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두 개 신청했다

by 박모카

난 영프로페셔널 비자를 통해 캐나다에 왔다. 여기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지만, 일하기로 계약한 곳에서만 일해야 했다. 이곳은 지점이 하나였지만, 만약 여러개였더라도 처음에 계약했던 그 지점에만 묶여있을 수 있었다.


식당에서는 생각보다 돈을 많이 벌 수 없었다. 일을 많이 하고 싶어도, 어느정도 이상은 할 수 없었다. 내가 사인했던 계약서에 적혀있던 계약 시간은 주 40시간이었지만, 나에게 배정되는 가장 긴 시간은 주 32시간이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직원들은 일을 더 하고 싶어서 아우성이었고 서로간 경쟁을 했다. 내 몸 값을 올리는 것이 캐나다에서 살아남는 내 전략이었지만, 사장님은 나를 최저시급부터 시작시켰다. 테라스 홍보 및 이용 등 내가 잘하는 일을 하며 매출을 올리고, 결국 몸 값을 높이는 것을 상상했지만 사장님은 이것에 관심이 없었다. 내가 이곳이 오기 전에는 이런 부분 때문에 나를 고용하는 거라고 했지만 나는 주문을 받고 테이블을 치우는 서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사장님 입장에서는 시간을 가지고 신뢰를 쌓은 후, 좀 더 큰 일을 맡기려고 하시는 것 같았지만 나에게 시간은 많지 않았다.


특히, 사장님께 내가 화장실 청소를 할 때 독한 화학제품을 쓰는 것이 태아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걱정된다고 말씀드렸다. 되도록이면 오전에 근무를 하고 싶다고 요청을 했다. 하지만 사장님은 다음주 스케줄을 5일 근무 중 4일을 화장실 청소를 하는 시간대로 나를배정해놓았다. 여기서 오래 일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내가 일을 잘 하느냐?를 물었을 때 나는 일을 잘 하는 편이었다. 매일 할 수 있는 영역이 많아지는 나를 보며 동료들은 꽤 놀라워했다. 첫 날에 나를 보고, 2주 후에 나를 본 깐깐한 동료는 '혹독하게 트레이닝을 했나보네요'라며 내 코를 높여주었다. 내가 자신이 까먹은 업무를 커버쳐주자, '나는 은퇴할 때가 됐어'라며 씁쓸히 웃던 직원도 기억에 남는다. 사장님도 처음에는 주 20여시간만 배정해주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주 32시간까지 내 배정시간을 높였다. 내가 하루에 8시간 일하는 것은 너무 무리일 것 같아요라고 말을 하니 30시간으로 줄었다. 나중에 저 더 일하고 싶어요! 라고 외쳐도 떠나간 버스는 다시 오지 않았다. (하숙집 아주머니 말로는 일을 더 하고 싶어하는 다른 동료에게 시간을 더 많이 줄 것이라고 했다.) 즉, 나는 이곳에서 서빙 등 다른 일을 꽤 잘하는 사람이었으며 동료들로부터도 인정을 받고 있었다.


내가 가졌던 제일 큰 불만은 식사였다. 끼니도 해결하고 팁도 받으면서 돈을 모으려고 했던 내 계획은 틀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식사가 불가능했다. 나를 봤던 첫 날, 사장님은 여기서 직원 점심은 먹을 수 있다고 했지만 나중에는 '주방에서는 오물거리면 안돼요'라고 했다. 물론 홀에서도 먹지 말라고 했다. 식당에서 간단한 간식이 나오는 날도 있었지만 그것을 먹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내 비자를 오픈하기로 했다. 무슨 말이냐면, 이곳에만 묶여있지 않고 아무 곳에서나 일할 수 있는 비자로 바꾸기로 결심한 것이다.


관련 부서에 문의를 넣었다. 1. 내가 영프로페셔널 비자로 개인 사업자를 열어도 되는지? 2. 이 비자로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방안은 있는지?

