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계속 살 생각은 없다. 문제는 언제 귀국하냐이다. 밴쿠버에 살면 꽤 비싼 대가를 치뤄야 하기 때문에, 조만간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반면, 캐나다에 어떻게 자리잡았는데 벌써 돌아가는게 아깝다는 모순적인 마음도 같이 있었다. 귀국 날짜는 정하지 못한 채, 이곳에서 어물쩡한 채로 머물고 있던 나를 발견했다.
나는 계속 한국을 마음에 품고 있으면서, 현실을 버티고 있었다. 사는 환경이 더 열악해진것이나, 가족의 서포트를 못 받고 지낸다는 점이 항상 불편했는데, 이 점을 그냥 참으며 바보같이 버티고 있던 것이었다. 변화를 줘야겠다는 생각은 아이로부터 시작했다. 아기가 어린이집에 더이상 못 다니니까, 답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던 와중, 커뮤니티 센터라는 곳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2세반은 잘 없긴 하지만, 찾아보면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 가는 수영, 그리고 카포예라(브라질의 태권도 같은 느낌인데, 나는 카포예라를 꽤 좋아한다. 어렸을 때 카포예라를 배우고 싶었는데 서울인데도 집에서 너무 먼 곳 딱 한 곳에서만 강의를 해주었기에 현실적으로 배우지 못했다.) 클래스에 등록했다. 알고보니 캐나다에서는 커뮤니티 센터가 청소년이 모이는 집합소 같은 곳이었다. 학교 끝나고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은 커뮤니티 센터에 와서 여러 운동을 하는 듯 했다.
그렇게 한 달 쯤 다니고 나니, 슬슬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왜 나를 위한 활동을 찾을 생각이 없었던거지?' 일단, 복잡한 집 먼저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이전에 살던 세입자가 놓고 간 가구가 집 크기에 비해 너무 컸던 것이 문제였다. 여태까지는 그냥 '버티면서' 지냈는데, 이제는 좀 더 휴식을 할 수 있는 공간처럼 집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 가구는 처분을 하기로 결심했다.
두 번째로 한 활동은, 커뮤니티 센터에서 들을만한 나를 위한 강좌도 찾아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운전을 할 수 없는 내가 뚜벅이로 걸어갈 수 있는 곳은 딱 한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매력적인 강의는 정말 많았다. 물레로 도자기 빚는 클래스, 여성 호신술, 소설 쓰기, 유모차와 함께하는 (막 아이낳은 산모를 위한) 피트니스 등 이색적인 활동이 많았다. 요가 같은 평범한 '이름의' 액티비티도 있었는데, 이런 강좌는 선생님을 잘 만나면 우리나라에서보다 훨씬 퀄리티 있는 강의를 들을 수 있음을 알았다. 이전에 어린이집 및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을 위한 요가 클래스를 맛봤던 경험이 있는데, 인도출신의 선생님은 정말 예술 그 자체였다. 요가를 이렇게 가르칠 수 있나 감탄스러웠다.
이렇게 우리 가족은 하루하루 캐나다 삶에 더, 더욱 더 적응을 하고 있다. 이곳 생활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떠나기가 어려울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여태 불편을 참으며 지냈었다. 여기에 머무는 것을 직접 선택했으면서 버티면서 살다니, 참 바보같다.
이곳에 살면서 느끼는 것은, 아기가 어릴 때 이곳에 살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것이다. 특히 따뜻한 겨울과 시원한 여름 날씨 덕분에 아이들이랑 야외 활동을 하기 좋은 점이 제일 좋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이에게 너그러운 태도로 기다려주고, 말 걸어주는 어른들에게 더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부족하게 주는 사랑과 관심을 세상이 대신 채워주는 느낌이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불편한 점은, 언어다. 딸은 아직 한국어도 잘 못하는데 (언어 구사 능력이 느린 편이다.), 다른 사람이 종종 말을 걸 때면 아기가 영어를 잘 알아들었으면 좋겠다는 웃긴 생각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