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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너머 Oct 22. 2023

페낭에 온 지 일 년

2023년 5월 마지막날에 몰아쓰는 한 달 기록 

페낭에 온 지 일년이 지났다.  많은 시행착오와 이불킥의 밤들이 지나 이제 조금씩 익숙하고 편안해지는 대신 호기심과 설레임이 두려움과 함께 사라져가는 시점이다. 그러나 돌아갈 날이 카운트다운 되는 하루하루가 아쉬운 오월의 간략한 한달 기록.

     

첫 째 주 5/2일~ 4일 까지 2박 3일 겸이가 학교에서 카메론 하일랜드(Cameron Highland)로 2박3일 여행(Residential trip Y5)을 다녀왔다.  이곳에 와서 처음이기도 하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나와 떨어져 친구들과  3일을 지낸 시간이었다. 아이가 떠나기 전엔 나도 어딘가로 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아침 일곱시 반에 학교 앞에서 대형버스를 타고 떠나는 아이를 환송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다음 날 아침에 운동하러 한 시간 나간 것을 제외하고 집에 콕 박혀 있었다. 특별히 먹은 맘도 없이 그냥 귀찮아서 어영부영 집에서 삼일을 보냈다.  여기가 여행지인데 뭘 또 어디로 떠나나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처음으로 집을 떠나 친구들과 이틀 밤을 자고 온 아이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경험하고 한 뼘 쯤 자라서 흙이 범벅된 젖은 빨래를 가방 가득 가지고 돌아왔다.  2박 3일 동안 비가 여러차례 와서 여벌로 가져간 옷도 다 버리고, 운동화도 젖어서 흙투성이였다. 그러나 아이는 너무너무 재미있었단다.  언제나 그렇듯 노는 데는 진심.     

     

둘째 주 토요일엔 학교에서 STEM 이라는 축제가 있었는데, 작년에 한 번 참여한 터여서 호기심이 사라지기도 했지만, 올 초부터 매주 토요일에 다니고 있는 페낭 한글학교도 빠지고 근처의 국제학교인 달랏(Dalat)에서 진행된 PAC(Performing Arts Carnival) 행사에 참석했다. 아침 8시부터 진행되는 행사라서 7시 반에 친구 엄마 차를 태워 보내고 4시에 픽업을 하러 갔다. 이날 행사는 페낭에 있는 네 개의 국제학교 학생들 중에서 음악에 관심이 있는 아이들이 참여하여 아프리카의 손으로 두드리는 드럼을 주로 하여 손으로 소리낼 수 있는 다양한 악기를 가지고 서로 협동하여 음악을 공연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학교에서 미리 신청한 아이들에게 노래 연습도 시키고 행사 당일 아침부터 오후 네시까지 연습을 시켜서 4시에 달랏 강당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걸 부모들을 초청하여 보여주었다. 각 학교별로 다른 티셔츠를 입고 각자 연습한 공연을 펼치던 아이들이 마지막에는 다같이 무대에 서서 노련한 연출자의 지시대로 합창도 하고 악기 연주도 하는 걸 보는데,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잊지 못할 한 시절이 지나가고 있구나 싶어 또 마음이 뭉클해 지던 시간이었다.    

     

 셋 째 주 금요일에 Teacher's day 행사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선 한참전에 없어진 스승의 날 행사에 아직도 선생님께 조그만 선물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전 날 거니파라곤에 가서 초콜렛 두 상자를 샀다. 겸이가 겨우 한 줄짜리 감사인사를 손으로 쓴 카드를 붙이고 담임인 MS 싸티샤와 영어 보충반 선생님인 MS 로즈에게 선물로 보냈다.  말레이시아에선 5월 16일을 스승의 날로 정해서 기념한다는데, 학부모그룹인 TSPA에서 준비한 행사 사진만 왓챕에 올라온 걸 보았는데, 선생님들이 작은 선물을 받고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넷 째 주, 방과후까지 끝나고 집에오면 네 시 반, 일주일에 두 번 보내던 영어 튜션을 끊었다. 팽팽하고 벅차던 일주일 겸의 스케줄이 좀 느슨해진 느낌이다.  아이는 주중에도 하교 후에 피아노와 바이올린과 영어를 두 번씩  배우러 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밥도 안 먹고 놀이터로 나가서 밤 아홉시까지 놀다가 들어와 그제서야 저녁을 먹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틈만 나면 휴대폰을 손에 드는 것보다 차라리 나가서 뛰어놀라고 내보내면 날마다 온 몸이 땀에 젖어서 밤 늦게 들어온다.      

               

그리고 마지막 주인 5월 29일부터 6월 5일까지 마지막 3학기의 중간 방학(Mid Term break)이 엊그제부터 시작됐다. 지난 텀브레이크 끝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또 논다. 이 나라에서 선생하면 할 만 하겠구나 싶다.     

 어제는 타마린에 사는 텐비 아이들 몇 몇이 하드락 수영장에 가서 질리도록 밤늦게까지 놀다 왔다. 그러잖아도 새까맣게 탄 얼굴과 등이  빨갛게 익었다. 오늘도 밖에서 실컷 놀고 들어와 샤워를 하러 들어간 아이가 얼굴과 팔과 등이 따가와서 샤워를 못하겠다고  문을 열고 소리지른다. "물을 좀 차게 해서 해봐~" "지금 찬물로 하고 있는데도 아파 죽겠어" .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대답을 안 했더니 다시 물소리가 들린다. 오늘이 수요일, 앞으로 5일간의 노는 날이 남았다. ㅠ     

     

  아이가 학교 가는 주중엔 여섯시에 일어나 매일 도시락을 싸고,  일주일에 두 세번 등교시킨 후에 한시간 정도 아파트 옆 도로에서 달리기를 한다. 매주 수요일엔 아이 친구 엄마들과 두시간 씩 영어책 읽는 모임을 하고 함께 점심을 먹는다. 엄마들이 솜씨가 좋아 종종 한국음식을 만들어 준다. 목요일 저녁에 줌으로 한국에 있는 러셀읽기 모임에 참석하고, 저녁이 되면 겸이 숙제를 챙기고,  영어공부와 한국 학년에 맞는 수학 공부를 조금이라도 시키고 자게 하려고 휴대폰만 보려고 하는 아이와 신경전을 벌이느라 진을 뺀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낸다.      

     

일 주일에 한 두번  근처 마트나 모닝마켓에 가서 장을 봐서 가끔 음식을 만든다. 이 달에 기억에 남는 음식은  견과류를 잔뜩 넣은 멸치볶음을 만들었고, 스파게티를 두 번 쯤 만들어 먹었고,냉동 순대를 사다가 사골국물에 다대기를 만들어 순대국을 끓였는데, 의외로 겸이가 잘 먹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맛있는 청국장 끓이기에 성공했고, 오늘은 병어조림을 해 봤다. 이젠 한식 외에는 별로 먹고 싶은 게 없다.  내일이면 벌써 유월이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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