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대들과 일하다 보면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이걸 왜 해야 해요?”라는 질문이다.
과거에는 선배들이 ‘시키면 한다’라는 태도로 일했다. 나도 그 밑에서 일을 배웠다. 그런데 나의 후배들은 자꾸 왜냐고 묻는다.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일 자체가 진행되지 않는다. 그래서 최근 들어 나도 무슨 일을 하기 전에 ‘왜 해야 하는지’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브랜딩을 하면서 느낀 것은, ‘왜’라는 질문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사실 브랜딩 자체가 ‘왜’와 맞닿아 있다.
브랜딩 이전에는 회사에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 그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예전에도 했으니까 이번에도 이렇게 하자의 관성적인 습관으로 시작했거나 예산, 시간부족, 대표님의 지시가 이유가 되었다. 이런 경우 일이 흐지부지 끝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브랜딩을 한 뒤, 회사에서 주요한 결정을 할 때 정확한 기준이 생겼다. ‘우리 비전에 맞지 않아’, 혹은 ‘이건 우리 팀 미션과는 거리가 멀어’ 등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브랜딩은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근거가 된다.
브랜딩은 ‘왜’ 하는지에 대한 정의이다. 그리고 그 ‘왜’에 대한 답은 대표님과의 소통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브랜딩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대표님의 ‘왜’이다.
나는 브랜딩을 시작하기 위해 꽤 긴 시간 동안 대표님을 인터뷰했다.
그때 가장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었던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1. 이 회사를 차리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브랜드 스토리)
이 질문의 답변을 했을 때, 우리는 종종 이런 답변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시절부터 어떤 일을 잘했고 때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고, 어떤 투자를 받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 회사를 차리게 되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브랜딩을 하면서 대표님과 얘기를 해보면, 회사를 차리게 된 계기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평범할 때가 많다. 실제로 내가 만난 어떤 대표님은 어릴 적 도움을 받은 특별한 인연으로 인해 회사를 차리게 되었다고 말했다.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위대하다는 말이 있듯이, 대표님의 개인사가 담긴 이야기는 브랜딩을 시작할 때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리고 이 질문의 답변은 곧, 브랜드 스토리를 작성하는데 도움이 된다.
2. 어떤 문제가 해결되기 바라는가? (브랜드 비전)
나는 아무 이유 없이 시작된 사업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 사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늘 무엇의 부족이나 부재에서 출발한다.
회사가 주력하는 사업을 살펴보면 그 바탕에는 무엇을 해결하기 위함이 있다. 회사가 바라보는 문제와 해결책이 곧 비즈니스 모델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브랜딩을 하면서 나는 대표님에게 이 질문을 한다.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브랜드 코어를 설계할 때 필요한 핵심 질문이면서 동시에 실무진들의 업무 시작점과 연관되어 있어서이다.
어떤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냐는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하는 대표님이 있고 아닌 대표님도 있다. 제대로 답변을 하는 대표님이라면 정말 운이 좋다.
하지만 제대로 답변을 못하는 대표님을 만났다면 브랜딩 실무자가 하는 일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어쩌면 그분은 자신이 어떤 문제를 위해 일하는지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을 수 있다. 머릿속에서만 정리되어 있는 것들을 구두로 설명하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분일 수도 있다. 이런 경우라면 브랜딩 실무자가 이 질문부터 대표님과 함께 정리해나가야 한다.
3.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비즈니스 모델, 미션)
이 질문은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과 연결되어 있다. 문제가 무엇인지 정의했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곧, 우리 회사의 비즈니스이다. 그리고 문제해결 방법이 시중에 없던 것이라면 확실히 차별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묻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은 곧 미션과도 관련 있기 때문이다. 대표님이 꿈꾸는 비전을 위해 지금 당장 해야 할 사업, 우리의 업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물어보길 바란다.
