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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롱 Jul 01. 2023

싱가포르 게스트가 머무는 동안 비가 샜다!

게스트룸에 이게 무슨 난리람.

이번에 싱가포르에서 온 게스트는 무려 9박 10일 동안 나와 함께 지냈다. 이미 한국에서 한 달 정도 어학원을 다닌 경험이 있던 그녀는 우리 집에서 로컬처럼 지내보고 싶어 여행을 왔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가 온 뒤로 곧 장마가 시작된다는 일기 예보가 있었고 체크인 이후 나흘 째 되던 날부터는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흐리고 습한 날이 이어지던 어느 날, 호우주의보 알림이 떴고 무섭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장마를 별로 체감하지 못했다. 지하철을 타고 회사 빌딩으로 들어와 빌딩 안에서 점심을 먹기 때문에 딱히 밖에 나갈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우주의보가 내린 그 날은 달랐다. 퇴근 후 집에 들어가 보니 답답할 정도의 더위가 습기와 함께 집안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습도계는 적정 수준을 넘어 '너무 습함'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게스트를 불렀지만 그녀는 집에 없었다. 집이 너무 습했기 때문에 당장에라도 게스트룸을 열어 제습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게스트에게 미리 알림 메시지를 넣어놓고 방 문을 열었는데 바닥에 타월 두 장이 입구부터 창문까지 쫙 깔려있었다. 두 장의 타월은 흠뻑 젖은 상태였다.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게스트룸을 살펴보니 어딘가에서부터 스며든 빗물이 방바닥 장판까지 이어진 것 같았다. 그게 어딘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건 비가 새고 있다는 거였다. 그리고 게스트는 비를 막기 위해 수건 두 장을 바닥에 깔아놓은 것처럼 보였다.


아, 어쩌란 말인가...


"악! 어떻게 해!" 나는 혼자 호들갑을 떨면서 마른걸레를 가져와 바닥을 닦고 급하게 건조기와 제습기를 돌렸다. 그리고 황급히 다시 게스트에게 메시지를 넣었다.


"네가 깔아 둔 바닥의 타월을 봤어. 미안해! 집이 오래돼서 비가 샜나 봐." 게스트가 겪었을 불편함 때문에 심히 걱정이 되었다. 곧, 게스트에게 답이 왔다.


"응, 놀라기는 했어.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까 뭔가 축축하고 젖어있는 느낌이 들었거든. 이게 무슨 소리지?라고 생각했는데 바닥에서 물이 고여있더라. 나한테는 새로운 경험이었어. 괜찮아."


다행히 게스트는 내게 괜찮다고 거듭 말하면서 오히려 나를 진정시켰다. 그리고서는 "건물에서 비가 새는 거겠지?"라고 덧붙였다.


나는 황급히 청소를 하고 남아있는 바닥의 물을 없애기 위해 새로운 수건 2개를 가져와 바닥에 다시 깔았다. 그러자 곧 게스트가 집으로 돌아왔다.


"오! 미안해. 이런 일이 생길 줄 몰랐어." 게스트가 느낄 불편함, 어쩌면 그 이상의 불만을 생각하니 나는 살짝 긴장이 되었다. 혹시라도 그녀의 물품이 젖지는 않았을까 신경 쓰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우려와 달리, 그녀는 이게 무슨 대수라는 냥 괜찮다고 하며 오히려 방을 건조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녀는 태연했다. 마치 이런 일은 언제라도 생길 수 있다는 것처럼.  


나도 유연한 여행자가 되어야겠다


나는 게스트가 공항으로 떠난 뒤, 아쉽고 고마운 마음에 마지막 인사를 메시지로 한번 더 남겼다. 집을 깨끗하게 사용해 줘서 고마웠고 또 비가 샌 상황에 대해 이해를 해줘서 고맙다고.

그러자 게스트는 내게 곧 답장을 해줬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젖어있고 물컹한 바닥 때문에 놀라긴 했어. 아무래도 장마철에 다른 게스트들을 위해서라도 바닥 닦는 타월을 주면 좋을 것 같아. 그럼에도 나는 너네 집에서 너무 원더풀 한 시간을 보냈어. 행운을 빌어!"


그러면서 그녀는 타월 얘기를 포함해 다른 게스트에게 미리 알려주면 좋을 것들과 우리 집이 어필해야 할 장점에 대해 몇 가지를 더 써줬다. 그녀가 남겨준 진심 어린 메시지를 받고 왠지 뭉클했다. 우리 집에 머무를 때 좀 더 잘해줄걸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쉬움이 남았다.


사실 9박 10일이라는 예약을 받았을 때, 너무 긴 기간이라 마음속 부담이 있었다. 게스트가 무엇을 잘못해서 손해를 보는 상황이 생길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손해로 치자면 게스트 쪽이 더 컸다. 그럼에도 그녀는 '새로운 경험이었어'라고 말하며 즐거움을 찾고 나를 위해 좋은 조언까지 해줬다.


자신이 어떤 태도로 일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 보일 수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상황을 받아들이고 해결하는데 도움을 준 게스트에게 감사하다. 나중에 나도 여행을 하면서 좀 더 너그럽고 여유있는 마음으로 상황을 대처해 나가야겠다.


싱가포르 게스트, 행운을 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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