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에 있으면서, 버틴다는 생각이 강했다. 남편에 아기까지 여기로 데려왔기 때문에, 여기서 즐길 수 있는건 최대한 즐기고 가야겠다는 보상심리 때문에 역설적으로 캐나다에서 하루하루 꾸역꾸역 버티는 느낌이었다. 집이 좁아서 뭘 하던 조심스럽게 행동해야했고, 조금만 부주의하게 움직이면 물건이 우루루 떨어져서 우당탕 소리가 나기 일수였다. 한국에는 어린이집이 있어서 (사실 캐나다에서도 어린이집 같은 곳을 다니라고 하면 다닐 수는 있지만, 자동차로 이동해야하기 때문에 게을러진 것도 있다.) 부모가 쉬는 시간을 가질 수 있지만, 캐나다에서는 24시간 내내 아이들이랑 붙어있어야 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많이 지쳐갔다.
그러던 어느 날, 방 창문을 보면서 '처음에 봤을 때 엄청 예뻤는데..'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은 이것저것 물건이 많이 올라가있어서 이 방은 '잠만 자며 버티는 곳'이 되어버린 곳이었다. 생각난 김에 덩치 큰 가구도 치우고 창틀에 올라가 있던 물건도 싹 치웠다. 그랬더니 갑자기 이 공간이 쉴 수 있는 곳으로 변했다. 아기가 장난감을 올려놓긴 했지만 그 알록달록한 색감은 나름 멋스러웠다.
집의 공간 중, '머물고 싶은 공간'이 생기고 나니 삶에 만족도도 확 높아졌다. 평소에 쓰지도 않던 의자에 앉아서 멍때리기도 하고, 잠투정하는 신생아를 안아 달래는 공간으로 활용하니 이 공간이 사랑스러워졌다.
물건이 눈에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 이렇게 아름다움을 주는 지 처음 깨달았다. 호텔숙소가, 에어비앤비 숙소가 예뻐보이는 것은 빈 공간의 아름다움 때문이라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아침에 쏟아지는 햇살이 그렇게 싱그러운줄도 오랫동안 까먹고 있었다. 이 방이 머물만한 공간이 되자, 남편도 의자에 머물기 시작하더니 결국엔 온 가족이 오손도손 모여 노는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다. (참고로 창을 이렇게 크게 개방적으로 낸다면 우풍이 불어서, 겨울엔 모일만한 장소가 되지 않습니다!) 밤에는 내가 글을 쓰는 작업 공간으로 쓰였다.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다. 출산 후 시려오기 시작한 눈이 이제는 너무 아파서 일상생활을 위협했다. 몸이 불편하자, 아무리 예뻤던 공간도 나에게 지속적인 행복을 주지는 못했다. 매일 밤, 나는 또 다시 버틴다는 생각으로 밴쿠버의 밤을 꾸역 꾸역 보냈다. 한 껏 원래의 멋을 드러내기 시작한 방이지만 한국이 그리웠다. 귀국한다고 해도 또 새로운 불만이 찾아올텐데. 하루 하루를 충만히 살지 못하고 매 번 아쉬운점을 발견하는 내가 밉기도 했다.
그러던 중, 문득 나는 왜 이렇게 내 위주로 생각을 하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작가의 생각을 적은 에세이라곤 하지만, 생각의 중심은 모든게 '나', '나', '나'. 글에 온통 '나' 밖에 안 보이는 것 같았다. 이 넓은 지구 속에, 나 따위가 뭐라고 그렇게 티끌만한 손톱 밑의 가시를 신경썼나 싶었다. 이렇게 매일 조그마한 불편함을 느끼며 눈 앞의 문제만 해결하고 살다가는, 지나버린 1년이 그냥 황량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동시에, 이웃에게 베풀며 어우러져 살아가는 위대한 사람들이 스쳐지나갔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은데.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메꿔주고 싶은데. 히지만 어떤 부분에서 내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