일주일 정도 대답을 기다리다가, 새로이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하는 것도 방법이다 싶었다. 그래서 무작정 신청했다. 올해 워킹 홀리데이에 배정받을 수 있는 남은 인원은 26명 가량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에 별 기대없이 넣었다.


...

새로운 워킹 홀리데이 비자 신청을 하고 13일 후에 인비테이션이 왔다. 이게 뭐지? 싶었다. 그렇게 많은 인원이 워킹 홀리데이를 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고, 운에 기대며 기약없는 약속을 기다린다고 알고 있었는데. 내가 알고 있던 사실이 맞나 싶었다. 필요한 서류를 내고 비자 발급 비용을 내면 나는 다시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올해 5월 초, 워킹 홀리데이를 갈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훨씬 많을 때에도 에이전시는 내가 오픈 비자를 신청한다면 될 확률이 아주 낮기 때문에 굳이 영프로페셔널 비자로 진행한다고 했다. 당시 대행해주던 비자 진행이 늦어져서, 에이전시에 물어보니 인비테이션이 오기까지는 약 한 달이 걸렸다고 했다. 내가 겪었던 13일의 두 배가 걸렸다. 결국 나는 에이전시를 통해 돈도, 시간도, 기회도 날렸던 것이다. 가장 아까운 것은 기회였다. 생애에 워킹 홀리데이를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이 총 2번 주어지는데, 나는 그 한 번을 그냥 날려버렸던 것이다.


어쨋건 간에, 나는 워킹 홀리데이를 시작한지 보름만에 다시 다른 카테고리의 워킹 홀리데이를 신청했다. 학생비자와 워킹비자 두 가지를 가지고 있다는 케이스는 온라인에서 가끔 보였지만, 나처럼 워킹 비자를 두 개 가지고 있다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딱히 참고할만한 케이스가 있지는 않았지만 나는 꽤 용감했다. 처음에는 집 근처 중국인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쳐야겠다 생각을 하며 지원서를 넣었다. 일자리를 찾다보니 점점 내 전공을 살리고자하는 의지가 쎄졌고, 캐나다 회사 위주로 잡헌팅을 개시했다. 나는 어차피 오래 일을 하지 못할 텐데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오늘 식당은 꽤 바빴다. 사람이 많았다. 그 와중에, 혼자 온 할머니가 있었다. 그녀는 웃음기를 머금고 커피를 마셨다. 그녀의 표정에 계속 눈이 갔다. 꽤 이상해보일 정도로 계시는 내내 기분이 좋아보였기 때문이다.


나중에 계산을 하며, 그녀에게 '계속 웃는 모습이네요.'라고 말을 꺼냈다. 직원인 나에게 친절했지만 그 이상으로는 말을 아끼던 할머니께서 입을 열었다. '아까 전까지는 울고 있었어요.'


사실 그녀는 누군가 말을 걸어주길 바랬던 것 같았다. '나 말할 상대가 필요했어요!'라고 온 몸으로 외치는 것 같았다. 바쁜 식당에 해가 될까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그녀는 말을 이었다. '제 건강 관련해서 걱정이 되었어요.'


내가 임산부여서 그랬을까, 나도 식당에서 마음고생을 해서 그랬을까. 아까까지는 울고 있었다는 그녀의 말에 나도 같이 울컥했다. 할머니도 말하면서 눈물이 터지려고 했고, 나도 그랬다.

'나는 78살이에요. 기억력이 좋지 않아요. 지금은 병원에 들렸다가, 검진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카페에 가서 기분 전환을 하려고 왔어요.'

뭔가 위로의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입을 열 수 없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도 말하다가 눈물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녀에게 내 진심이 전해지기를 바랬다. 그녀는 자리를 떠나며 말했다. '나를 웃게 만들어줘서 고마워요.'


사실 그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식당의 누군가로부터 기분이 언짢아지는 일이 있어서 표정관리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 할머니 덕분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다시 손님들에게 친절하고 경쾌한 모습으로 서빙을 이어나갈 수 있을 자신이 생겼다. 메릴린 할머니. 내가 여기에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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