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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롱 May 27. 2023

왜 일본 사람들은 키패드로 된 현관문을 못 열까?

스미마셍 부르는 셀프 체크인 

코로나 이후 다시 해외여행이 활발해지면서 가장 가까운 아시아 게스트들이 많이 왔다. 특히 일본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잦아 짧은 기간 동안 일본 게스트만 세 명이 다녀갔다. 


나는 회사를 다니기 때문에 게스트 체크인을 기다리며 집에 대기할 수 없다. 그래서 게스트가 직접 체크인하는 방식을 선호하며 그와 관련해 미리 체크인 정보를 주고 가능 여부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그 때마다 일본 게스트들은 모두 셀프 체크인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체크인을 위해 키패드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어떻게 문을 열면 되는지를 메시지로 보내줘도 세 명의 일본인 게스트들 하나같이 키패드로 체크인하는 방식을 어려워했다.



스미마셍,

그들이 체크인을 못했던 순간


첫 번째 게스트는 셀프 체크인을 할 수 있다고 대답했지만 막상 우리 집 문 앞에 와서는 몇 차례 메시지를 보내왔다. 게스트는 영어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문이 안 열린다는 신호를 사진으로 전달해 왔는데 그 사진만 봐도 게스트가 굉장히 애를 먹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게스트는 키패드 사진을 올리면서 ‘작동이 되지 않아요. 언제 돌아오시나요?‘라는 메시지를 계속 보내왔다. 사진 속에는 내가 알려준 비밀번호가 아닌 다 다른 번호가 찍혀 있었다. 그리고 연이어 '키패드 불이 켜졌다가 다시 꺼졌어요. 다시 켜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를 물었다. 


첫 번째 일본인 게스트와의 체크인 문자
여전히 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던 첫번째 일본인 게스트


결국 메시지만으로 소통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나는 지인과의 저녁 식사 중간에 집으로 향했다. 내가 올 때까지 동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던 게스트는 나를 만났을 때 반가워하면서도 매우 의기소침해진 상태였다.


나는 게스트가 어떻게 키패드를 작동시켰는지 궁금한 마음에 먼저 다시 시도해 보라고 했다. 그러자 게스트는 나의 생각과는 굉장히 다른 패턴으로 키패드를 만지고 있었다.


우리 집 현관문은 키패드에 손바닥을 대야 불이 들어오는데 게스트는 손바닥이 아닌 손가락으로 키패드를 작동시키려 했다. 작동이 잘 되지 않자 손가락으로 몇 번을 터치했다. 그래서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이 들어왔고 그때 비밀번호를 체크한 게스트는 비밀번호를 읽는데 집중하느라 불빛이 들어온 그 순간을 번번이 놓쳤다.


반복되는 시도 끝에 겨우 비밀번호를 눌렀어도 게스트는 비밀번호 이후에 ’ 별표시‘를 누르는 것을 잊었다. 별표를 눌러야 하는데 괜히 키패드 하단에 로고와 함께 장식되어 있는 동그라미 기호를 눌렀다. 나한테는 그게 버튼처럼 보이진 않았는데 게스트의 눈에는 마치 문을 열어줄 버튼처럼 보였나 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게스트는 첫 번째 게스트보다는 나았지만 여전히 키패드에서 애를 먹었다. 키패드가 작동해  위에 숫자가 뜨면 그때 바로 비밀번호를 눌러야 하는데 그들은 그 메커니즘 자체를 혼란스러워했다. 일단 숫자에서 불이 들어오면 그때 당황하여 숫자를 누르는 순간을 놓치거나 잘못 눌러 체크인에 어려움을 겪었다.



키패드 대신

열쇠가 편하지 않겠냐는 그 말


얼마 전 일본에 다녀온 회사 동료에게 물었다.


"혹시 일본에서는 문을 여닿는 것을 어떻게 해?"


나의 질문에 동료가 대답했다.


"열쇠로 열어."


하지만 매번 체크인할 때마다 게스트를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나는 또다시 동료에게 물었다.


"셀프 체크인해 본 적 있어?"


그러자 동료가 아주 신박한 대답을 내놓았다.


"응. 일단 키패드로 비밀번호를 누르면 그 안에 열쇠가 있고, 그 열쇠를 가지고 집 문을 여는 방식이야."


세상에나 만상에나. 키패드 체크인과 관련한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답변이었다. 물론 모든 일본의 숙박시설이 동료의 말과 동일한 체크인 방식을 따르진 않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패드가 열쇠를 찾는 용도로만 활용된다는 것이 놀라운 지점이었다.

나의 반응에 동료는 넌지시 말했다.


"셀프 체크인 방식을... 열쇠로 해보는 건 어때?"


열쇠라. 그러고 보니 열쇠를 만진 적이 언제인가? 기억을 더듬어 보면 열쇠가 내 일상에서 사라진 지가 참 오래되었다. 지금은 '열쇠'라는 단어가 골동품을 부르는 말처럼 느껴질 정도다.


만약 열쇠를 만든다고 해도 우리 집 키패드는 열쇠를 넣어둘 공간이 있는 그런 키패드가 아니다. 그렇다고 셀프 체크인을 위해 어디 시골집에서 하는 방식처럼 화분 속에 숨겨 놓는다거나 근처 슈퍼에 맡겨둔다거나 하는 방식도 썩 내키지가 않았다.



일본 게스트들의 셀프 체크인을 위해 

준비한 것


첫 번째는 비밀번호를 기억하기 쉽게 바꾼 것이다.

나는 키패드 체크인에서 가장 어려워했던 '숫자버튼 누르기'의 과정을 좀 더 단출하게 만들어 주기로 했다. 기존에는 8자로 된 비밀번호를 만들어 전달했다. 사실 그 8자도 어려운 숫자 조합은 아니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일본 게스트들의 쉬운 체크인을 위해 8자의 숫자를 4자로 과감하게 줄여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4가지 숫자 조합을 게스트들의 전화번호 뒷자리로 만들어 전달했다.


두 번째는, '키패드로 된 문을 쉽게 열어볼까요?'라는 주제의 동영상을 만든 것이다.  

문 앞에서 키패드 자체 셀프 체크인을 하는 영상을 만들며 음성도 함께 녹음했다.

It's keypad. Touch the your palm, then the light is light up (이게 키패드예요, 손바닥을 대면, 불이 들어옵니다.) 이런 멘트를 하며 10초 안에 문 여닿는 것을 보여줬다.



그 이후, 일본 게스트들은 

체크인을 잘했는가?


가장 최근에 온 일본 게스트에게 동영상과 짧은 비밀번호를 전달했으나 가설 검증이 잘 이뤄졌다고 볼 수 없는 것이 그 게스트는 한국 친구와 함께 우리 집에 체크인을 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 친구가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일본 게스트는 동영상을 보며 너무 이해가 잘된다고 알려왔지만 아직은 셀프 체크인 실험의 성공여부를 판단할 수 없는 일. 그렇기에 여전히 일본 게스트들의 셀프 체크인과 관련된 검증은 완료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체크인에 신경을 쓰면서 나는 다시금 사장님 마인드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집에 방문해 주는 게스트들을 배려하겠다는 이 마음가짐, 점점 더 발전하는 공유 숙박의 호스트가 되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우리 집에 와주는 일본 게스트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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