4. 당장은 어떤 것에 집중하고 있는가? (팀 미션, 회사의 목표)
앞서 대표님과 직원들의 동상이몽이 생기는 이유에서 설명했듯이, 대표님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내가 생각하고 있는 범위와 대표님이 말하는 것들의 시간차가 굉장함을 느끼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당장 올해의 일을 생각하며 질문을 던졌지만, 10년 이후에 있을까 싶은 일에 대한 답변이 돌아온다면 아무리 브랜딩을 하는 실무자 입장에서도 정리가 어렵다.
그렇기에 대표님과 대화를 나눌 때, 시점에 대해서 정확히 짚고 질문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측하건대, 브랜딩을 위해 대표님과 인터뷰를 해왔다면 회사의 현재보다는 미래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미래에 대해서 정보 수집이 완료되었다면, 회사의 현재, 최근 3년 간 집중해 왔던 일이 무엇인지 질문해 보자.
그것을 통해 각 팀 별 미션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고 또 현재 회사의 목표가 무엇인지 정확히 판단이 설 것이다.
5. 사람들이 우리 회사를 어떻게 기억하면 좋겠는가? (브랜드 인상, 비주얼)
질문은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 브랜드 인상이 어떻게 되었으면 좋을지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의 브랜드 이미지는 어떻다고 생각하세요?”라는 이미지보다 “남들이 우리 브랜드를 어떻게 느꼈으면 좋겠어요?”라고 질문하는 편이 더 답을 하기 수월하다.
여기에 대한 대표님의 답변이 곧 브랜드 비주얼, 로고나 키컬러를 선정할 때 좋은 단서가 된다.
브랜드 이미지를 미리 구체적으로 정해 두어야 하는 이유는, 추후 브랜딩의 성과를 판단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성공한 브랜딩은 회사가 전하려는 브랜드 이미지와 고객이 느끼는 브랜드 이미지가 거의 동일할 때를 말하기 때문이다.
브랜딩을 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모두가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비전을 갖고 회사를 차렸을까?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몇몇 회사 대표님들은 회사의 비전이 무엇이냐는 나의 질문에 “돈 많이 버는 거예요”라고 답했다. 아니면 “빨리 엑싯(EXIT)하는 거예요” 라면서 비전보다는 자신의 목표를 먼저 이야기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은 비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목표이거나 희망사항이다. 정말 많은 돈을 버는 회사도 그걸 ‘비전의 달성’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당장 대표님이 회사의 비전으로 돈 많이 버는 것을 꼽았다면, 브랜딩 실무자는 고민에 빠질 수 있다. 어쩌면 대표님이 말한 것 이외에 무엇인가 다른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다른 비전을 찾아내려 노력할 것일지도 모른다.
돈을 많이 벌겠다는 대표님들의 케이스는 크게 두 가지이다. 먼저, 브랜딩에 큰 관심이 없는 경우다. 그것보다 성장과 확장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케이스는 브랜딩을 ‘로고나 제품 디자인을 더 예쁘게 만드는 일’로 생각한 경우이다. 만약 이 경우라면 디자이너와 협업해 빠르게 산출물을 만드는 일에 착수하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다.
다행히도 나는 돈을 많이 버는 것 이상의 비전을 가진 대표님과 브랜딩을 시작했다. 시장의 여러 브랜드를 연구하면서 많은 회사의 비전을 연구하고, 그 회사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는지 알게 되어 놀라기도 했다. 우리가 늘 쓰던 생필품, 마시던 음료, 만지는 기기들이 우리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단순히 돈을 많이 벌기 위한 회사보다는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회사들이 더 오랫동안 살아남는다는 것을 배웠다.
브랜딩 실무자라면, 앞으로 많은 브랜드들의 비전과 미션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자신의 회사 혹은 많은 브랜드들의 비전과 미션을 살펴보면서 잘 되는 회사들이 가진 공톰점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결코 개인적인 욕심이나 이익을 위해 회사를 운영하지 않았다.
브랜딩의 비전과 미션이 공공을 위한 것일수록 브랜드는 더 단단해지고 오래간다.
브랜딩을 하면서 이 회사가 잘될지 아닐지, 우리는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