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있을 때, 스타벅스에서 일하려고 지원을 하니 학력이 좋아서 거절당했던 적이 있었다. 표현이 학력인거지, 사실은 나이가 어린 20대 친구들을 일꾼으로 만들고 싶은 회사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이런 맥락으로, 나는 어린 친구들과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는 나이에 왔다. 이번 캐나다 식당은 어떻게 보면 내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어린 친구들과 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기도 했다. (보통 나보다 7살씩은 어리다.) 그렇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여기서의 삶이 점차 적응이 되고 있으며 삶을 조금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라보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식당을 한 달 정도 다녀보니, 이제는 왠만한 업무가 익숙했고 지겨웠다. 똑같이 그릇을 치우고, 똑같이 숟가락을 닦고, 똑같이 바닥을 쓸고.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이 이런 건가 하다가, 최근에는 새로운 재미를 찾았다. 그것은 바로 손님과 대화하는 것이다. 물론 오랫동안 얘기를 할 수는 없지만, 리프레싱 되는 짧고 기분 좋은 대화는 여운을 남긴다. 대부분의 손님이 쾌활하게 응대해주기 때문에, 또 가끔씩 신기한 종류의 손님을 보는 맛으로 식당의 힘든 일을 버티고 있다. 신기한 종류의 손님이란, 식사 비용을 내지 않고 도망가려다 걸리는 손님이라던지, 이 식당에서 공연을 하고 싶다고 어필하는 손님을 말한다. 나에겐 모든 종류의 손님이 새롭기 때문에 흥미롭다. 저번에 나랑 얘기하다가 눈물을 보이셨던 메릴린 할머니를 다음 날 봤었는데, 내가 인사하자 '누구지?'하고 당황해하셨다. 어제 그 서버라고 말씀드리니 '아! 우리가 건강에 대한 대화를 나눴지!'라며 기억하긴 하셨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활기를 찾는 나를 보며, 식당 일도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보름에 한 번씩 정산받는 월급을 보면 그 생각이 싹 사라진다. 일주일에 다섯 번 식당에 나가고, 쉬는 날에는 아파서 집에서 골골대며 하루종일 잤다. 눈뜨면 일만 했고 집에 오면 피곤해서 쉬었기 때문에 최근에 입에 붙은 말이 '개처럼 일한다!'라는 말이다. 일했던 결실, 보름치를 정산받았는데, 943불이 찍혀있다. 다행이었다. 왜냐면 내 집세가 950불인데 집주인 아주머니께서 나는 불쌍하니 900불로 깎아주셨던 적이 있다. 이번에 정산받은 돈으로 월세를 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왜냐면 급여를 받던 날, 내 통장에는 3달러가 남지 않는 돈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먹는 것에 아끼지 않고 장을 많이 봐왔던 대가였다. 이번에 받은 월급으로 집세를 내고나면 50불 정도가 남는데, 앞으로 보름은 어떻게 살지라는 걱정이 잠시 스쳤다. 하지만 나는 일주일 단위로 팁을 받는다며 (사실 팁은 매일 받아야 한다. 또, 이만큼 적게 받는 것도 맞나 싶다.) 돈이 나올 곳이 있다고 나를 위로했다.
이런 상황은 나를 더 초조하게 했다. 식당에 계속 남아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정말 운이 좋게도, 새로 원서를 넣었던 워킹 홀리데이가 승인을 받았다. 최종 합격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일단 내가 다른 곳에서 일할 수 있는 제일 중요한 자격을 갖출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운명은 나를 어떻게든 살도록 이끌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할 수 있는 퍼밋이 어느정도 해결되고 나니, 다른 직장을 찾는 것이 필요했다. 시간은 가고 있는데 나를 받아줄만한 곳이 마땅히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사기업 위주로 검색을 하다가, 그 다음에는 공기업, 그 다음에는 학교 행정실 등을 알아보게 되었다. 안면이 없는 근처 대학원 교수님들에게도 이메일을 쫙 돌리며 나를 소개했다. 아직까지 결실은 없지만, 내가 아기를 낳을 때까지 식당에서 일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 필사적으로 다른 직장을 찾고 있다.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랬다. 나중에 먼 미래에 지금을 돌이켜 봤을 때, '내가 왜 그렇게 초조하게 살았을까', '내가 왜 그 때의 자유와 젊음을 즐기지 못했을까'라며 자책하지 않도록, 초조함을 덜어내는 연습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