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스부르는 스트라스부르다

# 8일째 - 스트라스부르

by 여름지이

어제 프라이부르크에서 버스로 한 시간 반을 달려 스트라스부르에 왔다.

스트라스부르는 독일 남서부 접경 지역에 있는 프랑스 도시다.

비행기나 배로만 외국을 갈 수 있는 우리나라랑 비교하면 다닥다닥 붙어있어 언제나 이웃나라를 쉽게 넘나드는 유럽은 참 신기하다.

지브리 애니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배경 도시 '콜마르'와 스트라스부르가 있는 이 지역을 알자스 지방이라 부른다. 학교 때 교과서에 실린 알퐁스 도데의 단편 <별>, <마지막 수업>을 읽으며 알게 된 그 알자스 지방 말이다. 일부러도 올 만한데 인근에까지 왔으니 당연히 와보고 싶었다.

어린 나이에 읽어도 별은 아름다웠고 마지막 수업은 슬펐다.

항상 접경, 경계 지점에는 스토리가 있는 법~.

전쟁 때마다 무려 다섯 번이나 지배국이 바뀐 비운의 도시, 2차 대전 이후 비로소 프랑스 땅으로 되었다 하니

그 기막힌 상황이 배경인 <마지막 수업>이 탄생할만한 하다.

그래서 이 곳 사람들은 나라를 물으며 그냥 '스트라스부르 사람'이라 한단다.

얼룩진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상처 받은 그들만의 독특한 정체성이 이해가 된다.

너무 가까운 두 나라의 문화가 섞인 곳이지만 어제 버스에서 내려 트램을 기다릴 때 보니 독일과 다른 약간의 차이가 살짝 느껴졌다. 음... 거리에 인종이 좀 다양하고 남자들이 키가 좀 작은 것 같고ㅋ, 아무튼 차림이나 분위기가 좀 자유롭다.


아주 작은 방을 가진 오래된 호텔에서 비싼 조식을 먹고 여유롭게 스트라스부르 구시가지에 있는 유명한 노트르담 대성당에 가기 위해 나섰다. 얼마 전 화재가 난 파리 노트르담 성당보다 건축학적으로 한수 위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던데.... 유럽은 성당?, 봐주는 게 이 도시에 대한 예의 이려나.

차창밖으로 보이는 도시가 정말 예뻤다. petit 프랑스로 불린다더니.

버스에서 내려 골목길로 접어드니 건물 사이 하늘 위로 뾰족한 성당 상체가 올라와 있다.

유명한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한적한 골목에 우뚝 솟아오른 노트르담 대성당을 보며 걸으니 왠지 중세의 거리에 와있는 느낌이 들었다. 발자국 소리, 땡땡 종소리는 배경음악처럼 울린다.


웬걸, 모퉁이 돌아서니 반전이... 성당 앞 광장은 와글와글 도떼기시장이다.

700년간 지었다는 건축물이 거인처럼 우뚝 서 웅장함을 드러냈다. 성당 규모에 압도되고 많은 인파에 압도되어 건물 안으로 들어갈 생각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다가 사진만 몇 커트 찍었다.

이런 상황이 되면 몰려오는 급 피로감~.

벤치에서 좀 쉬다가 주변에 여럿 있는 기념품 가게들을 보자 선물 생각이 나 그중 한 곳으로 들어가 보았다.

아기자기하게 예쁜 것들이 많았지만 내 눈길을 사로잡은 건 지붕 위에 둥지를 튼 황새 모형의 마그네틱 냉장고 자석이다. 우리는 처마 밑에 제비가 집을 짓는데 유럽은 황새가 지붕 위에 둥지를 트는 게 흔히 있는 일인가 보다. 네덜란드 동화 < 지붕 위의 수레바퀴 >가 생각 나서다.

행운을 가져다주는 황새가 사라진 마을의 아이들과 어른들이 황새를 다시 데려오는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마을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가는 소박하고 따뜻한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알고 보니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황새가 아기를 물어다 주기도, 황새에게 물린 사람은 임신한다는 속설이 전해질 정도로 친숙하고 행운을 상징하는 새였다. 유난히 황새가 많았던 알자스 지방도 한때는 <지붕 위의 수레바퀴 > 쇼라 마을처럼 황새가 사라질뻔한 위기가 있었지만 관청과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돌본 결과 지금은 개체수가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황새가 무엇을 바라는지 알아내기 위해 황새처럼 생각했던 것일까? 이 곳도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을 것처럼 황새가 가까이 있었던 시절이 있었나 보다. 그래서 길조인 황새를 이 지방의 마스코트로 정한 것 같고. 황새와 관련된 동화가 더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좀처럼 사지 않는 냉장고 자석을 몇 개 샀다.

지붕 위의 수레바퀴를 읽은 지인들에게 나눠주면 좋아할 것 같았다.


노트르담 성당은 겉에서만 보고,... 왜 안 들어갔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무슨 이유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대신 광장 앞 강을 운행하는 '바토라마'라는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일 강'을 따라 시티투어를 해준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유람선 표를 사는 줄이 엄청 길었다. 그래도 나보다 기운이 있는 아들이 줄을 서있고 난 벤치에서 사람 구경을 했다. 사실 유명 건축물을 옆에 두고도 난 사람 구경하는 게 더 흥미로웠다. 한국사람만이 알아볼 수 있는 한국사람들도 제법 보이고.... 마침 옆 벤치에 궁금증이 발동되는 외모를 가진 가족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들(할머니, 엄마)은 까만 피부인데 어린 남매는 백인이었다. 아이들이 귀여워 그쪽으로 자꾸 눈이 돌아가 결국 할머니랑 눈이 마주쳤고, 사실은 오지랖이 넓지 않은 내가 아이들 외모의 원인을 알아내기에 이르렀다.

