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지금, 나는 브랜딩과 마케팅의 정확한 차이를 안다. 콘텐츠 마케팅만 하던 시절과 브랜딩을 업무를 맡고 있는 지금의 역할은 사뭇 다르다.
실무자 입장에서 브랜딩과 마케팅의 가장 큰 차이는 ‘목표’이다.
마케터로 일을 할 때에는 제품을 구매하는 사람을 늘리는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 특히 퍼포먼스 마케팅을 위해 광고를 집행 할 때는 사람들의 반응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이 중요했다. ‘어떻게 하면 고객의 주목을 끌 것인가’ 라는 고민하며, 콘텐츠를 제작하고 광고 캠페인을 수정했다.
하지만 브랜딩을 그보다 더 넓은 범위를 다룬다. 브랜딩의 목표는 우리의 가치를 고객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떻게 하면 고객에게 우리의 가치를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브랜딩과 마케팅은 다루는 ‘고객 범위’에도 차이가 있다.
마케팅이 주로 잠재고객에 집중하다면, 브랜딩은 고객여정 전체를 다룬다. 브랜딩은 고객과 만나는 모든 접점에서 어떻게 가치를 전달할지 고민한다. 잠재고객, 기존 고객, 내부 직원, 언론사, 제휴사까지 더 넓은 이해관계자들을 염두해 두며, 고객이 경험한 것이 우리가 전하려고 하는 가치와 동일한지 확인한다.
또다른 차이는 ‘업무의 호흡’이다. 브랜딩은 마케팅보다는 호흡이 긴 편이다.
마케팅을 하면 고객 반응을 즉각적으로 얻을 수 있다. 콘텐츠의 조회수, 댓글이나 반응 수를 비롯해 광고의 클릭수, 전환수 등을 보면 마케팅 전략이 성공적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브랜딩은 즉각적이보다 장기적인 호흡으로 진행된다. 초반에는 브랜드를 정의를 하는데 집중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브랜드 관리로 자연스럽게 초점이 옮겨간다. 그렇기에 브랜드 코어부터 스토리, 비주얼 가이드를 만드는 기초 작업이 튼튼해야 한다.
작은 조직일수록 한 사람이 맡게 되는 역할과 업무 범위가 넓어지는 편이다. 따라서 팀을 편성을 할 때, 시작부터 각자의 역할을 정확하게 정의하지 않으면 같은 업무를 여러 사람이 중복해서 진행하게 되거나 반대로, 어떤 일에 대해서 누구도 정확하게 책임을 지지 않는 일이 발생한다.
브랜딩을 담당하게 되면서 나는 이전의 마케팅 팀과 다른 독립적인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콘텐츠 마케터로서의 내 업무와 브랜드 실무자로서의 내 업무가 어떻게 달라질지 명확하게 나눌 필요가 있었다.
브랜딩 실무자와 마케팅 실무자가 함께 일하는 상황에서 각자의 역할을 어떻게 정의하고 앞으로 어떻게 업무를 나눌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만만치가 않았다. 우리는 몇 달 간의 실험 끝에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브랜딩과 마케팅의 일을 나눴다.
브랜딩은 브랜드의 초석을 다지는 작업이다.그래서 나는 업무 초반에 브랜드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는데 집중했다. 브랜드 코어 요소인 비전, 미션, 핵심가치, 슬로건 등을 정하고 브랜드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 내 첫 번째 과제였다.
그 다음 단계로는 브랜드의 비주얼을 정하고 이를 토대로 가이드 라인을 만들어서 마케팅 팀과 공유했다. 이 가이드 라인은 마케팅 전략을 수립할 때 나침반 역할을 했다. 그 안에는 지켜야할 톤앤매너와 시각 요소, 디자인 원칙들이 포함되었다.
가이드라인을 마케팅 팀에 전달할 때, 한번은 직원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브랜딩이 마케팅보다는 상위 개념인가요?” 예리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브랜딩과 마케팅의 관계를 위아래를 나누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브랜딩은 마케팅과 별개의 상위 부서가 아니라, 함께 협력해야 하는 파트너 관계다.
다만, 브랜딩을 시작하는 초기 단계에서는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마케팅 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브랜드의 방향성과 가치를 먼저 정립해야만, 마케팅이 그 기초 위에서 효과적으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브랜딩이 확립된 이후에도 브랜딩과 마케팅은 서로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 브랜딩은 일관성을 유지하며 고객에게 브랜드 가치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마케팅은 그 가치를 실질적인 성과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두 부서는 상호 보완적 관계에 있다.
스타트업이라 브랜딩 실무자와 마케팅 실무자가 나눠져 있지 않다면?
오히려 초반에는 이 점이 더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브랜딩을 담당하는 한 사람이 고객여정의 시작부터 끝까지 책임지게 되면서 추가적인 커뮤니케이션이나 조율 과정이 줄어든다. 여러 사람과 조율할 필요가 없으니, 일관된 메시지와 브랜드 가치를 고객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전달하는 것이 더 쉬워진다.
특히, 시작하는 기업이라면 브랜딩을 담당하는 사람이 어느 정도의 마케팅 업무도 겸하는 편을 추천한다. 초반에 얼라인을 맞춰둔다면, 나중에 브랜딩과 마케팅 실무자가 나뉘더라도 일관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어 효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