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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롱 May 26. 2023

호스트의 문단속

우리집 비밀번호 잊어버린 사연

게스트 하우스 6개월 차, 외국 게스트들이 체크인을 어려워하길래 나는 게스트들의 핸드폰 번호 뒷자리를 활용해 비밀번호를 바꿔왔다. 그 이후로 확실히 쉽게 체크인을 했다. 늘 키패드 방식으로 문을 여닿는 것을 어려워하던 일본인 게스트들까지. 게스트에 맞춰 비밀번호를 바꾼다는 것이 피곤한 일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을 배려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에 이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잠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던 사이, 심지어 핸드폰조차 들고 있지 않은 파자마 차림의 나는 문 앞에서 눈앞이 컴컴했다. 순간적으로 어제 바꿔둔 비밀번호가 기억이 안 났다. 이렇게까지 싶을 정도로 숫자가 하나도 기억나질 않았다.


‘오늘 오기로 한 게스트 핸드폰 번호 뒷자리였는데.... 그래서 그게 뭐였지?’


나는 우리 집 키패드 앞에 서서 추측이 가능한 모든 조합을 생각해 몇 번을 시도했다. 그러나 계속 틀린 번호 때문에 오히려 문이 잠기고 말았다.


침착해야 해... 침착해야 해.. 속으로 되뇌었지만 이미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어떻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독일에서 게스트가 도착할 시간이었고 집안은 아직 청소가 덜 된 상태이며 나는 핸드폰이 없었다. 내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가기 전 틀어놓은 유튜브의 동영상 속 웃는 소리가 문 밖까지 빠져나왔다.


머릿속에 생각났던 첫 번째 방법은 철물점에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키패드를 교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게스트가 도착하기 전까지 키패드를 다시 떼었다가 붙이고 할 여유가 될까. 나는 머리를 박박 긁었다. 게다가 수중에는 돈이 하나도 없었다. 만약 그 방법을 쓴다고 했을 때, 업자 부른 것까지 치면 족히 10만 원 이상은 깨질 것이 뻔했다.


급 생각났던 두 번째 방법, 내가 게스트에게 보낸 메시지를 살펴보는 것이었다.

다행히 오늘 아침에 게스트에게 체크인 정보를 보내며 비밀번호를 알려줬다. 그 메시지를 내가 볼 수 있다면 비밀번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키패드를 교체하는 것보다야 더 심플한 방법일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나한테는 핸드폰이 없었다. 또, 이중 보안장치 때문에 핸드폰으로 인증을 한 번 더 해야 한다면?


나는 집 앞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서성거렸다. 나는 두 번째 방법을 시도하다가 안 되면 첫 번째 방법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일단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서 인터넷을 써야 하는데,  순간 내 옷차림을 돌아보게 되었다. 상의는 딱 달라붙는 요가복을 입고 하의로는 얼마 전 태국에서 입고 다닌 코끼리 몸빼바지를 입고 있었다. 집에서는 괜찮다지만 이런 차림으로 밖에 나가려니... 순간적인 창피함이 몰려왔다. 하지만, 정말 다행인 것은 노브라는 아니었다. 정말 정말 다행이었다.


PC방을 갈까, 철물점을 갈까 하다가 예전에 집을 구할 때 갔던 부동산이 생각났다. 어쨌든 한번 인연은 잊고 부동산은 인터넷이 될 테니까. 그래서 나는 부랴부랴 2년 넘게 방문한 적이 없는 부동산으로 향했다.


당연히 부동산 주인아저씨는 나를 몰라봤고... 나의 ”집에 못 들어갔어요. “라는 말에 당황하신 것 같아 보였다. 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함께 계신 다른 업자 분도 당황하시며 날더러 비밀번호를 쉽게 만들라고 해주셨다.


부동산 주인아저씨의 도움으로 게스트에게 보낸 메시지에 접속해 나는 어젯밤 변경한 비밀번호가 무엇인지 찾았다. 다행히 이중 보안은 걸리지 않아 있었다. 어휴. 천만다행이었다. 메모에 적어둔 진짜 비밀번호는 아까 세 번 넘게 눌렀던 비밀번호와는 정말 다른... 세상 처음 보는 것 같은 비밀번호였다.


나는 집에 돌아와 다시 집 정리를 하며 한숨을 돌렸다.

게스트 체크인 쉽게 해 주려다가 내가 집에 못 들어가겠구나...

 정신을 번쩍 차리고 핸드폰을 쥐고 다니든지 아니면 비밀번호를 꼭 외우든지 둘 중 하나는 반드시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오늘은 독일에서 게스트가 온다. 이 게스트의 핸드폰 번호 뒷자리는 절대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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