할머니는 스리랑카 사람, 영국 백인이랑 결혼해 옆에 딸을 낳았고, 또 딸은 옆에 어슬렁거리고 있는 독일 백인 남자랑 결혼해 남매를 낳았다 한다. 삼대가 쪼르르 앉아 있는데 밑으로 갈수록 피부색이 옅어지는 게 신기했다.

엄마들만 주변에 없으면 분명 백인 부모들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 같은데, 유전자 속에 분명 흑인 인자를 갖고 있을 것이다. 왜 쓸데없이 이런 생각을 했냐면 반대의 경우지만 언젠가 해외토픽 기사가 생각 나서다.

흑인 부부가 쌍둥이 자매를 낳았는데 한 명이 완전 머리가 노란 전형적인 백인 아기였다! 놀라 가계도를 조사해봤더니 윗대 할머니 중에 백인이 있었다고 ㅎ.

스리랑카 할머니 손주들도 백인 배우자를 만나도 할머니처럼 까만 피부의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것이다.

참, 유전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

무슨 말을 주고받다가 이렇게 할머니 집안 내력까지 알게 됐는지 모르겠다.

설마 '왜 손자들이 하햫지요?'하고 물어봤을 리는 없고, 유쾌한 할머니였고 유쾌한 대화가 오갔던 거는 분명하다.


오지랖을 떨고 있던 사이 착한 아들은 땡볕에 줄 서서 표를 사 왔고, 시간 맞춰 유람선을 탔다.

한국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왔으면 한국말 오디오 지원이 되었다! 편안하게 앉아 이어폰을 끼고 우리말로 설명을 들으니 스트라스부르가 더 가깝게 느껴졌다.

강 따라 둘러본 스트라스부르는 유럽만의 아름다움이 가득한 도시이기도 했지만 유럽의 수도로 불리며 위치, 정치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었다. 전쟁 때마다 주변국들의 쟁탈전이 벌어진 아픈 역사가 서려 있는 지역인 만큼 이젠 유럽 평의회, 유럽의회, 유럽 인권재판소가 들어서 평화를 도모하는 의미 있는 장소로 탈바꿈해 있었다. 와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사실들에 왠지 고무되어 눈과 함께 열심히 이어폰 설명에 귀 기울이고 있었는데 뜻밖에 익숙한 이름이 들렸다. 토미 웅거러! 그림책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밖에 없는 그림책계의 거장?, 그분의 이름을 여기서 듣게 될 줄이야. 독일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여기 스트라스부르가 고향이고 바로 눈앞에 보이는 박물관이 토미 웅거르 미술관이란다.

1931년생이니 독일 사람이었던 때도 있었겠다....

그러고 보니 작가의 작품 성향과 스트라스부르라의 역사가 퍼즐 조각처럼 딱

맞아 끼워지는 느낌이다.

그림책 내용이 반전, 평화, 인권, 편견...묵직한 소재를 주제로 삼았지만 굉장히 해학적이고 풍자적이었던 걸로 기억난다. 그건 어느 정도 그림책 세계에 들어갔을 때의 생각이지, 사실 아이가 유아일 때는 그림도 이야기도 선뜻 들어오지 않는 작가였다. 육아를 마치고 나만의 책 읽기로 토미 웅거러의 세계를 접했을 때는 달랐다

표지 그림만 봐도 무시무시했던 <세 강도>가 얼마나 웃기고 따뜻하던지, 작가만의 유머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까막눈이 글자에 눈뜨는 기분이랄까.

그림책의 역사가 우리보다 훨씬 오래된 유럽의 작가들은 무겁지만 생각해야 될 소재를 표현하는데 익숙하고 솜씨가 좋은 것 같다. 반전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이 어떤 교육보다 전 세대가 공감하는 훌륭한 그림 책한 권이 더 효과적이라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여기서 토미 웅거러를 만난 건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 스트라스부르의 정체성을 누구보다 잘 표현해준 작가이기에. 난 스트라스부르를 여행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은 건물만 봤지만 내일은 꼭 안에 들어가 봐야겠다. 월요일? 여긴 화요일이 휴관이란다!

소소한 운이 따르는 여행길이다.



웅거러 미술관 갔다가 프라이부르크로 다시 돌아가면 이번 여행 일정이 거의 마무리된다.

슬슬 아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고... 유람선에서 본 쁘띠뜨 프랑스 지역을 가기 위해 강변을 걸었다.

아들은 지금까지 여행지 중 이곳이 최고라며 연신 필름 카메라 셔트를 눌러댔다.

아담하니 사진 찍기 좋은 아름답고 예쁜 도시임은 분명한데, 너무 달력사진 같이 예뻐 오히려 현실감도 없고... 난 좀 질린다.

풍경보다는 사람이 들어오는 나이라서 그런가?


* 지붕 위의 수레바퀴( 마인데르트 드용/비룡소 2014)

세 강도(토미 웅거러/ 시공주니어/ 1995)