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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롱 Jun 07. 2023

인도네시아 게스트는 왜 옷만 20벌을 싸왔나

지난 겨울, 첫 외국인이자 장기숙박 게스트와의 추억


첫 장기숙박, 

자카르타 게스트 


11월의 어느 추운 날, 아니샤가 한국 여행을 하기 위해 우리집에 머물렀다. 처음으로 외국인 게스트를 맞아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나름대로 영어 멘트를 준비하며 그녀가 체크인 하기만을 기다렸다.


나는 아니샤와 첫 인사를 하면서 동시에 놀랐다. 그녀는 추운 겨울 날, 얇은 여름 옷 몇 벌을 끼어입고 머리에는 히잡은 두른 차림이었기 때문이다. 히잡이 낯설어서라기 보다는 영하 5도에 가까운 추운날에 온전히 여름옷만 입고 나타난 것이 당황스러워서였다.


아니샤는 한껏 웃으며 큰 캐리어를 들고 집에 올라왔다. 그리고 방에 들어오자마자 히잡을 벗었다. 그제서야 그녀의 검정색 머리칼이 드러났다. 이어 겉옷으로 보이는 옷들을 겹겹이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한 다섯 벌 정도는 족히 벗었던 것 같다.


"안 추워?" 내가 걱정스레 묻자, 아니샤는 너무나 즐거운 표정으로 "추워, 그치만 괜찮아." 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마치 겨울이 있는 나라에 온 것이 너무 즐겁다는 듯이 해맑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어 그녀는 짐가방을 열었다. 나는 아니샤의 허리춤까지 오는, 마치 '세미 이민가방'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도 같은 캐리어에 대체 뭐가 들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몇 분 뒤 그 의문이 풀렸다. 그녀의 방 안 한가득 족히 20벌은 되어 보이는 여름 옷을 널어놓았다.



그녀는 여름 옷을 잔뜩 끼어입고 

대체 어디를 갔는가


그녀는 이렇게 추운 날에 대체 어디를 가려고 한국에 왔을까? 3일쨰 되는 날, 퇴근 후 집에 도착했을 때 아니샤가 먼저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상기된 얼굴로 노트북으로 무엇인가를 서치하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인사를 나누며 한국 여행이 어떤지를 물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어디를 가고 무엇을 즐기는지 궁금했다.


"나 오늘 성수를 갔어." 아니샤가 말했다.


"엄청 핫한 곳을 다녀왔네? 거기 요즘 한국 사람들도 많이 가."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그녀가 씽긋 웃어보이더니 이어 말했다.


"거기에서 카페만 3군데는 갔어.그리고 광야도 갔어."


광야? 그게 뭐지? 나는 난데없는 단어에 의아했다. 그리고 나중에야 대화를 통해 그녀가 말하는 것이 SM엔터테인먼트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 때야 나는 아니샤가 한국에 온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네가 제일 좋아하는 케이팝 스타가 누군데?" 나의 질문에 아니샤는 신난듯이 "엑소!"라고 외쳤다. 그녀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자신이 엑소의 팬이었으며 그 이외에도 한국의 알만한 케이팝 스타들의 이름을 대면서 즐거워했다. 그러면서 내게 어떤 가수를 좋아하는지 물었다.


"어..." 나는 뜸을 들였다. 왜냐면 나는 케이팝 가수에 대해 이제는 잘 알지 못하고 크게 관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니샤의 반짝거리는 눈동자를 보고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아서 'BTS'라고 답해버렸다. 그러자 아니샤가 한 손을 내저으며 "그건 너무 당연하지." 라고 말했다.


한참 오빠들 얘기를 마친 아니샤는 다음 날 엑소의 쇼케이스 때문에 집에 늦게 돌아올 것 같은데 그게 괜찮은지 물었다. 나는 웃으면서 괜찮다고, 놀다가 천천히 들어와도 좋다고 답했다.



눈이 온 그 날, 

드디어 패딩을 산 아니샤


아니샤가 한국에 온 지 닷새가 지난 날이면서 동시에 엑소의 쇼케이스가 열리던 날, 그 즈음 눈이 엄청 내렸다. 회사에서 떨어지는 함박눈을 보며 나는 그녀가 너무 춥지 않을까, 또 쇼케이스까지 찾아가는게 괜찮을까 걱정되었다. 아무리 20개 여름옷을 껴입는다고 하지만 눈오는 강추위에 버틸 수 있을까 싶었다.


우리 집에 인도네시아 게스트가 온 다는 것을 알고 있던 동료 몇 명이 내 걱정을 듣고는 그런 생각 안해도 될 것 같다며 안심을 시켰다.


동료의 말로, 예전에 자카르타에서 온 개발자와 함께 일했는데 그 나라에는 겨울이 없어서 날씨가 좀만 추워져도 엄청 좋아했다는 거였다. 또 눈 오는 것을 엄청 신기해하며 함박눈이 올 때마다 밖에 나가서 사진을 찍으며 좋아했다고 해줬다. 그러면서 그 개발자의 인스타계정을 보여줬는데 정말이지 거기에는 눈 내리는 동영상 포스팅 몇 개가 올라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니샤도 한국의 겨울을 즐기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다시 일에 집중했다.


그 날 밤, 아니샤는 정말 자정 가까운 시각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와 문 여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아니샤를 마중했다. 그런데 그녀가 패딩을 입고 있었다.


"아니샤, 이거 샀어?"


"너무 추워, 샀어."


그녀는 까만색 패딩 안에 다 끼어 입은 여름 옷을 쇼핑백에 넣고 무엇인지 모를, 엑소와 관련된 물건들은 사서 돌아왔다. 내가 어땠느냐고 묻자 아니샤는 너무 멋졌다면서 좋아했다. 그러면서 심지어 오늘 쇼케이스 가기 전에 동방신기를 봤다면서 이런 우연이 있었다는 것을 너무 신기하고 즐겁게 여기고 있었다.


자카르타에서 온 아니샤는 그렇게 한국의 겨울과 엑소 쇼케이스를 충분히 즐기다가 돌아갔다. 나는 추운 겨울날을 내내 참다가 결국 마지막 날 패딩을 산 것이 내내 아쉬워 아니샤에게 한국의 추운 겨울을 또 느끼러 놀러오라고 얘기했다. 그러자 그녀가 웃었다.


계단 아래로 패딩과 여름 옷 20벌을 담은 캐리어가 콩콩 거리며 지나갔다. 그렇게 나의 첫 외국인이자 장기 숙박 게스트가 떠나고, 나는 아니샤와 같은 밝은 사람이라면 장기 숙박 게스트를 받아봐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난 지금, 아니샤가 가고 또 다시 장기 숙박 게스트가 문을 두드렸다.  

이번에는 싱가포르 게스트와 8박 9일. 앞으로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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