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말한 것처럼 브랜딩은 무엇을 정리해 나가는 과정이다. 내가 겪은 조직에서는 더욱 그랬다. 본격적으로 브랜딩을 하기 이전, 대표님과 브랜딩에 대한 의견을 나누면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아무리 내가 설명을 해도, 직원들이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이런저런 방법을 써봐도 그때뿐이고… 우리 회사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과연 몇몇이나 알고 있을까요?”
대표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대로 여러 방법을 동원했다. 회의 때,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창업주의 영상을 보여주거나 직원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담은 서적을 선물하거나 혹은 자신의 관점과 비슷한 아티클을 단체 채팅방에 공유하는 등의 활동이었다.
그러나 그런 활동이 많아질수록 직원들은 수용보다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왜 자꾸 저런 것들을 공유하는 거지? 우리에게 뭘 원하는 거야?‘라는 의문만이 쌓여갔다.
그렇게 오랜 기간의 동상이몽이 이어졌다. 왜 이런 간극이 일어났을까를 생각하며 지내던 중, 길어지는 회의를 보며 알게 된 것이 있었다.
우리는 늘 회의에서 결론을 내지 못했다. 회의 시간이 길고 그 횟수가 많아서 혹은 회의에 참석하는 인원이 많아서 그런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초반에는 회의를 줄이고 최대한 비대면으로 하는 방향으로 조정했지만 그럼에도 같은 문제가 반복되었다.
의견은 많지만 결론이 없는 회의를 몇 번 거듭한 후, 대표와 직원들의 동상이몽의 원인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먼저, 회사의 비전을 명확히 설명한 자료가 없었고 회사의 주요 서비스와 제품 그 밖의 주요한 사항에 대한 명칭과 표기법이 모두 달랐다.
초기에 회사들은 적은 인력으로 실무를 진행하기 바쁘다. 그래서 초기에는 비전이나 미션을 말하는 것이 당장은 급한 일은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내가 다니는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회사가 갈 방향은 대표의 머릿속에서만 있었고 그 얘기를 들을 기회도 많지 않았다. 회사의 비전을 다룬 문서라고 부를 말한 것도 없었고 그나마 있는 자료들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런 이유로, 회의를 할 때 대표와 실무진의 생각의 차이가 컸던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실무진은 당장 마감 기한 내에 해야 할 일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의견을 냈다. 하지만 대표는 자신의 비전을 기준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할 일을 모두 펼쳐놓고 그것들의 선후관계를 살피며 우선순위를 정하고자 했다.
대표는 머릿속에 있는 그림을 직원들에게 회의 내내 설명하느라 시간을 많이 썼고, 직원들은 당장 실무와는 상관없는, 먼 미래의 일들에 집중하느라 힘들어했다.
회의 시간이 세 시간을 넘으면 누군가 나서서 ‘그래서 그걸 지금 하자는 거예요? 아니면 나중에 하자는 거예요?’라고 반문했다. 실무를 맡은 직원들은 회의만 들어가면 결론은커녕, 할 일이 더 늘어나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또 다른 문제는 같은 내용을 두고도 표현을 달리해 오해가 생겼다는 점이었다. 같은 사안을 두고 서로 부르는 명칭과 표기법이 달랐다.
한참 각자 얘기를 하다가 돌아보면 각자의 주장이 결국 같은 내용임을 깨닫고 허탈해하는 경우도 많았다. 게다가 제품을 부르는 명칭도 팀마다 달랐다. 어떤 팀에서는 자신들끼리만 아는 줄임말로 주요 내용을 설명하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동상이몽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우리가 사소하게 여겼던 모든 명칭을 똑같이 맞추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명칭과 표기법이 달라질 때마다 전사적으로 이를 공유하고 있다.
브랜딩을 시작할 때 가장 많이 소통하고 밀접하게 일해야 하는 대상은 다름 아닌 바로 대표님이다. 특히 스타트업에서는 대표님의 뜻으로 회사가 시작되기 때문에 대표님의 의견이 브랜드 코어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회사 초기에 대표님의 비전에 대해 직원들이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브랜딩을 위해 대표님과 인터뷰를 하며 이것저것을 물었다.
“대표님, 우리 브랜드 코어를 정해야 해요. 비전, 미션, 핵심가치요.”
내가 맨 처음 이 말을 했을 때, 대표님은 고개는 끄덕였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익숙하고 중요한 개념이지만 막상 그것을 정의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 “당신의 비전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한다면 쉽게 대답할 수 있을까?
나는 쉽게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비전에 대해 깊이 경험해 본 경험이 부족하기도 하고, ‘비전’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비전 찾기도 그랬다. 대표님과 브랜드 코어를 정하기로 한 날 이후, 우리는 먼저 ‘비전’이나 ‘미션’, ‘핵심가치’의 정확한 뜻을 정의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브랜딩 실무자라면 대표님이나 팀원들과 이런 대화를 나눈 경험이 있을 것이다. 만약 없다면 앞으로 100% 생길 것임을 확신한다.
브랜딩 코어 작업을 시작하기 전, 대표님은 나에게 물었다.
“비전이라는 것이 도대체 뭘 말하는 거예요?”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비전은 회사가 나아갈 방향이에요.”
그러자 대표님의 반문이 돌아왔다.
“근데 그게 미션이랑 뭐가 달라요?”
“그러니까… 비전은 방향이고 미션도 방향인데… 비전은 더 큰 범위고 미션은 그보다 작은 범위이고.”
이 정도 대답이면 충분할 것 같았는데 한번 더 질문이 들어왔다.
“핵심 가치는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비전, 미션, 핵심가치를 정할 때마다 그 개념에 대해서 정확히 알려달라는 요구가 계속됐다.
대화를 계속 반복하다가 제대로 대답을 못하면 대표님은 브랜딩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고 생각하고 그 효과를 의심하게 된다. 또한 브랜드 실무자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게 된다.
그래서 브랜딩을 시작하는 실무자들이 초반에 반드시 해야 할 것은 브랜드 코어를 구성하는 각 요소를 명확히 정의하는 것이다.
브랜드 코어의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직원들이 많을수록, 실무자는 브랜드 코어와 관련한 질문에 언제라도 제대로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외워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듣는 사람들이 그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도록 전달하는 것이다.
나는 브랜드 코어에 대해 직원들에게 설명할 때, 사전적인 정의보다는 우리 회사의 상황에 맞는 쉬운 표현들을 사용했다. 우리 회사에서 브랜드 코어를 정의할 때 사용하는 표현을 공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브랜드 코어는 ‘비전, 미션, 핵심가치’로 이뤄진다.
비전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회사가 나아갈 방향이다.
미션은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해야 할 구체적인 일을 말한다.
비전이 타임리스 골(Timeless goal)이라면 미션은 10년 안에 우리가 달성해야 할 일이다.
핵심가치는 그런 미션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지켜야 하는 행동 원칙이다.
브랜드 코어의 내용을 구두나 서면으로만 전달하는 것보다 시각적으로 표현해 전달하는 것을 추천한다. 우리 회사의 비전, 미션, 핵심가치가 기재되어 있는 브랜드 코어 보드를 제작해 직원들이 항상 볼 수 있게 배치하는 것도 브랜딩에 대한 공감대를 이루는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