히 남편에게 정신적으로 의지를 하고 싶었지만, 남편은 그 방법을 몰라했다. 그리고 나는 점점 독립적으로 변해갔다. 이와 함께 생각을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눈물도 많이 흘렸다. 내가 힘들 때 남편이 나에게 의지처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냥 떠올리기만해도 눈물이 주륵 흘렸다. 누군가에게 속시원히 말하고 싶었지만 타인앞에서는 덤덤하게 참고있던 감정이 터질까봐 그렇게 하지 못했다.


시련의 기간을 보내며, 나는 성장했다. 오히려 온전한 내 모습을 찾은 느낌이었다. 내 자신에 대해 확신이 더 생겼다. 이전에는 사람들이 하는 말에 휘둘렸다. 친구가 내 앞길에 걱정하는 모습을 보인다거나 너무 당연한 소리를 해주면 나는 겁을 먹기 일수였다. 그리고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상황은 변한 것이 없었지만, 내가 세상을 보는 방법은 변했다. 내가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그리고 그 가치를 알게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말도안된다고 생각할지라도, 내가 괜찮으면 괜찮은 것이었다. 너무 진부한 말이라서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는 와닿지 않을 수 있겠다. 사실 진리일수록 심플하고, 너무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와닿지 않는 경우가 꽤 있다. 본인이 직접 그 과정을 겪고 나야, '아 이게 그말이었구나!'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뿐이다.


남편과 나와의 관계도 똑같았다. 내가 남편에게 하는 말은 항상 똑같았다. (최근에 남편에게 실망하기 전까지) 나는 당신을 믿고, 의지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육아과정을 거치며 느끼던 외로움과 우울함은 남편에게는 비난의 핑계로 들릴 뿐이었다. 나는 오랜 생각을 거치며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오해라는 것을 알았다.


남자는 가정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책임감을 느낀다. 여기서 남자가 잘못한 것이 없는 경우, 이런 상황은 비난의 씨가 되어 불쌍한 남자를 괴롭게 할 뿐이었다. 반면 여자는 그냥 본인이 바로바로 느끼는 감정을 공유하고, 동감받고싶어하는 것이다. 사람은 항상 행복할 수 없다. 행복한 시간이 있고, 괴로운 시간이 있다. 상황을 개선하려고 하지 않더라도 감정선은 긍정으로 가기도, 부정으로 가기도 하며 삶을 윤택하게 만들 뿐이다. 비록 부정을 마주하는 것은 유쾌하지 않은 일이지만, 이 과정을 거치면 우리는 한단계 성장하기도 하고, 긍정으로 갈 수 있는 추진력을 얻기도 한다. 모든 상황에는 장점과 단점이 공존한다. 단지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우리에게 달린 것이었다.


남편이 내 생각을 이해한다면,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갈등이 사그라들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것을 모두 설명하고 얽혀있는 오해의 실타래를 풀기에,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남편에게 여러 말을 하기 보다는 ,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을 읽어보라고 했다.


이 책은 마법의 책과 같았다. 아직 다 읽지도 못했는데, 남편은 나에게 가지고 있던 오해를 풀었다. 또, 둘째 아기를 가지는 것에도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전에는 내가 둘째를 원하기 때문에 마지못해서 참여하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남편도 고된 육아과정이 다시 찾아오더라도 잘 버틸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 것이다.


상황은 바뀌지 않았지만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많이 달라졌다. 이렇게 어른이 되어간다고 하나보다.





이전 15화 생각없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