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원은 어떻게 되었냐고요?

by 박모카

글을 쓰면서, 어느 부분부터 '우리나라에 돌아가는 것'에 대한 얘기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맞다. 나는 미국 대학원에 진학하지 못했다. 억단위의 장학금을 확보하고 나서 이게 무슨 황당한 말이냐 싶기도 하겠다. 나 역시 이렇게까지 생각치 못했던 일을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라, 꽤 오랫동안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과거로 돌아가보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겠다. 장학금을 신청할 당시, 나는 대학교 5곳을 적을 수 있었다. 리스트에 적어서 낸 학교에 다녀야지만 장학금을 받는 것이 조건이었다. 학교 선정에 있어서는 꽤 안일했다. 육아 때문에 정신없었다는 핑계를 대겠다. 5개 학교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는 대신, 단 한 곳만 노렸다. MIT였다. 1지망에 MIT를, 나머지 4개 대학은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대로 써냈다. MIT가 아니면 안간다는 생각이었다. 내 전공 출신의 유학파를 보면 모두 MIT를 다녔기에, 그 곳이 아니면 딱히 쓸 학교가 없다는 바보같은 착각을 했던 것이다. 어찌저찌, 이렇게 장학금 수혜 대상이 되었다.


몇 달이 흘렀다. 캐나다에 갔다. GRE도 치려고 한국에서부터 책을 가지고 왔지만 결국엔 단 하나의 문제도 풀지 않았다. GRE를 고려하지 않는 학과가 많아졌기에, 그런 학과에만 지원을 해야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점점 기운 것이었다. 원서 접수 기간이 되어, 어느 과에 원서를 넣을지 찾아보았다. 5개의 학교 중, 2곳만이 내가 가고 싶은 과가 있었다. 어차피 MIT 아니면 안 갈꺼라는 생각이 강했기에, 두 학교에만 지원서를 넣었다.


원서 접수 기간이 끝나고, 한 두달이 흘렀다. 결과가 언제 나오나 찾아보는데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알게 되었다. 내가 '석사과정'에 지원을 했던 것이다. 확보했던 장학금은 박사과정만 지원해주는 조건이 있었다. 나 역시 한국에서 석사를 했기에, 또 다시 석사과정을 밟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조금만 자세히 봤으면 박사과정에 잘 지원을 했을텐데, 너무 바보같은 실수를 했었다. 하지만 엎어진 물은 주워담을 수 없었다. 학교 입학은 yes or no 였기 때문에, 물의 일부를 조금이라도 양동이에 쓸어담는 옵션은 없었다. 결론적으로 보면, 나는 원서 자체를 넣지 않은 채 계속 합격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추천서를 써준 세 분의 교수님을 볼 면목이 없았다. 뭐라고 말씀 드려야 할지도 몰랐다. 이 분들은 아직까지도 내 어이없는 실수를 모르고 계실테다. 내년에 다시 지원을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장학금을 포기하고 맨땅에 헤딩으로 유학을 가고 싶다면 천년 만년 지원서를 넣어도 된다. (물론 매 번 추천서를 새로 받아야 한다. 아주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장학금을 받으려면 학교에 입학을 해야하는 기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나에게 기회는 단 한 번의 원서 접수 기간만 있었다. 즉, 장학금은 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번 대학원 사태를 보며, 나는 진정으로 학자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공부를 오래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렇게 행동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땅히 흥미를 가지고 어떤 방향으로 공부를 하고 싶은지, 어떤 교수님 밑에서 배우고 싶은지 당연히 알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귀찮은 숙제마냥 미뤄뒀다. 그래도 꾸역꾸역 해야하는 것을 하느라 아이엘츠 시험도 치고, 교수님들께 추천서도 받으며 판을 키우기만 했다. 보석이 묻혀있는 곳을 파야하는데, 엉뚱한 곳에서만 삽질하고 있던 것이다.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지 모르는 존재였다. 그래서 땅굴 지도를 그리고 상상하기 보다는, 무작정 삽질만 했다. 뜻이 없더라도 매일 뭔가를 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했고, 어찌저찌 길이 만들어지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콘크리트 바닥에서 땅을 파고있다는 착각만 한 채 발버둥치고 있었다. 참 바보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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